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부실” 당내 반발에 결정 미뤄…차기 당권 둘러싼 전초전 해석, 정 대표 대항마로 김민석 총리 부상

11월 17일 정청래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권리당원 권한 대폭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당헌·당규 개정 추진을 본격화했다. 이에 따르면 당대표·최고위원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 대 1 미만으로 정한 규정은 1 대 1로 변경한다. 6·3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등 후보자는 예비경선을 실시해 권리당원 100% 투표로 본경선 진출자를 선발한다. 광역·기초자치단체 비례대표 의원 후보 순위 역시 권리당원 100% 투표로 정한다.
정 대표는 “민주당의 당권은 당원에게 있고, 모든 당권도 당원으로부터 나온다”며 “내년 실시되는 6·3 지방선거에서 열린 공천 시스템으로 공천 혁명을 이룩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10월 당비를 낸 전국 권리당원 165만 명을 대상으로 당헌·당규 개정안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당초 민주당은 당헌·당규 개정을 위한 ‘전 당원 투표’를 한다고 발표했다가 ‘의견수렴을 위한 절차’로 수정했다. 친명 진영에서 ‘전 당원 투표’를 하려면 당비 납부 1개월이 아니라 6개월 이상으로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새로 가입한 당원들 중 대부분이 정 대표를 지지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11월 20일 민주당은 투표 결과 찬성 86.81%, 반대 13.19%가 나왔다고 밝혔다. 투표에 참여한 권리당원은 총 27만 6589명이다. 16.81%가 참여했다.

전 당원 여론조사에 대해서는 “참여한 당원이 전체 권리당원 164만여 명 중 27만 6589명(16.81%)에 그쳤다. 만약 중요한 투표였다면 당헌·당규상 정족수인 권리당원 100분의 30에 미달해 투표가 불성립했을 것”이라며 “164만여 명 중 16.8%에 불과한 24만여 명이 찬성한 결과를 두고 ‘압도적 찬성’이라며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1인 1표제’의 과대대표 우려도 나왔다. 8월 2일 임시전당대회 기준 민주당 권리당원 수는 약 111만 명이다. 이 중 호남 권리당원 수는 약 36만 명이다. 반면 영남 권리당원 수는 약 9만 명 수준이다. 전 당원 1인 1표제가 도입될 경우 호남 권리당원 영향력이 더 커지게 되지만 영남 등 험지 권리당원의 영향력은 약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친명계 강득구 의원은 11월 23일 페이스북에 “대의원제는 단순히 기득권 구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균형, 전국정당의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당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전략적 보완 장치가 담겨 있다”며 “1인 1표를 도입한다는 이유로 그 보완 장치의 취지까지 모두 없애버린다면 그것은 우리 당의 역사와 정체성, 가치를 훼손하는 우를 범하는 졸속 개혁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11월 23일 페이스북에 “1인 1표제는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 당원주권정당, 당원주권시대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이재명 대표 시절부터 3년 여간 꾸준히 요구되고 논의했던 사안”이라고 적었다. 이번 당헌·당규 개정이 이 대통령의 당원주권 강화를 골자로 한 개혁 방향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친명계를 중심으로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이 대통령을 앞세워 이를 진화하려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당권 다툼 전초전
정치권에서는 이번 논란을 두고 차기 당권을 둘러싼 정 대표 측과 친명계 간 전초전 성격으로 해석한다. 많은 친명 인사들은 정 대표가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을 장악할 때 썼던 ‘당원권 강화’ 전략을 쓰고 있다고 본다. 과거 이 대통령은 ‘개딸’ 등 강성 팬덤을 기반으로 당내 입지를 넓혔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70 대 1 수준인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비율을 20 대 1로 축소했다. 이를 바탕으로 친명 단일대오를 구축했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정 대표 핵심 지지 기반도 당원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친여 성향 유튜버 김어준 씨가 운영하는 ‘딴지게시판’에 글을 올리며 당심 잡기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전당대회의 2차 임시전당대회 땐 권리당원 투표에서 박찬대 후보(33.52%)보다 약 30%포인트(p) 앞선 66.48% 득표율을 기록한 바 있다. 반면 대의원 투표에서는 득표율 46.91%를 기록하며 박 후보보다 6.18%p 뒤졌다.
당원 권한을 확대하고 대의원 권한을 축소하면 정 대표 연임에 유리한 구도가 조성된다는 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고위원, 광역·기초자치단체장, 광역·기초 의원 비례대표 순번 등을 당원투표 100%로 정하면 ‘당심’에 강점이 있는 정 대표 영향력은 더 커진다. 친명계가 당헌·당규 개정이 정 대표 연임을 위한 포석이 아니냐고 의심하는 이유다.
