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도용 협박 ‘스와팅’에 N번방 수법 닮은 불법촬영물 거래…해외 서버 기반 폐쇄성 탓 수사 쉽지 않아

경찰에 따르면 A 군은 디스코드에서 범행 대상 선정부터 신고 방식, 게시글 작성 요령 등을 다른 이용자들과 논의해 왔다. 이런 과정을 거친 뒤 A 군은 실제로 여러 개의 협박 글을 올렸다. 또 디스코드 대화방 다른 이용자들에게 자신과 갈등을 빚은 B 군 명의로 협박 글을 올리라는 지시도 했다. 실제로 한 유저가 A 군 지시에 따라 B 군 명의로 119안전신고센터에 암살 협박 글을 게시했다.
수사 과정에서 A 군은 “명의를 도용해 허위 신고를 하겠다”며 다른 10대들을 협박해 금전을 요구한 정황도 드러났다. 테러 등 위급한 상황을 허위로 신고해 경찰 등 공권력의 출동을 유도하는 이른바 ‘스와팅’ 범죄다. A 군이 이 같은 범행을 음성 채팅 플랫폼 디스코드에서 공모하고 실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디스코드는 텍스트·음성·영상 채팅을 동시에 제공하는 커뮤니티형 메신저 서비스다. 이용자는 ‘서버’라 불리는 대화방을 개설해 다수와 실시간 음성 채팅 및 커뮤니티 활동을 할 수 있다. 서버 운영자(방장)가 공유한 초대 코드를 통해서만 입장이 가능해 방장의 권한이 절대적이다.
젊은 층이 많이 사용하는 디스코드는 사이버 범죄에 악용될 위험 요소가 많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10대 청소년의 경우 또래 관계를 중심으로 디스코드 내 다양한 대화방에 참여하는데, 게임 아이템 거래 과정에서 실명과 계좌번호, 주소 등 개인정보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방장과 관계가 틀어질 경우 위 사례처럼 해당 정보가 명의 도용이나 허위 신고 등 스와팅 범죄에 악용되기도 한다.
실제로 디스코드에서는 타인의 신상 정보를 특정해 공개하는 행위가 집단적으로 나타난다. 특정인의 실명과 거주지, IP 주소, 부모의 연락처 등을 공유하거나 제보받는 것을 목적으로 한 이른바 ‘박제방’이 대표적이다. 박제방 표적이 된 사람은 단순 개인정보뿐 아니라 주변 지인 제보를 통해 특정 일에 어떤 활동을 했는지까지 공개된다.
‘일요신문i’가 들어간 한 박제방에는 박제 대상의 학교·휴대전화 번호·거주지·나이 등 개인정보가 적혀 있었고, 학교생활 관련 제보와 개인 사진 등이 게시돼 있었다. 심지어 성적으로 합성한 피해자 사진을 피해자 지인들에게 보내겠다는 협박성 발언까지 오가기도 했다. 또 다른 박제방에서는 10대로 추정되는 이용자가 “네 명의로 불법 자금이 들어오게 할 수 있다”, “가만히 안 있으면 범죄자가 될 수 있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요즘 젊은 층은 현실보다 온라인에서 관계와 경험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이들에게 스와팅이나 박제는 또래 집단 내에서 자신의 영향력과 권위를 과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디스코드는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처벌 사례가 많지 않아 범행을 저질러도 계정 정지 정도로 끝날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며 “이런 분위기가 범죄를 대담하게 만든다”고 했다.
현행 법체계로는 디스코드에서 발생하는 명의 도용 범죄를 온전히 다루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에는 단순한 명의 도용 행위만 직접 처벌하는 형법 조항이 없어 사문서위조나 사기 등 다른 범죄와 결합된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하다.
스와팅 범죄는 주로 공중협박 혐의로 처벌되는데, 온라인 플랫폼에서 타인의 이름이나 전화번호를 도용해 범행을 저질렀더라도 명의 도용 관련 규정을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신분증이나 주민등록번호 등 구체적인 인적 사항을 이용해 경제적 이득을 취한 사기 범죄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 처벌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 성착취물 공유 대화방에는 불법촬영물을 판매·매입한다는 게시글이 올라와 있었고, 판매 목록에는 아동·청소년 대상 불법 촬영물로 추정되는 항목도 포함돼 있었다.
또 다른 방에는 ‘VIP방’, ‘VVIP방’ 등 채널을 나누고 이용료를 차등화했다. 가격표에는 VIP-5000원부터 Ultimate-40만 원, Supreme-50만 원 등 단계별 요금이 적혀 있었다. 이용자들이 문화상품권 사진이나 코드를 방장에게 보내면 가격에 맞춰 채널에 올라온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이런 형태의 서버방은 텔레그램에서 여러 단계의 ‘대화방’을 운영하며 이용자가 낸 돈에 따라 접근 권한을 차등 부여해 성착취 불법촬영물을 유포했던 N번방 수법과 유사하다. 텔레그램에서 벌어지던 성착취 범죄 양상이 디스코드로 옮겨온 셈이다.
성착취물 유통 서버의 경우 관련 이용자들이 해외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서버를 폐쇄했다가 다시 개설하는 행태를 반복해 수사 당국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한 디스코드 성착취물 유통 대화방의 공지사항에는 경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다른 ‘대피용 서버’를 운영하고 있다는 안내가 올라와 있었다. 일부 서버에서는 공개 채널 대신 ‘1대1 채팅’을 통해 불법 영상물을 거래하겠다는 글도 확인됐다.
이윤호 명예교수는 “협박·성착취 유통 글 게시자에게 민·형사상 불이익이 실제로 뒤따른다는 선례가 충분히 축적돼야 하고, 공공과 민간이 유기적으로 대응해 범죄 억제 효과를 높여야 한다”며 “디스코드 등의 플랫폼이 자율적인 모니터링과 제재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승구 기자 win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