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모의를 몰랐다’ ‘단순히 지시 따랐다’ 항변 통하지 않는다는 가이드라인 준 셈

언론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도 중형이 예상된다고 보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사후’에 비상계엄을 인지하고도 이에 협조한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이나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에게도 징역 20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위로부터의 내란’을 더 엄중하다고 본 재판부
재판부는 이번 비상계엄이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과 그 추종 세력들에 의해 위로부터 자행됐다’는 점을 중요하게 판단했다. 과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신군부 시절 일으킨 ‘아래로부터의 내란’과는 위헌성을 비교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선출된 권력자가 스스로 헌법과 법률을 무너뜨리는 행위는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념을 뿌리째 흔드는 행위라고 본 것이다. 또 과거와 달리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이 됐는데, 이러한 위상에서 발생한 비상계엄은 국가 경제와 정치에 미친 충격 역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고 판단했다.

국무총리라는 자리의 중대함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국무총리는 대통령에 이어 국정 운영의 제2인자로서 헌법을 수호할 막중한 의무가 있는데, 피고인이 윤 전 대통령의 위헌적 지시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고 오히려 그 실행을 지지한 것은 부작위에 의한 내란 실행 행위와 다름없다”고 판시한 것이다.
또 피고인은 내란 종료 후에도 관련 문건을 은닉하고 허위 공문서를 작성·폐기했으며, 헌법재판소에서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거짓 진술을 반복하며 진실을 은폐하려 한 점 역시 불리한 양형 요소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특검의 구형(징역 15년)보다 높은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예상보다 세다고? “1심에서 중대성 지적은 당연”
법조계에서는 ‘특검 구형보다 센 양형’에 놀라면서도, 재판 도중 어느 정도 예상된 흐름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당초 내란·외환 특별검사팀은 한 전 총리에 대해 “국무총리로서 대통령의 자의적 권한 남용을 견제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법 계엄 선포를 막지 않았다”며 내란 방조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공판 과정에서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추가해 공소장을 변경할 것을 지시했다. 특검은 ‘사전에 알지 못했고 사후에는 방조했다’고 봤지만, 정작 재판부는 ‘사후에만 알았다고 해도, 막지 않은 것으로만도 중요임무 종사에 해당한다’고 어느 정도 시그널을 보낸 셈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특검의 구형은 ‘사전에 함께하지 않았으면 방조범’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중요한 위치에서 내란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면 그것만으로도 공범’이라고 본 것”이라며 “다만 징역 23년이라는 형량이 2심이나 대법원을 거치면서 다소 감경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상민·박성재에게도 큰 영향

현재 이상민 전 장관은 계엄 선포 직후 경찰 병력을 동원해 국회 진입을 통제하고 언론사를 봉쇄하며 단전·단수를 지시하는 등 실질적인 폭동 행위에 가담한 혐의로, 박성재 전 장관은 비상계엄의 법적 근거를 제공하거나 수사 기관을 동원해 정치적 반대 세력을 체포·구금하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
두 사람 모두 내란 중요임무 종사가 적용됐다. 특히 이상민 전 장관 재판과 관련해 내란 특검은 1월 12일 결심공판에서 한 전 총리와 동일하게 징역 15년을 구형한 상황이다. 이 전 장관은 최후진술에서 “사전 모의나 공모 없이 불과 몇 분 만에 어떻게 (내란에) 가담해 중요임무 역할을 맡았다는 건지, 그 이유로 법정에 서게 된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며 한 전 총리와 유사한 해명을 내놓았지만,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1심 판단을 고려하면 ‘구형보다 센 양형’이 나올 가능성이 점쳐진다.
한 전 총리 재판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단전·단수 지시 이행을 논의한 것도 유죄의 판단 근거가 된 점도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징역 23년 선고는 사전 가담자가 아닌 이들에게는 가혹하게 보일 수 있지만, 적어도 ‘사전 모의를 몰랐다거나 단순히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는 가이드라인을 준 셈”이라며 “박성재, 이상민 전 장관의 경우 한 전 총리 선고를 감안하면 징역 18~25년 내외의 중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 mast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