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이 싸고 안정적” “세계적 흐름은 재생”…원전·재생 모두 활용 ‘에어지믹스’ 강조 목소리도

이재명 대통령은 대규모 신규 원전 건설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AI(인공지능)를 위한 데이터센터 등에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니 원전을 짓자고 하는데, 최소 15년이 걸린다”며 “당장 엄청난 전력이 필요한데 1~2년이면 되는 태양광과 풍력을 대대적으로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발전량이) 수십 기가(G)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원전을 30개 넘게 지어야 하는데 어디에다 지을 거냐. 원전도 있는 건 쓰고, 가동 기간 지난 것도 안전성 담보되면 연장해서 쓰고, 짓던 건 잘 짓고 그러면 된다”고 덧붙였다.
앞서 김성환 환경부(향후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9월 9일 기자간담회에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된 신규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 건설과 관련해 “기존 원전은 안전을 담보로 계속 연장해 쓰더라도 원전을 신규로 지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국민의 공론을 듣고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며 “(신규 원전에 대한) 의견은 최종적으로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담길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정부 내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9월 16일 기자 간담회에서 “신규 원전 2기와 SMR(소형모듈원자로)은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2035년의 전력 수요를 내다보고 마련한 것이다. 에너지 가격과 전력 공급 안정성 측면에서 원전이 필요하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은 9월 15일 성명을 내고 “최근 일부 탈원전 세력이 원전 건설 기간이 15년 이상 소요된다는 허위 주장을 대통령께 보고해 국가 정책을 왜곡하고 있다”며 “이는 단순한 착오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미래 에너지 안보를 의도적으로 훼손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라고 반발했다. 이어 “국내 신형 원전은 평균 8년 내외면 충분히 준공이 가능하다”며 “국제적으로도 7~9년 사이에 완공된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의 전력 수요가 많아진 가운데, 미국·중국·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이 원전 확대 기조를 보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세계 전력 수요는 2023년에 2.5%, 2024년에 4.3% 각각 증가했으며, 2025년부터 2027년까지 연평균 3.9% 증가율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2030년까지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현재(415TWh)보다 2배 이상 늘어난 945TWh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원자력 발전량 증가율도 2023년 2.1%, 2024년 3.5%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회복세를 보였던 원전 생태계가 또 다시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의 ‘원자력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원자력 산업 분야 총매출액이 2016년 27조 4513억 원에서 2018년 20조 5610억 원으로 떨어졌다. 2022년에는 25조 4234억 원, 2023년에는 32조 1556억 원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원전 산업계는 과거에 비해 국내보다 해외 주문 비중이 많은 상황이기 때문에 해외 플랜트 수주를 맡고 있는 건설사들이 받는 타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해외 수주 시 원전 보조기기는 해외 현지 기업의 제품을 조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생산하는 국내 중소기업들이 위축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밝혔다.
원전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 원전 수요가 많은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과 국제 간 협력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국내 원전 정책 기조가 불확실해진 상황과 관련해 해외 사업자들도 협력 체계에 지장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를 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단행된 조직 개편으로 인해 원전 관련 기관과 기업들 입장에서는 상대해야 하는 부처가 늘어날 예정이다. 당초 과학기술정보통신부(R&D), 산업통상자원부(건설·운영·수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지휘·감독을 맡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원전 건설·운영 부문이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이관될 예정이다.
윤종일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기후 위기 등 규제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있다”며 “산업 경쟁력 강화를 관장하고 있는 산업통상부(산업통상자원부의 후신)와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원전 정책과 관련해 충돌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중 어느 쪽의 발전단가가 저렴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정범진 교수는 “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원전 대비 5배 수준인 데다 송전망 건설 등을 감안하면 10배가량의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며 “전기요금 인상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산업 경쟁력이 뒤처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신재생에너지 업계 한 관계자는 “태양광 모듈 등 재생에너지 발전을 위한 원자재 생산량이 늘어남에 따라 생산 단가 자체가 전반적으로 낮아졌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낮아지고 있는 추세”라며 “원전 해체 비용 등 산정 기준에 따라서 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더 저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17년 3메가와트(MW) 이상의 대규모 태양광 발전 균등화 발전비용(LCOE)이 2028년에서 2030년 사이에 원자력 발전보다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자원경제학회도 2021년 ‘균등화발전비용 메타분석’을 통해 2030년 국내 태양광 LCOE가 1킬로와트시(kWh)당 56.03원으로 원자력 103.78원 대비 절반가량 줄어든다고 내다봤다.
탈원전보다는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모두 활용하는 에너지믹스를 제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종일 교수는 “탈원전을 완료했던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도 원전 재도입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최근 스페인에서 대정전 사태가 발생했던 만큼 안정된 전력 공급을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우식 한국재생에너지산업발전협의회 사무총장은 “현 정부가 원전을 당장 없애자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며 “지난해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이 약 10%이지만, 전 세계 OECD 국가 평균인 35%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RE100 이행 등 전 세계 흐름에도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