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베네수엘라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결승전에서 미국을 3-2로 꺾고 정상에 올라선 베네수엘라는 2006년 WBC 창설 후 20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정후는 이번 대회, 대표팀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팀의 주장을 맡았다. 사진=이영미 기자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공식 홈페이지인 MLB닷컴은 3월 19일(한국시간) WBC의 핵심 스토리 9가지를 선정해 소개했다. 그중 네 번째 이야기가 한국 대표팀의 ‘마이애미행’이었다. 한국 선수들이 미국행 전세기에 오르겠다는 의지를 세리머니로 드러냈고, 홈런을 칠 때마다 두 팔을 벌려 비행기 날개 형태를 나타내거나 마이애미를 상징하는 ‘M 세리머니’를 펼쳤다는 내용이었다.
WBC에 참가했던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안고 뿔뿔이 흩어져 소속팀으로 돌아갔다. MLB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 중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김혜성(LA 다저스)도 팀에 복귀 후 시범경기를 소화하며 WBC를 추억했다.
3월 19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글렌데일 캐멜백 랜치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LA 다저스의 시범경기는 이정후, 김혜성을 비롯해 이날 선발 등판한 오타니 쇼헤이를 모두 볼 수 있는 경기였다. 세 선수들 모두 각각 한국 대표팀과 일본 대표팀에서 활약했고, 모두 8강전에서 탈락한 아픔을 공유한다.
이정후와 김혜성은 WBC 8강전을 마치고 마이애미에서 헤어진 뒤 이날 처음으로 다시 만나는 상황이었다. 김혜성은 다저스의 시범경기 홈구장인 캐멜백 랜치 스타디움에 들어서자마자 가방을 더그아웃에 내려놓고 부리나케 그라운드로 달려갔다. 거기에는 먼저 도착했던 이정후가 동료 선수들과 경기 전 몸을 풀고 있었던 것. 김혜성을 발견한 이정후가 절친 제라르 엔카나시온과 함께 김혜성에게 다가가 진한 포옹으로 반가움을 전했다.
이정후는 이번 WBC에서 한국 대표팀 주장을 맡았다. 자신의 개인 성적도 중요했지만 대표팀 선후배들을 챙기고 감독, 코칭스태프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등 야구 외적으로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WBC 8강 진출이라는 역사적 숙제 앞에 주장이 갖는 책임감과 부담은 상상 이상이었을 지도 모른다.
3월 17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훈련장에서 이정후를 만나 WBC 관련 소감을 물었다. ‘Korea’가 쓰여 있던 훈련복 대신 자이언츠 훈련복을 입은 그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것 같다”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이애미에서 치른 8강전 결과가 너무 아쉬웠다. 우리가 부족해서 졌고, 경기를 통해 우리가 부족하다는 걸 많이 느낄 수 있었던 대회였다. 그 순간의 감정들, 아쉬움 등을 잊지 말고 가슴 속에 잘 새겨서 다음 대회, 또는 앞으로의 야구 인생에서는 그런 결과를 내지 않도록 실력을 더 갖춰야 할 것 같다.”
이정후에게 도미니카공화국과의 8강전에서 0-7로 뒤지던 4회초 공격 상황에 대해 물었다. 선두 타자 저마이 존스가 우전 안타로 팀의 첫 출루를 만들었고, 이후 이정후의 타구가 투수에게 잡혔는데 투수가 유격수에게 송구하면서 2루로 향했던 저마이 존스는 아웃됐지만 이정후의 발이 1루 베이스에 먼저 닿았음에도 1루심이 아웃을 선언한 장면이다.
8강전까지 팀당 1회의 비디오 판독 기회가 주어졌는데 당시 한국은 4회말 수비 때 후안 소토의 홈 쇄도 과정에서 판독 기회를 소진한 터라 이정후의 아웃 판정 관련 비디오 판독을 신청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저마이 존스와 이정후가 아웃된 상황에서 안현민이 2루타를 치고 출루했기 때문에 이정후 베이스 판정은 뼈아픈 대목으로 남았다.
“야구라는 게 상황마다 달라질 수 있다. 그때 만약 내가 1루에 살아 남았다면 투수의 볼 배합이 달라졌을 것이고, (안)현민이가 홈런이 되든, 아웃이 되든 다른 결과를 얻을 수도 있었다. 아쉽긴 해도 우리가 부족해서 진 거다.”
이정후는 도미니카공화국의 선발 투수인 크리스토퍼 산체스(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지난해 정규 시즌에서 상대팀 투수로 만나 3타수 1안타 1삼진을 기록한 바 있다. 정규시즌의 산체스와 WBC에서의 산체스의 공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묻자, “작년보다 이번 WBC에서의 산체스 공이 더 좋아 보였다. 3월에 그런 공을 본 건 처음이었는데 다른 선수들도 산체스를 공략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WBC에는 한국계 미국인 선수들이 어머니의 나라를 택해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다. 저마이 존스(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셰이 위트컴(휴스턴 애스트로스), 데인 더닝(시애틀 매리너스)으로 이정후는 누구보다 이들을 살뜰히 챙겼다.
