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효과 무색, 공급 다변화 못해 원재료 수급 우려…롯데케미칼 “HD현대오일뱅크 통해 대응 가능”

전문가들은 나프타 부족 문제는 국내 모든 석유화학사가 겪어야 할 난제지만 수급이 다소 풀리더라도 롯데케미칼은 가격 상승의 수혜를 누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 공급망 다변화를 못 했기 때문인데 이참에 구조 개혁을 본격화해야 할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지난 3월 17일 증시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일부 풀렸다는 외신 보도에도 불구하고 롯데케미칼 주가가 크게 반등하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가 2배 된다” 기대감 치솟을 때 터진 전쟁
증권가와 석유화학 업계에 따르면, 전쟁 발발 전인 2월만 해도 롯데케미칼은 올해 기대주 중 하나였다. 이는 유안타증권의 보고서만 봐도 알 수 있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2월 5일 발간한 ‘주가 100% 상승 여정이 시작되다!’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올해 영업손실 2000억 원이 예상되긴 하지만 대산 NCC(나프타분해시설) 설비 축소와 해외 범용석화 설비인 말레이시아 타이탄 매각 등 구조조정으로 롯데케미칼의 기업가치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조조정 효과로 주가가 2배 수준인 16만 5000원까지 상승할 것으로 황 연구원은 내다봤다.
실제 주가 움직임도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롯데케미칼은 호의적인 평가 속에 7만 원대 초반이었던 주가가 2월 27일, 10만 500원까지 상승했다. 2월 한 달간 기관투자자는 292억 원어치 주식을 순매수하며 가격 상승에 베팅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전쟁이 수년 만에 찾아온 롯데케미칼의 기회를 걷어차 버렸다. 나프타 가격은 2월 28일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50~60% 급등, 에틸렌과 나프타의 가격 차이를 뜻하는 에틸렌 스프레드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에틸렌을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를 보기에 롯데케미칼 등 석유화학사들은 공장 가동률을 80%대에서 60%까지 낮췄다.
완전히 멈추지 않은 것은 재가동 시 몇 주일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NCC 공장은 초고온 연속 공정 방식이라 정지시킬 경우 냉각, 재가동에 시간이 필요하다. 롯데케미칼은 고객사들에 대한 배상 책임을 면제받기 위해 전쟁으로 인한 불가항력 가능성을 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석유화학 산업이 정유에 비해 불리한 또 하나 이유는 나프타 재고를 1~2주 정도밖에 확보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정유사는 통상 30~60일치, 국가 차원에서도 90일분을 보유하고 있으니 정유에 비하면 나프타 수급난이 더 빨리 나타날 수밖에 없다. 나프타는 저장 탱크 제한, 가격 변동 가능성 때문에 석유화학사들이 재고를 충분히 확보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계열 정유사 없고, 안정적 공급처도 없고…
석유화학사 중에서 특히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롯데케미칼이다. 일단 SK지오센트릭, LG화학 등은 그룹 내 혹은 범그룹 내에 정유사가 있어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나프타를 공급받을 수 있다. 정유사가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나 경유를 생산하는데, 이 과정에서 나프타도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일반적인 경우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프타는 20~30% 생산된다. 정유사 계열 석유화학사는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나프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국내 주요 석유화학사 중 정유 계열사에 없는 곳은 롯데케미칼과 대한유화뿐이다. 그런데 대한유화는 에쓰오일(S-Oil)과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나프타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있다. 필요한 양의 70%를 에쓰오일로부터 조달한다. 이 때문에 대한유화는 이란 전쟁의 숨은 수혜주로 꼽히기도 한다. 이란 호르무즈 해협 봉쇄 국면을 버텨낸다면, 추후 안정적으로 공급받은 나프타로 에틸렌을 만들어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일부 증권사 연구원은 대한유화를 최선호종목(톱픽)으로 지목하는 상황이다.
반면 롯데케미칼은 장기 공급 계약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스팟성으로 트레이딩 업체를 통해 조달하는 비중이 크다. 더구나 거래 상대방이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기업들이라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여파가 클 수밖에 없다.
#설비도 노후화…스페셜티 집중 전략 필요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말 석유화학 설비와 관련해 국내외 합쳐 1조 원에 가까운 손상차손을 인식했다. 일각에서는 롯데케미칼이 대산 지역에서의 NCC 감축을 앞두고 선제적으로 반영했다고 해석하는데, 실제로는 노후화된 설비 가치를 낮췄을 뿐이라는 반박도 나온다.
롯데케미칼의 설비가 경쟁사에 비해 뒤처지는 것은 사실이다. 에틸렌 90만 톤(t)을 생산하는 대한유화는 업계가 전반적으로 불황에 빠져있을 때도 독보적인 규모의 영업이익을 냈는데, 설비 효율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에쓰오일이 9조 3000억 원 투자한 샤힌 프로젝트도 연내 가동을 개시할 예정이다. 계열 정유사도 없는 롯데케미칼이 이 같은 경쟁 국면에서 어떻게 버틸지 알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롯데케미칼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글로벌 기업들처럼 에틸렌 원재료를 다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은 셰일가스 혁명 이후 에탄으로 에틸렌을 만드는 석유화학단지를 구축했다. 중동 기업들 역시 천연가스에서 나오는 에탄으로 에틸렌을 생산한다. 에탄은 나프타에 비해 심지어 가격 단가도 훨씬 낮아 국내 기업들은 경쟁력이 떨어진다.
가장 인근에 있는 경쟁자 중국 기업들조차 나프타보다는 석탄을 활용한다. 글로벌 전체로 보면 나프타는 에틸렌 원재료의 절반 이하인데, 우리나라만 계속 나프타에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중에서도 특히 롯데케미칼은 원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설비마저 노후화해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롯데케미칼의 경우 사업 다변화를 위해 추진한 2차전지 사업도 결국에는 악수가 됐다. 2023년 인수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롯데케미칼에 대규모 평가손실을 입히고 있고, 유동성 위기 진원지로도 꼽힌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산업이 안 좋아지니 위기를 한꺼번에 타개하고자 2차전지 사업에 뛰어든 것으로 안다”면서 “그러나 전기차 캐즘(수요 정체)이 겹치면서 오히려 상황이 악화했다. 석유화학산업 내에서 스페셜티(고부가가치를 지닌 특수 화학 소재)를 노렸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롯데케미칼이 지분 60%를 투자한 HD현대케미칼의 모회사) HD현대오일뱅크 등을 통해 대응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2차전지 사업과는 별개로 스페셜티 관련 사업은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