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1기 때 버지니아 공장 추진했다가 보류…경동나비엔 “현재 물류창고로 사용 중”

경동나비엔 주주들이 더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경동나비엔이 트럼프 1기(2017~2021년) 때인 2020년 920억 원을 들여 미국 버지니아주의 공장을 인수했다는 점 때문이다. 당시 경동나비엔은 2024년까지 2만 5000평 규모의 생산 공장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계획대로 진행했으면 ‘관세 무풍지대’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연임에 실패하자 투자 계획을 취소했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우여곡절 끝에 백악관으로 귀환하자 이도 저도 못한 상황에 놓이게 된 셈이다.
#고성장 이어오다가 지난해 실적 꺾여
최근 신한투자증권은 경동나비엔에 대한 실적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4분기 매출은 4307억 원으로 전년 대비 7.6% 성장하지만, 영업이익이 311억 원으로 전년 대비 7.7% 감소할 것으로 봤다.
지난해 연간 실적으로 봐도 전년 대비 역성장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경동나비엔은 2022년 영업이익이 598억 원이었고, 2023년과 2024년 1059억 원, 1326억 원으로 각각 77%, 25% 급증했다가 지난해 1308억 원으로 소폭 뒷걸음질 쳤을 것으로 보인다.
관세 리스크가 부각되지 않았던 2024년 말만 해도 2025년 예상 영업이익이 1500억 원대였으니 주주들 입장에서는 상실감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실 관세 전쟁 초반만 해도 경동나비엔은 경쟁력을 앞세워 이를 쉽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2024년부터 미리 북미 지역에서 재고를 축적해 관세 리스크가 늦게 반영되도록 했고, 지난해 6월 북미향 온수기와 보일러 평균 가격을 3~7% 인상한 것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증권가에서는 내심 트럼프발 관세 폭풍이 2025년 중에는 해소되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는데, 만약 기대대로 됐다면 경동나비엔은 큰 타격 없이 트럼프 2기를 보낼 수 있었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보일러와 온수기는 실생활에 중요한 제품인 만큼, 관세 부과 대상에 제외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당시만 해도 실제로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관세 부과가 장기화하면서 경동나비엔의 실적도 흔들리고 있다. 경동나비엔은 지난해 12월에도 북미향 온수기 가격을 추가로 5% 인상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때문에 2026년 판매량이 기대치를 밑도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허성규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관세로 인한 타격의 절반은 가격 인상으로 보전되지만 남은 절반은 지속해서 마진율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관세 여파는 2026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경쟁사들은 치고 올라오는데…
경동나비엔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경동나비엔은 미국 공장 투자를 계획했다가 막대한 비용이 들 것이라는 점 때문에 오너 일가 차원에서 계획을 철회했다. 지금 현재도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2029년 1월 종료되니, 그때까지 버티자는 게 속내라고 한다.
경동나비엔은 창업주 2세인 손연호 회장이 아직 회장직을 맡고 있고, 그의 아들 손흥락 부회장이 지난해 3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손 부회장과 함께 대표이사직에 오른 인물이 장희철 대표인데, 2022년 경동나비엔에 입사한 장 대표는 LG전자에서 인도, 중국 생산법인장을 맡은 바 있다.
즉 장희철 대표가 처음 경동나비엔에 입사할 때만 해도 미국 생산 설비 구축에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정작 맡은 역할은 경기도 평택시 서탄공장의 생산기지 확대다. 장 대표가 생산과 품질 개선을 맡고, 손흥락 부회장은 영업마케팅 등 경영 전반을 총괄한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끝나더라도 상호 관세는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이다. 북미 시장에서 경동나비엔의 경쟁사로는 미국 기업인 에이오스미스와 리엠, 노르티츠, 브래드포드 화이트, 일본 린나이 등이 있다. 경동나비엔이 북미 지역 1위이기는 하나 린나이와는 기술 격차가 크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린나이는 조지아주 그리핀에 생산 공장을 보유하고 있어 경동나비엔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있다. 북미시장은 탱크리스 온수기 중에서도 콘덴싱과 넌콘덴싱 등 기술별로 주도권 싸움이 치열한데, 경동나비엔이 골든타임 시기에 관세라는 장벽을 만나 경쟁사들을 찍어 누를 기회를 놓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많다.
#프리미엄 이미지 있지만…신상품, 시장 개척 더뎌
물론 경동나비엔이 이미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했고, 이 덕분에 관세 여파는 중장기적으로는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분석도 있다. 지난해 이미 가격을 10% 인상했음에도 시장 지배력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며, 판매가에 관세를 꾸준히 전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속 프리미엄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느냐가 변수인데, 당연히 북미 시장이 최대 시장인 만큼 경쟁사들도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점이 우려되는 요인이다.

경동나비엔이 차세대 먹거리로 밀고 있는 HVAC(난방·환기·공조)에 대해서도 기대보다는 우려 요인이 더 많다. HVAC는 단순히 에어컨이나 보일러만이 아니라 건물 전체의 냉·난방·환기 시스템을 통합하는 솔루션 영역으로, 데이터센터 등 산업용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당연히 경동나비엔 같은 기업뿐 아니라 삼성전자, LG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대기업이 모두 관심을 두는 영역이다.
2024년 5월 370억 원을 지급하고 인수한 SK매직의 주방가전 사업 부문(현 나비엔 매직) 또한 기대보다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보일러를 계기로 국내 가전 시장을 뚫겠다는 목표로 인수했는데, 기존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지점이 마땅치 않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경동나비엔 관계자는 “미국 투자와 관련한 것은 이미 물류 창고로 사용 중에 있다”면서 “회사의 투자는 오너일가가 아닌 회사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민영훈 언론인 master@ilyo.co.kr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