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규제 뒤 한국산 수입 늘자 조사 착수 일주일 만에 등록…EU선 제소 움직임, 인도도 수입 제한

영국은 지난 8월 11일부터 한국·중국·멕시코산 S-PVC를 수입등록 대상으로 지정했다. 무역구제청(TRA)이 8월 4일 반덤핑 조사를 시작한 지 일주일 만이다. 조사는 영국의 유일한 S-PVC 생산업체 이노빈 클로르비닐스(INOVYN ChlorVinyls)가 덤핑 수입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며 신청하면서 시작됐다. 조사 대상인 S-PVC는 파이프와 창호, 케이블, 바닥재 등에 널리 쓰이는 범용 합성수지다.
수입등록은 조사 기간 들어오는 물량을 별도로 기록해두는 절차로 반덤핑 조사 개시보다 한 단계 강한 조치다. 조사 기간 들어오는 물량까지 향후 관세 부과 대상으로 묶어두기 때문이다. 반덤핑관세가 최종 확정되고 소급 부과 요건이 충족되면 잠정관세 시행일보다 최대 90일 앞서 수입된 물량까지 관세를 물릴 수 있다. 수입업체로서는 지금 들여온 제품도 향후 관세가 붙을 수 있어 신규 주문을 줄이거나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등 거래 조건을 보수적으로 가져갈 가능성이 커진다.
영국은 미국산 S-PVC 조사에서도 같은 절차를 밟았다. 2024년 1월 조사를 시작한 뒤 같은 해 7월 26일부터 미국산 수입등록에 들어갔고 11월 29일부터 38.43~56.01%의 반덤핑관세를 부과했다. 조사 개시 약 6개월 반 뒤 수입등록이 이뤄진 미국산과 달리 이번 한국·중국·멕시코산은 조사 시작 일주일 만에 등록 대상이 됐다. 이번에는 조사 초기부터 향후 소급관세 부과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노빈이 영국 무역구제청(TRA)에 제출한 반덤핑 조사 신청서에는 미국산을 막은 뒤 한국·중국·멕시코산이 빈자리를 채웠다는 주장이 담겼다. 이노빈에 따르면 미국산 S-PVC에 대한 반덤핑 조치가 시행된 뒤 미국산 수입은 감소했고 기존 미국산 거래업체들이 한국·중국·멕시코산으로 공급선을 바꿨다. 2024년 12월부터 2025년 11월까지 한국산 수입량은 7434톤으로 2022년 2746톤보다 171% 늘었다. 중국산은 같은 기간 1683톤에서 1만 242톤으로 509% 증가했다. 이노빈은 신청서에서 한국의 S-PVC 생산업체로 LG화학과 한화솔루션을 적시했다.
영국이 국내 S-PVC 업체의 핵심 수출시장은 아니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석유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에서 영국으로 가는 물량은 많지 않다. 미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조치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비슷한 수입 대체가 한국산 물량이 더 많이 들어가는 유럽연합(EU)에서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EU의 경우 미국·이집트산에 반덤핑관세를 부과한 뒤 한국산 유입이 크게 늘었다는 점에서 영국과 비슷하다. EU 집행위원회는 2025년 1월 미국산 S-PVC에 58~77%, 이집트산에 74.2~100.1%의 반덤핑관세를 확정했다. 이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산 수입이 빠르게 늘었다. S&P글로벌에 따르면 EU 27개국의 한국산 PVC 수입은 지난해 5월 9793톤에서 올해 5월 2만 8287톤으로 약 2.9배 증가했다. 한국이 2025년 6월부터 1년간 EU에 수출한 PVC는 한국 전체 PVC 수출의 35.1%를 차지한다.
EU에서도 한국산 S-PVC를 겨냥한 무역 규제 움직임이 거론되고 있다. 영국에 본사를 둔 PVC 생산업체 이네오스 이노빈은 지난해 말 EU 집행위원회에 한국·중국·대만산 S-PVC에 대한 반덤핑 제소 의향을 밝혔다. 아직 공식 조사 개시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한국산 수입이 빠르게 늘어난 가운데 영국에서는 실제 반덤핑 조사와 수입등록까지 시작되면서 EU의 후속 움직임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석유화학업계 다른 관계자는 “국내 PVC 수출은 그동안 인도 비중이 컸지만 최근 인도향 물량이 줄면서 유럽 등으로 시장을 다변화하던 시점”이라며 “주요 시장에서 통상 압박이 동시에 커지고 있어 관련 움직임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 밖에서도 S-PVC 수입규제는 강화되고 있다. 한국산 S-PVC의 주요 수출시장인 인도는 지난 7월 24일부터 저가 제품에 최소수입가격(MIP)을 도입했다. 인도 대외무역총국(DGFT)은 S-PVC의 수입정책을 ‘자유’에서 ‘제한’으로 변경하고 kg당 0.766달러 이하 제품은 별도의 수입허가를 받도록 규정을 변경했다. 인도 시장의 경쟁 심화로 대체 시장으로 꼽히고 있는 브라질도 지난 8월 중국산 S-PVC에 적용해온 반덤핑관세를 최대 5년 연장했다.
한국도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수입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월 5일부터 독일·프랑스·노르웨이·스웨덴산 PVC 페이스트 수지에 25.79~31.55%의 덤핑방지관세를 5년간 부과했다. 한화솔루션이 유럽산 제품의 덤핑으로 국내 산업이 피해를 입고 있다며 조사를 신청한 데 따른 조치다. PVC 페이스트 수지는 인조가죽과 벽지, 장갑 등에 사용되는 석유화학 제품이다.
각국이 장벽을 높이는 배경에는 글로벌 공급과잉이 자리한다. 앞서의 석유화학업계 다른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공급이 과잉이고 그중에서도 중국산 제품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며 “내수에서 소화하지 못한 물량을 외부로 싼값에 밀어내는데 수입국 입장에서는 자국 기업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반덤핑 규제나 관세로 대응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화학산업협회 관계자는 “특정 국가만의 움직임은 아닌 것 같고 통상 쪽은 서로서로 제소하면서 전반적으로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굉장히 강해지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PVC는 생산기술 자체의 진입장벽이 높지 않아 공급업체 간 경쟁도 치열한 편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는 “PVC 제조가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은 아니다. NCC에서 생산되는 원료의 바로 다음 단계에 있는 제품”이라며 “원료 물질의 독성이 강해 생산 과정의 관리가 까다로운 것이지 기술적 장벽이 높은 제품은 아니어서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수입국의 국내 생산 규모를 봐야 한다. 현지 생산 비중이 상당하고 수입품과 경쟁하고 있다면 수입규제를 통해 자국 산업을 보호할 유인이 커진다”며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다면 수입국이 관세를 섣불리 부과하기는 어렵겠지만 실제 관세가 부과될 경우 국내 업체들의 수출 타격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