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관세로 시간 번 뒤 영구적인 관세 부과 전망…한미 FTA 유효성 강조, 대미투자특별법 지렛대 활용
지난 2월 20일(현지시각) 미 연방대법원은 IEEPA에 근거한 글로벌 관세 부과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대통령의 비상 권한이 의회의 고유 권한인 조세 및 관세 설정권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미국 우선주의를 방해하려는 급진적 판사들의 수치스러운 판결”이라며 “즉시 더 강력한 법적 수단으로 미국의 일자리와 산업을 지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백악관은 연방대법원 판결 직후 무역법 제122조를 근거로 한 새로운 관세 행정명령을 발표하며 정면 돌파 의지를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병기로 선택한 무역법 제122조는 ‘국제수지 위기’ 시 대통령이 최대 150일간 10%(15% 상향 추진 중) 내의 관세를 의회의 동의 없이 부과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법조계에서는 현재 미국의 상황이 이 법의 발동 요건과 맞지 않는다는 우려가 나온다. 122조 발동 요건을 보면 △심각한 국제수지 적자 △달러 가치의 급격한 하락 방어 등이다. 하지만 무역 적자는 크지만, 기축통화국으로서 결제 불능 위기는 아니고 현재 달러는 오히려 강세인 상황이다.
지적의 핵심은 무역적자(Goods deficit)를 마치 국제수지(Balance-of-payments) 위기처럼 치환한 점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달러가 강세인데 달러 하락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122조를 쓰는 것은 법적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 같은 논란 가능성을 전혀 몰랐을 리는 없다. 그럼에도 122조를 강행한 이유는 뭘까. 추후 법원에서 122조 발동 요건 충족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일단 관세를 징수해 시간을 벌겠다는 계산이다. 122조의 유효기간인 150일(7~8월경)이 지나면 트럼프 행정부는 더 강력한 ‘총알’을 장전할 것으로 보인다. 무역확장법 제232조(국가 안보)와 무역법 제301조(불공정 무역)다.
이 법들은 122조보다 발동 요건이 훨씬 포괄적이고 강력하지만, 반드시 ‘사전 조사’(6개월~1년)를 거쳐야 한다. 122조로 시간을 버는 동안 이 조사를 모두 마치고, 150일 뒤에는 ‘합법적 명분’을 갖춘 타깃 관세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트럼프의 계산일 가능성이 크다. 사실 연방대법원 위헌 판결은 지난해부터 어느 정도 예상이 됐다. 일부 조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중단됐던 조사도 재개됐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성공한다면 ‘관세 이어달리기’가 되는 셈이다.
#흔들리는 동맹국…“투자는 약속했지만 관세는 재협상”
미국에 거액의 투자를 약속한 동맹국들은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눈치는 보면서도 관세의 명분이 바뀐 만큼 기존의 무역협상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유럽연합(EU)의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집행부위원장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결정을 존중하며, 국제법에 어긋나는 일방적 관세에는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만에서도 야당인 국민당이 “IEEPA가 위헌이라면 TSMC 등의 투자 약속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며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일본 경제산업성 관계자는 “이미 투자가 시작된 프로젝트는 되돌릴 수 없으나, 관세 면제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추가 투자는 어렵다”고 전했다.
한국은 일단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약속을 되돌리기는 어렵다는 것이 청와대의 분위기다. 다만 환경이 바뀐 만큼 이 참에 좀 더 얻을 것이 있는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한국도 실리를 챙길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법적 효력을 강력히 주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조치가 아무리 거세도 양국 의회가 비준한 FTA는 조약으로서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입장에서는 트럼프 관세가 해제되면 다시 한미 FTA가 작동해 일본이나 유럽연합보다 유리한 위치로 복귀할 여지를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에 발동한 122조에서도 사실상 자유무역협정인 미-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통해 요건을 충족한 캐나다와 멕시코는 제외됐다. 유럽연합과 일본은 미국과 FTA를 맺고 있지 않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대미투자특별법’도 중요한 카드다. 이 법은 투자 규모와 시기, 투자 관련 세부 사항을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다. 미 행정부에는 “투자를 법제화했다”는 체면을 살려주되, 실제 집행 과정에서는 7월 관세 전환 시점과 연계해 ‘한국산 관세 제외(Carve-out)’를 이끌어내는 고도의 협상력이 필요하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법적 난관에 봉착하자 월가는 발 빠르게 ‘돈 냄새’를 맡고 있다. 최근 대형 로펌들은 ‘관세 환급 전담팀’을 꾸려 수입업체들을 공략 중이다.
특히 주목받는 것은 헤지펀드들의 움직임이다. 이들은 현금이 부족한 수입업체들로부터 ‘관세 환급 청구권’을 할인된 가격에 사들여 유동화하고 있다. 환급 청구권이 액면가 대비 약 40% 정도라는 관측이 나온다. 법원에서 관세 부과가 최종 위법으로 확정될 경우, 정부로부터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아 막대한 차익을 챙기겠다는 베팅이다. 관건은 대법원 판결 이후 환급 범위와 이자 산정이 어떻게 정리될 지다.
블룸버그통신은 “시장은 이미 트럼프의 관세가 법적 패배를 당할 가능성에 거액의 판돈을 걸고 있다”고 풀이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