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활비 삭감됐지만 지역화폐 등 핵심 항목 원안 통과…GDP 대비 부채비율 51.6%로 상승해 재정건전성 우려

12월 2일 밤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727조 8791억 원(총지출 기준) 규모의 2026년도 예산안을 의결했다. 법정시한을 넘기지 않았다.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약 4조 3000억 원이 감액됐고, 이 중 상당액은 다른 항목으로 채워졌다. 최종적으론 정부안보다 1268억 원이 줄어든 예산안이 나왔다.
‘내로남불 논란’에 휩싸였던 특수활동비는 일부 삭감됐다. 앞서 정부·여당은 자신들이 전액 삭감했던 대통령실 특활비를 부활시켰다. 검찰 특활비는 정부안 72억 원에서 31억 5000만 원으로 삭감됐다. 대통령실 특활비는 삭감 없이 82억 1500만 원으로 책정됐다. 대통령실 운영비는 13억 5000만 원으로 1억 원 삭감됐다. 국민의힘은 특활비 삭감 대신 운영비 감액에 합의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의 ‘통상대응지원프로그램’ 관련 예산은 전액 삭감됐고, 다른 항목으로 조정됐다. 당초 정부안에는 기재부 7000억 원, 금융위 6300억 원이 편성된 상태였다. 대신 국회는 기획재정부 소관 ‘대미 투자 지원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여기에 1조 1000억 원이 배정됐다. 이는 미국에 대한 투자 지원 등 통상 문제에 투입될 전망이다.
이재명 정부 핵심 정책인 인공지능(AI) 관련 예산은 2064억 원 삭감된 10조 1000억 원으로 편성됐다. AI 예산 10조 1000억 원 중 2조 6000억 원은 산업·생활·공공 전 분야 AI 도입에 투입된다. 인재 양성·인프라 구축에는 7조 5000억 원이 들어간다.
일부 AI 관련 예산에 대해 ‘가짜 AI 예산’이라며 감액을 주장한 국민의힘의 요구가 관철된 셈이다. 야당 간사 박형수 의원은 “AI 이름으로 산재돼 있고 방만하게 편성된 예산을 정리해 삭감할 부분을 삭감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국회예산정책처도 ‘2026년도 예산안 총괄 분석’에서 AI 관련 예산에 대해 분류 기준 부재, 부처 간 조율 미흡, 예비타당성조사 원천적 배제 등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비효율적인 예산 집행이 우려된다고 했다. AI 예산 관련해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관련기사 빛의 속도로 빚 증가 중인데…‘첫 700조 원대’ 예산안 정국 관전 포인트).

이외에도 지역소멸위기 극복 및 균형성장 촉진 등 균형성장 분야에 2조 6111억 원이 편성됐다. 지방소멸대응기금 1조 원, 마을기업 육성사업 53억 원, 다부처 협업지역역량성장거점 활성화 17억 원 등이 확보됐다.
국민안전 관련 예산은 2조 5351억 원이 책정됐다. 재난대책비에는 1조 100억 원, 재난안전 AI 관제체계 및 데이터 구축에는 124억 원 등이 편성됐다. 대형 산불이 났던 경북 울진군 재해위험지역 정비사업 예산은 정부안 2억 원에서 약 54억 원으로 대폭 증액됐다.
과거사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 및 치유에 대한 예산으로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전국단위 위령시설 조성에 184억 원, 대일항쟁기강제동원조사지원에 86억 원, 국립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 38억 원, 자원봉사 활성화 183억 원 등이 편성됐다.
국민의힘이 요구한 도시가스 공급 배관설치 지원, 국가장학금, 보훈유공자 참전 명예 수당 등에 대한 예산도 증액됐다. 각각 1400억 원, 706억 원, 192억 원 등이 늘어났다.
더불어민주당 요구 사안인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재해복구시스템 구축에는 3934억 원, 분산전력망 육성사업에는 2171억 원 등이 투입될 예정이다. 앞서 9월 2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본원 전산실에서 화재가 발생해 정부 전자시스템이 마비됐다.
#밀실 합의와 쪽지예산
이번 국회 예산 심사에서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소위’가 등장했다. 2008년 법정시안(12월 2일)까지 예산안이 합의되지 않자 당시 여야는 예결위 산하 예산안조정소위 안에 소소위를 설치했다. 예결위원장과 여야 간사가 빠르게 합의를 도출하자는 취지였다. 이번에도 한병도 예결위원장, 이소영 여당 간사(민주당), 박형수 야당 간사(국민의힘) 등이 소소위를 구성했다.
문제는 소소위가 법적 근거 없다는 점이다. 회의는 비공개다. 속기록도 없다. 다른 예결위 의원들도 전모를 다 알기 어려울 정도로 깜깜이로 진행된다. 이처럼 기록되거나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의원들은 은밀히 ‘쪽지예산’을 밀어 넣을 수 있다. 쪽지예산은 예산안에 공식적으로 올라가 있지 않은 지역구 관련 예산을 소소위에 부탁해 뒤늦게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통과된 예산안에 따르면 몇몇 여야 의원들의 지역구 관련 예산은 정부안보다 증가했다. 없던 예산이 새로 배정되는 경우도 있었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서울 동작갑)는 불교전통 문화관 건립 예산 2억 원을 증액했다. 문진석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충남 천안갑)는 천안아산역 방음벽 설치 비용 27억 원, AI 기반 모빌리티 제조 혁신 거점 조성 20억 원, 성거-목천 국도 건설 5억 원, 천안시 폐기물 처리 시설 확충 비용 5억 원 등을 증액받았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경북 김천)는 김천 직지사 대웅전 보수 정비 사업에 2억 2500만 원, 양천-대항 국도 대체 우회도로 착공에 10억 원, 문경-김천 철도 건설에 30억 원 등을 새로 반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상범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강원 홍천·횡성·영월·평창)는 평창 도암호 유역 오염저감시설 확충에 81억 8300만 원 등 총 89억 8300만 원의 예산을 배정받았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번 예산에 대한 정책리뷰에서 “법적 시한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절차를 지키는 것”이라며 “그런데 11월 21일 이후 예결위를 소집하지 않고 법적 근거 없는 민주당-국민의힘 비공개 간사협의라는 밀실에서 논의됐다”고 지적했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심사보고서조차 작성하지 못한 채 교섭단체 간사협의를 통해 협상한 내용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는 나쁜 관행을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정 건전성 갑론을박
2026년도 예산안이 확정되면서 국가부채는 1413조 8000억 원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국내총생산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은 51.6%까지 높아진다. 처음으로 50%대를 넘게 되는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2월 2일 ‘경제 전망’에서 한국의 확장 재정정책, 완화적 통화정책, 실질임금 상승 등으로 민간 소비가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OECD는 “재정 건전성 강화 계획은 부재하며, 정부는 법인세 수입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향후 수년간 국내총생산(GDP)의 4%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OECD는 “단기 지원이 장기적 재정 누수로 이어지면 안 된다”며 “지출 계획에는 공공 재정을 지속 가능한 경로로 되돌리겠다는 초당적 약속이 뒤따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전 정부(윤석열 정부)에서는 안 쓰고 –4%였고, 지금은 쓰고 –4%다. 국민 입장에서는 쓰고 –4%가 낫다”며 “재정적자율이 (2024년, 2025년과) 비슷하기 때문에 (이재명 정부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김상봉 교수는 “적자율이 4% 정도 나오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 증가율이 높다. (다음 예산안을 짤 때) 증가율을 줄여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