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케미스트’ 상속절차 완료 전에 지분 이전 의혹…신임 대표 “모든 것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 SK “관련없어”
[일요신문] 은진혁 알케미스트캐피탈파트너스펀드매니지먼트(ACPFM) 창업자가 지난 1월 필리핀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한 지 7개월이 지났지만 회사를 둘러싼 경영권 및 상속 논란은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 특히 알케미스트캐피탈파트너스코리아(알케미스트) 전·현직 대표를 둘러싼 경영권 다툼 중에 조세포탈 의혹마저 제기돼 파장이 거셀 전망이다. ACPFM는 알케미스트의 모회사로 조세피난처인 케이맨제도에 설립됐다. 은 씨가 1인 주주인 회사다.
은진혁 씨가 숨지자 사모펀드 운용사 알케미스트가 분쟁에 휘말렸다. 사진=법원의 알케미스트 관련 석명준비명령 문서지난 1월 은 씨의 사망 직후 알케미스트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던 A 씨는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전부터 알고 지내던 SK 전직 임원으로부터 은 씨가 필리핀에서 변을 당한 것 같다는 연락을 받은 것. 이에 A 씨는 은 씨의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했고 은 씨의 아들 B 씨가 필리핀으로 넘어가 사후 처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4월 24일 A 씨는 알케미스트의 법인 인감이 무단으로 반출된 사실을 알게 됐다. 은 씨의 유족 대리인이라는 변호사의 연락으로 법인 인감을 보냈다는 당시 관련 직원의 증언 이후 5월 9일 알케미스트의 변경등기 신청이 접수된 사실도 알게 됐다. 그동안 두 차례에 걸친 변경등기 신청 시도가 있었으며, 정식 이사회 등의 절차가 생략된 것도 모자라 A 씨는 이 같은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5월 15일, 알케미스트 사무실에 경찰이 찾아와 A 씨를 무단침입으로 쫓아내려다 A 씨가 등기증명서 등 자료를 제시해 경찰이 돌아가는 일이 벌어졌다. 같은 날 A 씨는 ACPFM 대표라는 이던 폴 캄 명의로 된 이메일을 받았다. A 씨가 4월 9일자 서면결의 및 5월 2일 임시주주총회결의로 알케미스트에서 해임됐고, C 씨가 신임대표로 선임됐다는 통보였다. A 씨는 이던 폴 캄과 C 씨, 두 사람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주주총회 개최는 물론 소집 청구조차 받은 사실이 없었다며 분개했다. 이후 A 씨와 B 씨 양측은 법적공방을 진행 중이다.
A 씨는 “상속 절차 미완료 상태에서의 지분 이전은 불법이며 법인 인감 사용과 주총·이사회 의결도 비정상적으로 진행됐다”고 주장하며 해임의 적법성을 다투고 있다. 특히, C 씨와 유족 측이 상속세 등 조세포탈 목적으로 이 같은 해프닝을 벌인 것이 아니냐는 의혹과 함께 법원을 상대로 자료 등을 짜깁기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법원에 제출된 자료 등에 의하면, 4월경 B 씨가 ACPFM 주주로, 이던 폴 캄이 대표로 선임됐다. 의아한 점은 통상적인 절차상 은 씨의 사망 이후인 만큼 유언검인 등의 상속절차가 먼저 이뤄져야 하는데, 유족이 상속절차보다 주식이전을 먼저 진행해 경영권 행사를 한 것으로 여겨졌다. 유족이 회사의 임원은 아닌 상태였기 때문.
더 의심스러운 정황은 법원이 6월 17일자 석명준비명령을 통해 “유언장 서명의 진정성”과 “주식 상속 절차의 적법성”을 보완하라고 요구한 이후 뒤늦게 케이맨제도의 상속절차가 빠르게 처리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또 B 씨와 함께 유산 상속자로 지명된 은 씨의 딸이 서명한 가족합의서(상속과 경영권을 B 씨와 이던 폴 캄에서 인계한다는 내용)도 법원의 석명준비명령 이후에 제출됐다. 먼저 제출된 가족합의서(6월 2일자)에는 B 씨의 서명만 날인됐다.
사진=은진혁(짐 은) 유언검인 관련 신청 문서. 케이맨제도 법원 사이트 캡쳐 화면특히, 상속과 경영권 승계절차 과정에서 시점 논란이 쟁점이 된 이 사건에서 핵심적인 자료가 공개됐다. 법원은 당초 C 씨 측이 제출한 유언장의 적법성과 케이맨제도 법원의 유언검인 절차 등을 주요 쟁점으로 삼았다. 4월 지분인수로 획득한 ACPFM의 경영권은 은 씨의 사망으로 인한 부재로 상속절차가 먼저여야 했다. 이에 B 씨 측은 6월 중순경 법원에 유언장을 제출, A 씨 해임은 물론 모든 경영권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 유언장은 2023년 6월 은 씨가 작성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당시 은 씨의 나이는 50대 중반으로 횡령 혐의 등으로 국세청과 금감원 등 사정당국의 수사가 본격화되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법원의 석명준비명령 당시에도 유언장의 검인은 물론 케이맨제도 법원에 상속절차가 진행되고 있는지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었다.
