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김병기 ‘투톱’ 패싱 논란 일어…이재명 대통령 국정 운영 부담 지적

조 대법원장을 겨눈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회 법사위는 민주당 주도로 5월 7일 ‘조희대 대법원장 등 사법부의 대선개입 의혹 진상규명 청문회’를 의결, 조 대법원장 등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대선을 20일 앞둔 5월 14일 열린 청문회에 조 대법원장은 ‘사법부 독립에 반한다’며 불출석했다. 당시 법사위원장이던 정청래 대표는 조 대법원장을 향해 “오만하다”고 질타했다.
민주당의 ‘조희대 때리기’는 한덕수 전 총리와의 회동 의혹 제기로 정점에 달했다. 서영교 부승찬 의원 등은 조 대법원장이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3일 후인 4월 7일, 한 전 총리 등과 오찬 회동을 했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조 대법원장이 “이재명 사건이 올라오면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의혹도 보탰다. 여권에선 조 대법원장의 자진사퇴가 아닌, 탄핵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조 대법원장을 비롯해 회동 참석자로 지목됐던 인사들이 모두 부인하고, 의혹을 제기한 의원들 역시 정확한 근거와 출처를 내놓지 못하면서 역풍이 불었다. 국민의힘은 ‘제2의 청담동 첼리스트 사건’이라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9월 19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그것(회동 의혹)을 처음 거론한 분들이 있다. 말한 분들이 해명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당 차원에서 선을 그은 것으로 읽혔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의 사법개혁 드라이브가 주춤할 것으로 점쳤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도 “당 지도부 차원에서 자제령이 내려왔다. 조희대-한덕수 회동 폭로를 입증하지 못하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법원개혁을 해야 한다는 데엔 이견이 없지만 마치 특정인에 대한 보복으로 비칠 우려가 높다. 검찰개혁과는 달리 여러 사정을 고려해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9월 22일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조희대 청문회’ 실시 계획 안건을 기습 상정했고, 이에 반발한 국민의힘이 퇴장한 가운데 강행 처리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민주당 의원들조차 “진짜냐”고 반문했을 정도였다. 추 위원장은 원내 지도부와도 사전에 협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청래·김병기 ‘투톱’ 역시 패싱을 당했다는 의미다. 앞서의 초선 의원은 “추미애 법사위의 쿠데타”라고 말했다.

청문회를 의결한 날, 법사위에선 강경한 발언들이 쏟아졌다.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은 “조희대 대법원에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사법 쿠데타를 저질렀고, 사법부가 대선에 개입한 만큼 국회가 국민들을 대리해 물어야 한다”고 했다. 서영교 의원은 “(대법원은) 단 하루 만에 파기환송 시켜버렸다. 이런 대법원장을 우리가 믿을 수 있나”고 했다. 이성윤 민주당 의원은 “조 대법원장은 (한덕수 전 총리와의) 만남을 부인했지만 우리가 동지의 말을 믿어야 하나, 조희대 말을 믿어야 하나”라고 했다.
법사위 강경파 의원들의 밀어붙이기를 두고 정가에선 당 지도부 스탠스에 시선이 모아졌다. 민주당은 ‘조희대 청문회’에 대해 당론은 아니지만 상임위 결정을 존중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적극 지지를 표명하지 않았다는 점을 두고 불편한 심기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다. 당이 검찰개혁안을 제외한 언론과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이 아닌 11월로 미루기로 한 것도 법사위 강경 행보와는 결이 다르다는 평이 나왔다.
정청래 대표는 법사위 손을 들어줬다. 그는 9월 23일 페이스북에 “우리 국민은 이승만 대통령도 쫓아냈고, 박정희 유신 독재와 싸웠고, 광주 학살 전두환·노태우도 감옥 보냈고, 부정 비리 이명박도 감옥에 보냈고, 국정 농단 박근혜, 내란 사태 윤석열도 탄핵했다”며 “대통령도 갈아치우는 마당에 대법원장이 뭐라고”라고 했다. 정 대표는 법사위원장 시절 ‘사법부의 대선개입 의혹 청문회’를 의결해 조 대법원장 증인 채택을 밀어붙인 바 있다.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 대표가 이런 발언을 내놓은 것은 사법개혁이 후퇴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란 게 정 대표 측근들의 공통된 해석이다. 조 대법원장이 9월 22일 “세종대왕은 법을 왕권강화를 위한 통치 수단이 아니라 백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규범적 토대로 삼았다”고 말한 게 민주당을 자극했다는 분석도 뒤를 잇는다.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조 대법원장의 ‘세종대왕’ 언급을 두고 “자기 죄를 덮기 위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라고 질타했다.

여권에서도 조희대 청문회를 걱정하는 기류가 팽배하다. 공개적으로 쓴소리도 나왔다. 친명 핵심그룹 ‘7인회’ 출신의 김영진 의원은 9월 25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 “법사위가 모든 정치를 대변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약간 급발진하지 않았나”라고 했다. 조희대-한덕수 회동 폭로와 관련해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가지고 청문회를 여는 것 자체는 적절하지 않다”며 “서영교 부승찬 의원이나,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조금 더 소명을 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사법개혁을 둘러싼 잡음이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과 무관하지 않다. 친명 일각에선 정청래 대표의 자기 정치에 대한 불만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9월 15~19일 실시해 22일 발표(표본 오차 95% 신뢰수준에 ±1.9%포인트)한 이 대통령 국정평가 여론조사에서 긍정적이라고 답한 비율은 53%였다. 전주 같은 조사에 비해 1.5%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는 2.5%포인트 오른 43.6%였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사석에서 만난 한 친명 의원은 “검찰개혁 때완 달리 사법개혁은 강경 지지층과 국민들 사이의 간극이 크다”면서 “무조건 밀어붙이면 안 된다는 취지의 말을 이 대통령이 여러 차례 했다. 그런데 당이, 정확히는 법사위가 듣지 않았다. 조희대 청문회는 득보단 실이 크다고 본다”고 했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 유엔 기조연설 뉴스가 조희대 청문회 파동으로 조금 묻혔다. 지난 100일 기자회견 땐 이재명-정청래 투톱 갈등이 있었다. 자꾸 당이 이 대통령 국정성과를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