“우리가 8강 진출을 이뤄냈을 때 저마이(존스)가 많이 울었다. 어쩌면 한국 대표팀보다 소속팀에 집중해서 주전 경쟁을 펼치며 자신을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텐데 어머니의 나라에 와서 한국 대표팀을 위해 뛰는 모습을 보고 그들도 똑같은 한국인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서로 언어는 다르지만 대표팀 선수들 마음은 모두 똑같았다. 다음 대회에서도 또 함께 하자고 약속했다.”
2026 WBC는 도쿄라운드를 거친 팀들, 즉 일본과 한국 대표팀에게 부담스러운 일정이었다. 베네수엘라, 도미니카공화국 등은 마이애미에서 계속 경기를 치렀고, 마이애미에서 일본과 한국팀을 기다렸다.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예상대로 시차 때문에 적잖은 고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차를 비롯해 야구 외적인 환경과 관련해서 이정후가 비교적 길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시차 이야기를 하면 핑계인 듯해서 가급적 안 하고 싶었지만 선배님들과 후배들이 하지 못하는 말을 주장인 나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WBC가 중요한 국제 대회인 만큼 다음부터는 예선전을 나라별로 나누지 말고 모두 다 같이 처음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물론 일본에서 하는 경기도 정말 좋았고, 즐거웠지만 선수들이 이동과 시차 적응에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 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일본에서 전세기를 타고 마이애미에 도착한 게 새벽 3시, 4시 정도였는데 선수들 짐이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그날은 거의 한숨도 자지 못하고 오후 대표팀 훈련에 참여했다. 연습할 때 어떤 선수들은 조는 모습도 보였다. 우리가 힘들게 8강까지 왔는데 야구 외적인 환경과 싸워야 한다는 점이 아쉬웠다.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핑계라고 지적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첫 번째는 우리의 실력 부족이고, 두 번째는 다시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도록 몸 관리 등 야구 외적인 환경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이정후는 이번 WBC를 끝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 류현진을 언급하며 남다른 감정을 드러냈다.
“나는 류현진 선배님이랑 같이 야구할 기회가 없었다. 내가 미국에 갔을 때 선배님이 한국으로 복귀하신 터라 아예 마주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대표팀에서 함께 할 수 있어서 큰 영광이었다. 어린 시절 내가 보고 자랐던 선배님의 투구하는 모습을 직접 보게 돼 정말 좋았고, 중요할 때 믿을 수 있는 건 선배님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선배님이 계셔서 든든했고, 감사했고, 그리고 고생 많이 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2026WBC는 이정후에게 많은 스토리를 안겨줬다. 그 중 또 다른 하나는 친구이자 가족인 고우석(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산하 마이너리그)의 활약이다. 이정후는 고우석에 대한 질문을 받자 “야구 관련한 건 내가 말할 수 없고 그냥 좀 뭉클했다”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우석이랑 같은 해 미국에 나와서 나와는 너무 다른 상황에서 야구를 해왔다. 우석이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운한 상황들이 펼쳐졌다. 그럴 때는 연락도 잘 안 했다. 그러다 다시 한 팀으로 만나 야구를 하게 됐고, 우석이의 피칭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가슴 한 켠이 좀 뭉클했다. 자기가 이루고 싶어 하는 꿈을 위해 도전하는 모습을 본받고 싶고, 정말 멋있는 것 같고, 내가 봐도 귀여운 조카인데 그런 아기와 떨어져 지내며 생활하는 걸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디 아프지 말고 잘 해서 자신의 꿈을 꼭 이뤘으면 좋겠다.”
“미국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나도 모르게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쌓여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도쿄와 마이애미까지 직접 찾아와 응원해주시는 팬들을 보며 울컥했었다. 또한 한국 선수들하고 한국어로 대화하고 생활한 시간들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번에 처음으로 내 유니폼에 대표팀 선수들 모두에게 사인을 받았다. 시즌 앞두고 정말 좋은 에너지와 감정을 안고 돌아왔다. 감독님, 코칭스태프, 트레이너 분들,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지원해주셨기에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갈 수 있었다. 이 자리를 통해 정말 감사했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
이정후는 이 이야기를 전하며 모자를 벗고 꾸벅 인사를 건넸다. 이정후의 진심이 전해지는 장면이었다.
김혜성은 MLB 시범경기와 달리 WBC 대회기간 부진했던 자신의 플레이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했다. 사진=이영미 기자WBC에서 팀 복귀후 4경기 연속, 시범경기 전체 8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벌이고 있는 김혜성은 개막전 로스터 진입을 위해 열심히 달리는 중이다. WBC 본선에서 12타수 1안타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팀 복귀 후 이를 말끔히 씻어냈다. 현재 시범경기 타율은 0.435, OPS(출루율+장타율) 1.045이고 5개의 도루를 성공해 타격과 주루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3월 19일 LA 다저스 훈련장이 있는 캐멜백 랜치의 클럽하우스에서 김혜성을 만났다. 복귀하자마자 계속해서 경기에 나서고 있는 것과 관련해 “몸 상태가 아픈 데 없이 괜찮아서 경기 출전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김혜성에게 이번 WBC는 아쉬움 그 자체다. 대표팀에 합류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범경기에서의 성적이 워낙 좋아 큰 기대를 가졌을 텐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냥 내 실력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타석에서의 생각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국제 대회에 출전했을 때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는데 이번에는 시범경기에서 잘했다 보니 개인적으로 욕심이 생겼고, 타석에서 욕심이 과했던 것 같다.”
