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집 사람들’ ‘콘크리트 마켓’ 선공 펼쳐…‘오세이사’ ‘만약에 우리’ 크리스마스 겨냥한 멜로

한국영화들이 여름과 더불어 극장가 대목으로 꼽히는 12월 개봉을 주저한 이유도 ‘아바타: 불과 재’의 독주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섣불리 맞붙었다가 그야말로 ‘본전’도 못 찾고 간판을 내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흥행작이 탄생하면 전체적으로 극장을 찾는 관객이 증가한다는 기대감도 동시에 작동하면서 무려 4편이 연이어 개봉하게 됐다. 다만 한국영화들은 대작이 아닌 장르와 소재로 승부수를 던지는 ‘2등 전략’에 주력한 모양새다.
#‘아바타: 불과 재’에 맞선 한국영화들

‘윗집 사람들’은 아이디어와 ‘말맛’으로 승부하는 코미디다. 층간소음을 겪는 윗집 부부와 아랫집 부부가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자리에서 각자의 성생활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다. 한정된 공간에서 주인공 4명이 내뱉는 ‘29금’의 도발적인 대화가 주를 이룬다. 하정우와 이하늬가 과감한 윗집 부부로, 공효진과 김동욱이 권태기인 아랫집 부부로 호흡을 맞췄다. 개봉을 앞두고 연 시사회에서 부부들의 내밀한 성생활을 코미디로 풀어낸 재미에 호평이 나오고 있다. 하정우는 “연말에 많은 사람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같은 날 공개하는 ‘콘크리트 마켓’은 세상을 무너뜨린 대지진 이후 남은 폐허의 아파트에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사고팔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종말이 임박한 재난 그 이후의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으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자들의 긴박한 사투를 그린다. 당초 OTT 시리즈로 제작해 촬영을 마쳤지만 이를 극장 개봉 영화로 편집해 먼저 선보이는 전략도 이색적이다. 홍경과 이재인을 비롯해 정만식, 유수빈, 김국희 등 개성 강한 배우들 출연해 긴장감을 높인다.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멜로 영화도 이어진다. 12월 24일 개봉하는 추영우와 신시아 주연의 ‘오늘밤, 이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오세이사)와 12월 31일 관객을 찾는 구교환과 문가영의 ‘만약에 우리’다. 눈물을 동반한 사랑 이야기로 1020세대 관객을 집중 공략하는 데이트 무비로 경쟁력을 갖췄다.
특히 두 영화는 흥행에 성공한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오세이사’ 자고 일어나면 전날의 기억을 모두 잊는 소녀와 그의 기억을 새롭게 채워주는 소년의 첫사랑을 그린다. 2022년 개봉해 120만 관객을 동원한 동명의 일본영화가 원작으로 강력한 눈물을 동반하는 이야기의 힘이 이번 리메이크로도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만약에 우리’는 헤어졌다가 10년 만에 다시 만난 옛 연인들의 이야기로 역시 중국영화 ‘먼 훗날 우리’를 한국의 정서로 리메이크했다. 구교환은 한때 뜨겁게 사랑했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연인과 헤어진 은호로, 문가영은 그와 사랑한 옛 연인 정원으로 호흡을 맞췄다.

이들 영화의 흥행 여부가 더 주목받는 이유는 올해 한국영화가 거둔 저조한 성적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기도 하다. 올해 극장 개봉 영화의 흥행 1위 자리를 외화인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565만 명)에 내준 데다, 전체 한국영화 관객 수도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한 2020년 이후 최저치에 머물고 있다. 11월 27일 기준 올해 한국영화 관객은 4176만 2142명으로 4년 만에 다시 4000만 명대로 하락했다. 올해 외화 총 관객인 4860만 4095명과 비교해도 낮은 수치다.
매년 꾸준히 탄생한 1000만 관객 한국영화의 부재도 이 같은 부진에 영향을 미쳤다. 2022년 ‘범죄도시2’와 2023년 ‘서울의 봄’ ‘범죄도시3’, 지난해 ‘파묘’까지 매년 관객의 전폭적인 선택을 받는 1000만 흥행작이 나왔지만 올해는 없었다. 올해 한국영화 흥행 1위는 563만 명을 동원한 조정석 주연의 ‘좀비딸’이다.
이런 가운데 최대 기대작으로 꼽히는 ‘아바타: 불과 재’의 등판으로 한국영화는 반등의 기회를 잡기가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다. 더욱이 12월 한국영화들이 규모나 스타급 배우를 앞세워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층을 공략하기보다 ‘취향’을 겨냥하는 작품에 집중된 점도 기록 탄생을 낙관하기 어렵게 한다.
다만 ‘아바타: 불과 재’도 제약은 있다. 상영시간이 무려 195분에 달한다. 이는 ‘아바타’ 시리즈 가운데 최장 시간으로 관객의 극장 관람 선택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갈수록 러닝 타임이 짧은 콘텐츠를 선호하는 분위기에서 장장 3시간 15분 동안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일에 대한 호기심과 의구심이 교차하고 있다. 이야기 역시 1, 2편에서 이어지는 만큼 앞의 시리즈를 보지 않았다면 세계관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도 진입 장벽을 높인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