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공론장 모색에도 조직력 한계…홍대 집회는 기존 부정선거 담론으로 참여자 유입 정황

개표소 봉쇄가 시작된 직후 수만 명이 운집했던 현장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참가자 구성과 분위기가 달라졌다. 초기 참가자들은 정치적 성향보다 참정권 침해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모였다고 입을 모았다. 당시 현장에는 “재선거 외 정치 구호는 자제하자”는 대자보가 붙었고, 성조기나 특정 정치 구호를 제지하는 등 정치색을 최소화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참가자 구성과 구호에 변화가 나타났다. 우선 성조기와 함께 현장 구호는 ‘부정선거’, ‘Stop the Steal’, ‘당일투표 수개표’ 등으로 확대됐다. 또한 황교안 자유와혁신 대표와 전 한국사 강사 전한길 씨, 모스 탄 미국 리버티대 교수 등 부정선거를 주장해 온 인사들이 잇따라 현장을 찾았다. 일부 참가자의 유소년 핸드볼 선수단 소지품 검사와 언론인·경찰관 폭행 사건도 이어지며 현장엔 혼란이 가중됐다. 그 결과 초반 현장을 주도했던 청년층도 시간이 흐르면서 발길을 돌리는 모습이다.
6월 6~7일 잠실 개표소 집회 현장을 찾은 20대 남성 이 아무개 씨는 “초기 집회와 달리 지금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오히려 배척하는 분위기가 생겨 더 이상 집회에 가지 않는다”며 “주변에서도 올림픽공원에 가면 부정선거론이나 ‘윤어게인’ 주장에 동의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이유로 참여를 꺼리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대학가 역시 선관위의 관리 체계 부실에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부정선거 주장과는 거리를 두는 분위기다. 전국 대학 총학생회가 발표한 시국 선언과 대자보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책임 규명과 제도 개선,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내용에 집중했다.
나민석 한국대학총학생회공동포럼 사무처장은 "올림픽공원 시위 초반에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과 참정권 침해라는 명확한 구호가 있었다"며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하고 극단적인 목소리가 섞여 모든 구성원의 공감대를 끌어낼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 청년들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참정권 문제를 알리고 정치색을 배제한 새로운 공론장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대학가에서는 전국 대학 학생회 시국선언을 모은 홈페이지 ‘한 표의 기록’을 운영하며 관련 성명과 자료를 공유하고 있다. 이 홈페이지에는 전국 220개 대학에서 발표한 436건의 시국선언과 성명이 게시돼 있다. 한 표의 기록에 따르면 대학들의 성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표현은 민주주의(96%), 참정권(94%), 신뢰·공정성(87%) 등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참정권 갤러리’ 이용자들이 운영하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도 이날 기준 351명이 참여하고 있다. 채팅방 운영진은 ‘좌우파 색채 표현 금지’, ‘혐오 표현 및 특정인 비하 금지’ 등을 운영 원칙으로 내걸었다. 아울러 “잃어버린 민주주의의 길을 다시 걷는다”는 취지로 광주 5·18기념공원부터 서울 올림픽공원까지 걷는 행사 참가자도 모집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집회의 주축을 이루던 2030 청년 세대가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으로 집회 장소를 옮겼다는 시각도 나온다. 6월 20일 청년단체 'BOSS 홍대'는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피켓 집회와 행진을 진행하면서 태극기를 제외한 모든 깃발의 반입을 금지하고, 주최 측이 배포한 ‘재선거’ 피켓만 사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집회 참가자가 10명 안팎에 불과할뿐더러 해당 단체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활동과 부정선거 관련 집회를 이어온 단체라 참정권 침해를 독립적인 의제로 확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단체는 이번 집회를 부정선거 등 자신들이 기존부터 주장해 온 내용을 알리기 위한 계기로 삼고 있는 정황도 확인됐다. 이 단체는 6월 21일 유튜브에 올린 ‘재선거를 외치는 이유’ 영상에서 “정치색이 없는 걸로 해서 일단 오게 만든다. 그러다 관심이 생겨 검색해 보면 ‘부정선거가 맞는 것 같기도 하네’ 하며 깨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SNS 게시글에서는 “2030이 관심을 갖게 한 뒤 다시 올림픽공원으로 모이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취지의 영상을 공유하며 “우리의 의도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외에도 단체가 운영하는 SNS에는 잠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부정선거를 옹호하는 게시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전문가들은 참정권을 둘러싼 청년들의 문제의식이 다른 정치세력의 담론에 흡수되지 않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의제와 대표성을 갖춘 구심점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운동 단체들은 각자 달성하려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특정 사회적 사건을 계기로 자신들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경우가 있다”며 “청년들의 목소리가 독자적인 의제와 확장성을 갖추지 못하면 조직화된 외부 세력에 흡수되거나, 그들이 의도하는 프레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승구 기자 win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