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창고 사건 직전 설치하고 직원엔 휴무 통보, 피해자 휴대전화 끄게 해…가짜 상품권 거래 관련자 수사도 확대

신 씨와 A 씨는 범행 당일 처음 만난 사이였다. A 씨는 9월 3일 제3자가 신 씨의 상품권을 매입하는 거래 과정에서 상품권 진위를 확인하는 등 중간 역할을 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파주로 향했다. 집을 나서면서 가족에게는 “돈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또 다른 남성 B 씨의 차량을 타고 파주로 이동한 뒤 신 씨를 만나 그의 차로 갈아타 카페로 향했다.
카페 외부 폐쇄회로(CC)TV에는 신 씨와 A 씨가 함께 냉동창고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혔다. 냉동창고는 카페 건물 옆에 설치된 약 30㎡ 규모의 컨테이너형 시설이었다. 경찰은 신 씨가 “상품권이 창고에 있다”며 A 씨를 안으로 데려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잠시 뒤 창고에서 나온 사람은 신 씨뿐이었다. 당시 냉동창고 내부 온도는 영하 20도 안팎이었으며 내부에서는 문을 열 수 없는 구조였다. 신 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획범죄 정황 잇따라…AI 검색·냉동창고 사전 설치
수사가 진행되면서 범행이 사전에 계획됐다는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신 씨는 A 씨를 냉동창고로 데려가는 과정에서 “위치 노출을 피해야 한다”며 휴대전화 전원을 끄고 차량에 두고 내리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이후에는 A 씨의 휴대전화가 파주가 아닌 인근 고양시 등지에서 여러 차례 켜졌다 꺼진 신호가 확인됐다. 경찰은 신 씨가 A 씨의 실제 동선을 감추거나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휴대전화를 옮겼을 가능성 등을 살펴보고 있다. 또한 범행 직후 신 씨가 생성형 인공지능(AI)에 “냉동창고에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되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냉동창고가 범행 직전 설치된 점도 계획범죄 정황으로 꼽힌다. 신 씨는 8월 25일 냉동창고 임대업체에 직접 연락해 설치를 요청했고, 이틀 뒤인 27일 오전 4시 30분께 카페 앞마당에 약 30㎡ 규모의 냉동창고가 설치됐다. 경찰 조사에서 신 씨는 처음에는 살인을 염두에 두고 냉동창고를 설치했다고 진술했지만 이후 “추운 공간에서는 상품권이 가짜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해 설치했다”고 번복했다. 이번 범행 역시 A 씨가 위조 사실을 알아차리자 당황해 문을 닫은 우발적 범행이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당일 카페 운영 상황도 평소와 달랐다. 뉴시스에 따르면 카페 직원은 “9월 2일까지 일했는데 갑자기 3일에는 쉬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해당 카페는 평소 오전 11시부터 다음 날 오전 2시까지 영업했고, 평일에는 직원 2명, 주말에는 4명이 근무했다. 직원은 “사장과는 주로 연락으로 소통하고 직원끼리 카페를 관리하는 식이었다”며 신 씨를 자주 마주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런데 범행 추정 시간인 오전 11시쯤부터 낮 12시 사이에는 신 씨가 카페를 세 차례나 오간 모습이 인근 CCTV에 포착됐다.

창고에서 발견된 500억 원대 가짜 상품권을 둘러싼 수사도 이어지고 있다. 냉동창고에서는 ‘촬영용’이라는 문구가 적힌 50만 원권 백화점 상품권 10상자가 발견됐다. 신 씨는 지난 7월 말 서울의 한 인쇄업체를 찾아 “영화 촬영용으로 사용할 것”이라며 실제 상품권과 유사한 형태로 제작을 의뢰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신 씨는 대형 카페를 운영하면서 수십억 원 규모의 채무를 지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신 씨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짜 상품권을 이른바 ‘상품권깡’ 업자에게 넘겨 현금화하려 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상품권깡은 상품권을 대량으로 사고팔아 현금화하는 거래다. 현금 거래 비중이 높고 여러 단계의 브로커가 개입해 범죄수익을 현금화하거나 자금 흐름을 감추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A 씨 역시 여러 단계의 브로커를 거쳐 이번 거래에 개입했고, 상품권 진위를 감정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신 씨가 만든 상품권에는 ‘촬영용’이라는 문구가 표시돼 있어 거래가 성사되더라도 가짜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가능성이 크다. 신 씨가 범행 뒤 도주나 잠적을 준비한 정황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거래에 여러 인물이 개입한 만큼 경찰 수사도 주변 인물들로 확대되고 있다. 경찰은 신 씨 체포 당시 함께 있던 남성 2명의 신원을 특정해 수사 중이다. 이 가운데 한 명은 A 씨를 차로 서울에서 파주까지 태워온 C 씨다. 그는 현재 유가증권 위조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 다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A 씨 시신 부검 결과 1차 구두 소견상 외상이 발견되지 않은 가운데 신 씨 외 사람들은 살인과 연관된 구체적인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현장에서 대량의 가짜 상품권이 발견된 만큼 해당 거래에 다른 불법 행위나 추가 가담자가 연루됐는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수백억 원 규모의 상품권 거래에서 실제 매수자가 직접 물건을 확인하지 않고 별도의 감정·중개 역할을 둔 경위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개인이 큰 규모의 상품권을 단독으로 전달, 유통하려 했다고 보기보다는 조직 내 역할 분담 가능성도 열어두고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신 씨의 진술과 CCTV, 휴대전화 기록 등을 토대로 냉동창고 설치 목적과 공범 존재 여부 등을 조사한 뒤 9월 14일 신 씨를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한승구 기자 win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