일요신문 취재결과, 케이맨제도 법원에 상속 허가 신청을 접수한 것은 6월 27일로 드러났다. 4월 지분인수 이후 2개월이 넘게 지난 데다 법원의 석명준비명령 후 열흘이 지난 시점이다.
통상 6주에서 6개월 이상이 걸리는 검인절차 등도 이례적으로 불과 3주 만인 7월 18일경 케이맨제도 법원의 유언검인장을 발급받아 이후 법원에 제출됐다. 은 씨의 사망 2~3개월간 경영권 행사를 먼저 진행한 뒤 상속절차가 진행된 모양새로 이는 상속세 등 조세포탈 의도가 있었는지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C 씨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특별히 전할 말도 이유도 없다. 모든 것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짧게 답했다.
과거 은 씨 관련 전방위적인 수사를 단행했던 국세청 등 사정당국은 이미 은 씨의 일부 해외 계좌 정보를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은 씨의 사망 이후 수사가 사실상 중단상태일 가능성이 있지만 과거 은 씨를 국내거주자로 간주하고 수사에 임한 만큼 향후 국내외 상속과정을 모니터링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에 일요신문은 은 씨가 사망직전까지 거주했던 서울 강남의 자택에 대한 부동산등기부상에도 여전히 은 씨와 아내 이름이 명시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법조계에선 이를 두고 국내 상속절차가 진행 중인지 불분명한 상태로 은 씨 소유의 또다른 해외 페이퍼컴퍼니에 대한 상속 및 지분인수 절차 등도 들여다볼 여지가 있다고 전언했다. 국내 상속세 신고를 하지 않고 해외 재산만 챙기려 한다는 의혹과 회사 관련 세금 문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은진혁의 국내 상속절차 여부와 진행상황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진=은진혁 부부 명의의 국내거소 등기부등본사정당국 등에 따르면 실제로 은 씨 명의 또는 차명으로 관리된 것으로 의심되는 해외 법인은 케이맨제도를 비롯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와 싱가포르 등에 분포되어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해외 계좌와 상속세 탈루 가능성은 여전히 조사 대상”이라며 “증거 확보 여부에 따라 재수사나 새로운 수사가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재계 일각에서는 ‘SK와 과거 연계설’도 다시 거론된다. 은진혁 씨가 생전 SK와 관련 수차례 협업했기 때문이다. 다만, SK 측은 "이미 수년 전 지분 관계를 정리했고, 현재 알케미스트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SK TNS의 일부 지분 매각과 관련해서도 그룹과는 무관하며, 아직 어떤 통보도 받은 바 없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은 씨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알케미스트는 SK와의 연결고리가 사실상 끊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케이맨제도와 국내에선 알케미스트의 논란이 여전히 흔적처럼 남아있다. 더구나 은 씨의 수많은 페이퍼컴퍼니와 차명계좌를 둘러싼 여러 의혹은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SK 딜 전문’ 은진혁은 누구인가
은진혁(짐 은·사진) 씨는 미국 MIT와 퍼듀대에서 전기공학 및 반도체 물리학 석사를 받은 이공계 전문가이며,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측근으로도 알려졌다.
2000년 인텔코리아 대표이사 시절 최 회장을 처음 만났고 그 인연으로 최 회장이 2016년 은 씨를 SK그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 통합금융솔루션팀(IFST) 팀장으로 영입하려다 그룹 안팎의 반발로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은 씨는 2016년 사모펀드 운용사 알케미스트캐피탈파트너스코리아를 설립, 공격적 투자와 SK그룹과의 거래로 ‘SK 딜 전문 PEF’로 불렸다. 특히 2021년 SK에코플랜트로부터 SK TNS를 약 2900억 원에 매수한 뒤 매각 이슈로 주목을 받았다. SK TNS는 SKT와 SK브로드밴드를 주요 고객사로 두는 통신망 공사 전문 기업이다.
이 같은 전력으로 2016년과 2023년 두 차례에 걸쳐 최 회장의 ‘비선실세’ 의혹을 받으며 언론의 주목과 함께, SK그룹의 기업 인수와 관련된 유착 의혹 등이 제기됐다. 실제로 2023년부터 국세청과 금감원, 검찰 등 사정당국의 전방위적인 수사가 이어졌다.
그러던 중 2025년 1월 필리핀에서 은 씨가 사망했고 경영의 구심점을 잃은 알케미스트가 내홍을 겪고 표류하는 상황이다. 관련 수사도 표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