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서 2017년 보물 지정 부결 당시 핵심 측정값 누락·판단 문구 변경 의혹 제기
증도가자가 1239년 이전에 제작된 고려 금속활자라는 사실이 입증될 경우, 1377년 간행된 현존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보다 최소 138년 앞선 금속활자 실물로서 세계 인쇄사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과학 분석에서는 고려시대 제작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결과가 제시됐지만, 활자의 제작 연대와 ‘증도가’ 인쇄에 사용된 사실을 확정하는 증거로 인정할 수 있는지를 두고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학계가 증도가자의 진위와 제작 연대를 둘러싼 논쟁을 이어가는 사이, 중국에서는 2018년 학술 논증회를 기점으로 관련 금속활자를 송·원대 청동활자로 분류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중국 학계가 유물의 역사적 귀속을 자국으로 돌리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에서도 국내에서는 증도가자의 역사적 가치를 둘러싼 논쟁과 행정적 공방이 장기간 이어졌다.
10월 8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이 공개한 2023년 감사원 감사 결과가 눈길을 끈다. 임 의원은 당시 통계청 자문에서 활자 크기와 조판 공간의 적합성을 뒷받침하는 분석 결과가 나왔지만, 심의 과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2017년 작성된 지정조사보고서 원문에는 금속활자본을 목판에 다시 새긴 번각본의 크기 차이가 ‘속명의록’ 0.3~0.5㎝, ‘석보상절’ 0.8㎝로 명시돼 있었다. 그러나 최종 심의 보고 과정에서 ‘석보상절’의 0.8㎝ 수치는 삭제됐고, ‘속명의록’ 역시 크기 차이가 없다는 내용으로 보고됐다는 것이다.
문화재위원회는 당시 “활자판에 약 0.45㎝가 부족해 식자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물 지정 부결 사유 중 하나로 제시했다. 그러나 임 의원 측은 번각본의 실제 크기 차이인 0.8㎝를 반영하면 홈형과 홈날개형 활자 모두 통계적으로 식자가 가능하다는 통계청 자문 결과가 있었음에도 심의 과정에서 누락됐다고 주장했다. 핵심 측정값이 의도적으로 배제돼 심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주조 검증 결과를 전달하는 과정에서도 문구가 변경됐다는 의혹이 나왔다. 지정조사보고서 원문에 기재된 전문위원의 판단인 “주조가 불가능한 것으로 사료됨”이라는 표현이 문화재청 대외 발표 문서에서는 “주조가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됨”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전문가의 추정적 판단이 확정적 사실처럼 전달됐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심의 절차를 둘러싼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신청 대상이 아닌 제3자 소유의 청동 초두와 수반을 소장자에게 제출하도록 요구한 뒤, 미제출 사실을 부결 사유로 삼았다는 의혹이다. 여기에 보물 지정 신청부터 최종 결정까지 약 6년이 소요된 점을 두고도 심의 지연의 적정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국정감사에서 “국내에 증도가자가 몇 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민간에서 더 나올 것으로 예측한다”며 국내외에 흩어진 금속활자를 폭넓게 비교·검증하는 ‘일괄 공모’ 방식의 조사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소장 경위가 불분명한 전래 유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조사 대상을 확대하고 실물에 대한 과학적 검증을 진행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고미술계와 다보성갤러리 김종춘 회장은 기존 과학 감정과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 결과가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일괄 공모를 추진하는 것은 판정을 무기한 미루기 위한 조치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특히 2017년 부결 심의에 관여했던 전문위원 2명이 각각 14년, 12년간 활동하며 현재 재검증을 담당할 동산문화유산분과에도 남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심의의 공정성 논란도 불거졌다. 이들의 재심의 참여가 국가유산위원회 규정 제11조의 제척 사유에 해당하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미술계에서는 보물 지정 여부에 대한 결론이 장기간 미뤄질 경우 유물의 보존과 관리에 공백이 발생하고, 향후 국외 반출 문제까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중국 학계가 관련 금속활자를 자국 송·원대 유물로 해석하는 상황에서 국내의 학술적 검증과 행정적 판단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신민섭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