아버지 김준기 결국 아들 김남호 ‘지휘봉’ 빼앗아…DB손보 지분 확대 또한 부자 갈등이 배경

김준기 창업회장은 반도체에 대한 애정이 깊다. 1983년 미국 몬산토와 합작법인으로 설립한 동부전자통신이 현재의 SK실트론이다. 동부전자통신을 LG그룹에 매각한 이후에도 반도체 사업을 추진하다가 2002년 아남반도체 인수 이후 지금의 DB하이텍을 키워냈다.
#실적 좋지만 미리 설비 투자 안 한 점 아쉬워
DB하이텍은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2분기 실적만 봐도 매출이 3374억 원으로 전년대비 13%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739억 원으로 10% 증가했다. 2분기는 주요 전력반도체(기기 내 전력을 제어하고 변환하는 칩) 업체들이 부진한 실적을 낸 시기다. ST마이크로, 온세미 등은 실적 발표 이후 주가가 20% 가까이 폭락했는데, 미국 내 수요 급감이 수치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미국 고객사들이 지난 1분기 관세 전쟁에 대한 우려 때문에 물량을 선주문(풀인 효과)했던 것이 2분기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DB하이텍은 달랐다. DB하이텍은 8인치(200mm) 웨이퍼를 활용해 전력반도체, 디스플레이구동칩(DDI) 등을 생산하는 세계 10위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이다. DB하이텍은 주요 고객이 중국이다. 중국은 반도체 자립 의지가 강한데, 그러다 보니 중국 내 주요 반도체기업들은 인공지능(AI) 칩 내재화를 위한 선단 공정 및 12인치(300mm) 위주 투자를 우선하고 있다. 차량, 가정용 전력칩에 쓰이는 레거시 공정의 8인치는 DB하이텍을 비롯한 해외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70%대에 머물던 DB하이텍의 공장 가동률이 90% 선으로 뛰어올랐다.
DB그룹 두 회장의 의견이 갈린 것은 이 지점이다. 김남호 명예회장은 중국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늘리고 있는 만큼 지금의 호시절이 아주 길게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 반면, 김준기 창업회장 측은 여태까지 버텼으니 당분간은 과실을 더 딸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측 의견 모두 납득은 간다는 것이 업계 일반적인 견해다. 다만 하나 아쉬운 것은 DB하이텍이 제때 증설을 하지 못해 지금의 호황기를 더 만끽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DB하이텍은 최근 수년간 기업설명회 등에서 대규모 설비 투자를 약속했다가 그룹 사정 때문에 번복된 적이 여러 번이다. 지난해도 반도체 클린룸 확장 및 캐파 보완 등을 위해 1807억 원을 투자키로 했으나 1253억 원 투자에 그쳤다고 사업보고서를 통해 밝혔다. 올해도 연간 투자 계획은 2715억 원인데, 상반기까지 투자액은 925억 원에 불과했다.
2023년 DB하이텍에 경영권 참여를 시도했던 강성부펀드(KCGI)도 당시 “DB하이텍 설비가 너무 노후화돼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DB하이텍은 이에 2030년까지 4조 7000억 원을 투자해 신수종사업을 기르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지금은 유야무야됐다.
차용호 LS증권 연구원은 “DB하이텍의 가동률은 내년에도 95%로, 견조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현재도 풀(Full) 캐파에 가깝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생산량 증대에 따른 매출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단기간 내에 어렵다”고 분석했다.
투자자들이 반발했던 또 다른 지점이 DB하이텍의 자회사 DB월드와 DB메탈의 합병 건이다. DB하이텍 경영진이 DB하이텍만을 위한 의사 결정을 한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DB하이텍이 지분 81.76%를 보유하고 있는 DB월드는 골프장 운영 및 부동산 개발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5월 사업적으로 전혀 무관한 합금철 업체 DB메탈을 합병키로 했다. DB메탈은 2022년엔 매출 6436억 원, 영업이익 1494억 원을 기록했는데 중국 발 공급 과잉 여파 때문에 지난해 순손실 767억 원을 기록했다. 현재 공장 가동률이 19.57%로 대부분의 생산 라인이 멈춰 있는 상태다.

당장 3분기 실적부터 염려스럽다. 증권사들이 예측하는 DB하이텍의 3분기 실적은 3개월 전 대비 개선됐다. 3개월 전 증권사 연구원들이 예측한 DB하이텍의 예상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3273억 원, 642억 원인데, 최근 이 수치는 3406억 원, 768억 원으로 각각 4.1%, 19.6% 증가했다. 그러나 자회사 실적을 반영하는 예상 지배주주순이익은 706억 원에서 557억 원으로 21.1% 감소했다. DB메탈의 부진한 실적이 반영될 예정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DB손보 지분 늘리는 DB, 자금 출처는?
DB하이텍은 자회사만 챙기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룹에 금융 계열사를 제외하곤 현금을 창출하는 계열사가 없어 현금배당 등을 통해 모회사 또한 지원해야 하는 입장이다.
최근 지주회사 DB는 DB손해보험 주식을 장내매수하고 있다. DB는 연초만 해도 주식을 1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았으나 지난 7월부터 8월 중순까지 거의 매일 같이 장내매수해 지분율을 0.85%로 끌어올렸다. DB하이텍 또한 8월 19일부터 22일까지 DB손해보험 주식을 장내매수해 지분율이 0.03%가 됐다. DB는 마땅한 현금창출능력이 없어 DB하이텍의 배당에 의존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DB하이텍은 올 초 주당 1230원(시가배당률 2.8%)을 배당한 바 있다.
DB가 DB그룹 금융회사들의 지주회사 격인 DB손해보험 주식을 매수하는 것 또한 부자 갈등이 배경에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DB손해보험 최대주주는 김남호 명예회장으로 9.01% 보유하고 있다. 김준기 창업회장(5.94%)과 창업회장 편으로 알려진 누나 김주원 부회장(3.15%), 김준기문화재단(5%) 등을 모두 합치면 명예회장보다 지분율이 높지만, 그래도 창업회장 입장에서는 지배력을 더 높이고 싶은 이유가 있다. 현재 DB그룹 금융 계열사들의 이사진은 DB의 이사진에 비하면 김남호 명예회장 쪽과 가깝기 때문이다.
2022년 김남호 명예회장이 인사권을 갖고 있을 당시 DB손해보험 대표이사직에 오른 정종표 대표가 대표적이다. 1962년생인 정 대표는 DB그룹 대표들 중 비교적 젊다. DB손해보험의 또 다른 대표이사(각자대표 체제)인 김정남 대표이사 부회장만 해도 1952년생이다. 창업회장이 장악하고 있는 DB 이사진은 1945~1958년생들이 두루 포진해 있다.
DB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창업회장은 당초 아들에게 금융 계열사를, 딸에게 제조업 계열사를 물려줄 계획이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다만 지금 상황만 보면 아들인 명예회장이 아예 물러나는 수순인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민영훈 언론인 master@ilyo.co.kr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