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과감한 투자 필요하지만 특정 대기업 위한 금산분리·지주회사 규제 완화는 부적절…현 제도 안에서 자금 동원 방안 모색 가능

그러자 재계는 기다렸다는 듯 AI투자를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금산분리, 지주회사 규제가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 사실 재계라기보다는, 현재로서는 SK그룹과 특히 SK하이닉스의 요구라고 표현해야 정확할 듯하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 20일 ‘기업 성장 포럼’에서 기업이 원하는 것은 금산분리가 아니라며, 실질적으로는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제도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따른 지주회사인 SK그룹은 금산분리나 지분율 요건을 넘어서는 범위에서는 국민성장펀드 등 외부자금으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없다. 최태원 회장의 진의가 직접 대규모 외부 투자를 받고 싶다는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기존 규제의 완화나 예외 허용이 필요하다. 결국 최 회장은 아니라고 하지만, 금산분리나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등에 관한 지주회사 규제 완화를 원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SK와 같이 소유지분구조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는 통상적으로 계열회사를 피라미드식으로 소유·지배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경우 지배주주는 지주회사에 대해서만 최대주주를 유지하면, 사실상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주주 지위를 갖게 된다. 공정거래법은 가급적 지주회사가 계열회사 지분을 최대한 많이 소유하도록 법률상 최소 지분요건을 두는 한편, 비금융 지주회사는 원칙적으로 금융회사 소유를 금지한다. 피라미드식 지분구조를 통해 지배력을 행사하고자 한다면, 계열사 지분을 최대한 많이 소유함으로써 이해상충의 근원인 소유-지배 괴리를 줄이라는 취지이다. 나아가 고유의 사업위험이 금융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하되, CVC는 예외적으로 펀드를 통해 외부자금을 40%까지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대기업 중심으로 급격한 성장을 이뤘지만, 동시에 경제력 집중의 폐해와 대규모 외환위기를 겪은 우리나라가 택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규제 완화가 대규모 AI투자를 위한 유일한 길이라면, 그 폐해를 무릅쓸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제도 틀 내에서도 어느 정도 자금 동원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고 본다. SK하이닉스는 현행 제도 하에서도 CVC 등을 통해 외부자금을 40%까지 조달할 수 있고, SK나 SK스퀘어가 합작법인을 만든다면 50% 이상만 지분을 보유하면 된다. 나아가 외부자금이 반드시 지분출자의 형태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차입도 일부 포함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내부자금이 부족하다면, 최 회장 지분이 낮아지더라도 SK가 자금을 조달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
한편, SK그룹은 공정거래법상 CVC 도입을 허용할 때에도 누구보다 강력하게 이를 주장했다. 그러나 SK그룹은 지금까지 CVC를 설립하지 않았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지난 6월 26일 발표에 따르면 2024년말 기준 CVC에 투자한 사실이 없다. 제도나 규제의 한계를 강조하는 재계의 목소리를 그대로 신뢰하기 어려운 이유다. 새로운 성장동력 화보와 경제력 집중 방지를 위한 규제가 더 이상 양자택일로 강요 되지 않기를 바란다.
노종화는 회계사이자 변호사다. 현재(2017년 5월~)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3월부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상근)으로도 재직 중이다.
노종화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