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제공 ‘0건’ 항철위 ‘제 식구 감싸기’ 논란까지 키워…유족 “원인은 국회 무관심, 반짝 국정조사 우려”

1월 8일 ‘12·29 여객기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야당 간사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국토부와 항철위로부터 제출받은 연구용역 보고서 요약본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무안국제공항에 콘크리트 둔덕이 없으면 사고 여객기는 동체 착륙 후 약 770m를 지난 뒤 정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탑승객들은 치명적인 충격을 받지 않았을 것으로 분석됐다.
국토부는 김 의원 측에 이 둔덕이 공항 안전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고 했다. 2020년 개량 사업 때 정밀 접근 활주로 착륙대 종단에서 240m 이내 구간 시설물은 부서지기 쉬운 구조로 개선됐어야 한다고 했다. ‘법을 어긴 것은 아니다’는 과거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앞서 국토부는 종단안전구역 밖은 별도 규제가 없어 콘크리트 둔덕 설치가 국내·외 규정을 위배했다고 해석하기 어렵다고 했다. 착륙대 240m 이내 항행안전시설 설치 규격을 제한하는 내용의 공항안전운영기준 109조는 2010년부터 적용됐기 때문에 무안공항은 해당 사항 없다고 했다.
보고서가 공개되자 유족들을 대표하는 단체인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 협의회’는 “(항철위와 경찰은) 둔덕 관련 용역이 진행되는 전 과정에서 과업지시서, 연구 내용, 결과 보고서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정보를 차단했고, 유가족의 반복된 요구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유가족 협의회는 △정보 은폐에 대한 항철위 사과 △조사 기구 독립을 골자로 한 법 개정 △모든 조사 자료 유족 공유 △국정조사 통한 사고 원인 명명백백한 규명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사고의 책임 주체가 될 수 있는 기관이 스스로 조사와 검증의 틀을 쥐고 그 결과마저 은폐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사안은 결코 묵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항철위에 대한 유족들의 불신은 2025년 4월 ‘12·29 여객기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진상규명 조항이 빠지면서 커지기 시작했다. 유족들 사이에서는 진실이 은폐될 수 있다는 우려가 퍼졌다.
같은 해 7월 19일 항철위의 엔진 정밀조사 결과 브리핑 시도 사건이 발생했다. 엔진 결함은 없었고, 조종사 실수로 반대쪽 엔진을 껐다는 내용의 브리핑이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조종사가 엔진을 끄기 위해 여러 안전장치를 해제했다는 점이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유족들은 진상 규명 없는 일방적 통보라고 반발했다. 유족 반발로 브리핑은 취소됐다. 유족들은 ‘조종사 과실’ 입증 증거와 CVR(조종실음성기록장치) 등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7월 28일 유족들은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토부와 항철위를 향해 ‘12·29 여객기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에 명시된 유족의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항철위는 자료 공유를 거부했다.
8월경에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시작했다. 전남지방경찰청 앞에서도 1인 시위를 벌였다. 책임자 처벌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도 책임자 형사처벌은 없다. 유족들이 정부의 진상조사와 관련자 처벌 의지를 의심하는 이유다.
9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항철위 설명회는 갈등만 증폭시켰다. 이날 유족은 성명서를 내고 항철위가 여전히 자료를 공유하지 않고 있다고 알렸다. 설명회에 참석한 의원들도 자료 비공개 결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항철위는 ‘조사 결과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정보 공개를 거부했다.
김유진 유가족 협의회 대표는 ‘항철위 정보공유 0건 사태’의 이면에는 국회의 무관심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계속 말씀을 드렸는데, (국회가) 아무도 관심을 안 가졌다”며 “저희는 국회에 계속 이야기를 전달했다. 특별법만 제정해줬다. 진상규명 조항이 빠진”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그 특별법으로 만들어진 것 중에 저희가 지원 받고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의료비를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예산이 없어서 제 돈 주고 병원 다니고 있다”면서 “이제 (국회가) 본격적으로 나서겠다고 했는데, 국정조사 반짝하고 또 끝나는 것 아닌가. 심리지원, 트라우마 관련 병원비 지원도 전혀 안 되고, 생계지원비 1회 지원하는 것 있는데, 그것도 지급 안 됐다”고 했다.
#항철위 독립 하세월
2025년 1월 발의된 항철위 독립을 골자로 한 ‘항공철도 사고 조사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은 약 8개월 뒤인 9월에야 1차 교통법안심사소위가 열렸다. 당시 국토위 내부에서는 항철위 국무총리실 이전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록에 따르면 국토부 제2차관 출신인 손명수 민주당 의원은 정부조직 개편 법안인 만큼 신중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나라들처럼 항철위를 국토부에 존속시키되 독립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도 손 의원 의견에 동의했다. 손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대체 법안을 내겠다고 했다. 그러나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관련 법안은 발의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항철위 분리 법안은 발의 1년 만인 1월 15일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법안에 따르면 항철위는 국무총리실 산하로 들어간다. 위원들은 새로 뽑는다. 항철위 이관 절차가 길어질 경우 진상규명 작업에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일종의 극약처방인 셈이다. 가장 문제가 됐던 정보 공유도 강제 조항은 없다. 피해자 및 유족이 정보공개를 요청할 경우 공개 여부와 범위를 심의하도록 규정했을 뿐이다.
유가족 협의회 한 관계자는 “(현행 항철위는) 너무 신뢰도가 떨어졌다. 저희가 봤을 때는 전문성도 너무 떨어진다고 본다”며 “최대한 빨리 (진상규명을) 할 수 있게 국무총리실에서 (새 항철위 구성을) 준비해달라고 따로 말씀을 드렸다. 빠른 조사보다 바른 조사를 하자. 저희 입장이다. 좀 늦더라도 그렇게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