정 대표 리더십은 시험대에 올랐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전 당원 1인 1표제’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졸속·부실 추진은 문제가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 대통령 순방 때마다 지도부가 논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서도 불만이 제기된다. 이언주 최고위원은 11월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왜 이재명 대통령 순방 중에 이렇게 이의가 많은 안건을 밀어붙이느냐, 당원들을 분열시킬 필요가 있느냐”라고 말했다.
당이 이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를 희석시키고 있다는 목소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9월 정부는 한반도 평화 구상인 ‘END 이니셔티브’를 발표했지만, 법사위의 조희대 청문회 ‘기습 의결’에 묻혔다. 당 지도부는 추미애 법사위원장에게 구두주의를 줬다.
11월 2일 APEC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을 때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재판중지법’을 ‘국정안전법’이라 부르며 신속한 처리를 예고했다. 이 대통령의 APEC 일정은 재판중지법에 가려졌다.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11월 3일 “대통령을 정쟁의 중심에 끌어넣지 말아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두고 정 대표를 향한 대통령실의 경고성 메시지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었다.
11월 24일 사석에서 만난 한 친명 의원은 “정치인이 자기 정치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정치인 정청래’는 집권당의 대표다. 개인이 아닌, 국가와 정부를 우선해야 한다고 본다. 자신의 언행이 대통령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면서 “1인 1투표제를 하는 것에 대한 반발에 왜 이재명 대통령을 거론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벌써부터 정 대표 대항마로 김민석 총리가 거론되는 것은 이 같은 친명계 기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연임을 노리며 자기 정치를 하고 있는 정 대표를 향한 불쾌감이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 김 총리는 11월 24일 유튜브 ‘매불쇼’에서 “임면권자가 있기 때문에 제가 ‘무엇을 하고 싶다’ ‘아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좀 넘어서는 것 같다”고 했다. 이 대통령 결단에 따라 출마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한 발언으로 정가에선 파장이 크다.
김 총리가 차기 당 대표에 도전하면 여권 지형은 새로운 분기점을 맞게 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을 등에 업은 김 총리와 재선에 도전하는 정 대표 간 대결이 벌어질 경우 당 주류인 친명계는 분화의 길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민주당 강경 지지층 역시 마찬가지다. 이 과정에서 지방선거 결과가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정 대표가 지방선거에 사활을 거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일부 친명계 유튜버, 대의원·권리당원·평당원 등은 당헌·당규 개정안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당헌·당규 개정 논란이 법적 다툼으로까지 번진 셈이다. 이들은 정청래 대표가 소수 지도부의 ‘사적·정치적 목적’을 위해 당의 헌법인 당헌·당규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11월 24일 보완책이 논의되고 있다며 진화에 나섰다. 박 수석대변인은 “‘1인 1표만 졸속으로 처리한다’는 식의 말씀들이니 오해가 더 생기는 것 같다”며 “심지어는 ‘정청래 재선용 개정’이라는 등 음모론이 등장하고 당을 위한 진심의 제안들임에도 불구하고 생산적 결론이 아니라 오히려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지도부 관계자도 “(이 대통령) 순방 갔을 때 발표한 것이 아니고, 절차적인 것”이라며 “그렇게 보는 시각 자체가 왜곡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11월 24일 비공개 당무위원회에서 ‘전 당원 1인 1표제’ 당헌 개정 최종 결정은 일주일 연기됐다. 후속 절차인 중앙위원회를 12월 5일로 미뤘다. 당무위원회에서는 권리당원이 집중된 호남 과잉 대표 우려, 졸속 추진 비판 등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졸속 추진 문제를 제기하자 조승래 사무총장이 반박하는 등 설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반대 여론을 의식해 최종 결정을 미룬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는 “지방선거 공천룰과 1인 1표 당헌 개정에 대해 수많은 논의를 해왔기 때문에, 절차와 숙의를 거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면서도 “다만 그 내용이 아직 부족한 점이 있으니 면밀하게 숙의 과정을 거치자, 라는 의견들이 모아졌다. 중앙위가 일주일 연기된 동안에 지혜를 모아서 보완책을 마련하고 당원주권 시대를 활짝 열기 바란다”고 했다.
한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숙의 과정이) 필요했다. 그런데 1인 1표제를 그날 의결해버렸다. 후속으로 대의원 TF단에서 보완하는 게 되겠느냐”며 “이렇게 급하게 처리할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담론을 잘 모아가야 했다. (발표 타이밍 논란 등) 이런 오해도 받지 않아야 됐다”고 지적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