김혜성도 자신의 욕심을 깨닫고 조금 더 차분해지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막상 타석에 들어서면 이 또한 노력으로만 되지 않는 게 야구라서 자신이 앞으로 더 많은 성장을 해야 될 것 같다며 자세를 낮췄다.
김혜성은 도쿄라운드 대만전 10회 연장 승부치기에서 1사 3루 동점 기회 때 1루 땅볼을 치는 바람에 홈으로 쇄도하던 김주원이 태그아웃돼 4-5로 패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타자로서 최악의 상황을 만들었다. 그 먹힌 타구가 느리게 2루로만 갔어도 (김)주원이가 빠르기 때문에 홈에서 세이프가 됐을 텐데 내 타구가 1루로 향하면서 승부를 뒤집지 못했다. 팀원들에게 미안하고 팬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컸다.”
김혜성에게 대만전이 더 최악이었던 건 도루하다 손가락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김혜성은 “주루 장갑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어떻게든 2루로 진루해야 안타가 나오면 1점이 날 수 있는 터라 도루를 감행했다가 2루수랑 부딪히는 바람에 손가락이 꺾여 다음 날 호주전에 나가지 못했다”라고 설명한다. 이후 손가락 부상은 빠르게 호전됐고, 8강전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김혜성의 ‘현실’은 개막 로스터 진입이다. 로버츠 감독은 19일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김혜성의 활약을 높이 평가하며 “그는 확실이 우리의 구상 속에 있는 선수”라고 강조했다. 김혜성은 “경쟁을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고, 이후 어떻게 될지는 지금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로 올 시즌을 앞둔 각오를 대신했다.
오타의 소신발언 "결과 비난은 감내해야…인격 모독은 야구와 상관 없어"
메이저리그(MLB)의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가 시범경기 첫 등판에서 최고 시속 160.7㎞의 공을 뿌렸다. 오타니는 3월 19일(한국 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의 캐멜백 랜치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2026 MLB 시범경기에 선발 등판해 4⅓이닝 1피안타 2볼넷 4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이날 오타니는 61개의 공을 던졌고, 스트라이크는 34개였다.
WBC에서 타자로만 활약하던 오타니는 소속팀 복귀 이후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사진=이영미 기자오타니의 실전 등판은 지난해 월드시리즈 7차전 이후 처음이다. WBC에서는 타자로만 뛰었고, 마운드에는 서지 않았다. WBC 기간에 불펜 피칭만 소화하며 시범경기 등판을 준비했을 뿐이다.
오타니의 시범경기 첫 등판이 더 큰 주목을 받았던 건 경기 후 인터뷰 내용 때문이다. 오타니는 미국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는 이날 경기 내용과 관련된 질문을 받았고, 이후 일본 취재진과는 WBC 관련된 질문이 주를 이뤘다.
WBC 8강 탈락의 아쉬움을 MLB 정규시즌에서 어떻게 승화시키고 싶냐는 질문에 오타니는 “그건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은 후 “개인적으로는 월드시리즈와 WBC가 비슷한 무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챔피언을 목표로 노력해야 하고 단기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긴 여정을 잘 완주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전했다.
한 일본 기자가 피치클락이나 피치컴 도입이 일본프로야구에 필요한지에 대해 물었다. 오타니는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박진감이 넘치고 팬들도 그런 변화를 더 재미있어 할 것 같다”면서 “반드시 도입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세계 무대에서 이기고 싶다면 (국제 기준의 룰에) 적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우리가 ‘우리만의 야구를 하겠다’라고 생각한다면 굳이 도입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WBC 8강 탈락 이후 대표팀 선수들에게 쏟아지는 팬들의 비난 여론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나에 대해 어떤 말을 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인격 모독은 야구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프로 선수로서 결과가 나쁠 때 비난 받는 건 내가 감내해야 할 몫이라 생각하며 어떠한 말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모든 선수가 나와 같은 마음은 아니기 때문에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대해줬으면 좋겠다.”
한편 경기 후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오타니 쇼헤이의 올 시즌 첫 시범경기 등판 내용에 크게 만족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로버츠 감독은 “오타니가 무엇을 해낼지에 대해 과소평가하거나 예측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걸 배웠다”면서 “그는 항상 결과를 보여주는 선수다. 오늘 예상보다 실전 감각이 더 올라와 있었고, 변화구도 좋았으며 특히 패스트볼 제구에서 유리한 카운트를 점유해 경기를 풀어간 점이 매우 훌륭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