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지 팔아 5년 만에 매출 13배, 국회 초청도 받아…사정당국 문건엔 ‘마피아 수괴’ 적시, 도박앱 운영 의혹도
[편집자주]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고려인 사업가 '장 회장'과 수감 중인 옛 동업자 '박 안톤'(가명). 이들은 한때 식품사업을 함께한 평범한 동업자로 보였다. 이후 두 사람 관계는 틀어져 법적 소송전을 벌였다. 그런데 두 사람 관계를 되짚어가면 △러시아 마피아 유착 △총기 은닉 △범죄 피의자 밀항 △자금세탁 △현직 경찰관과의 석연치 않은 관계 등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고 믿기 힘든 의혹과 사건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일요신문은 안톤의 진술과 통화 녹취 및 휴대전화 메시지, 금융 관련 자료, 사정당국 작성 문건 등을 토대로 ‘장 회장-박 안톤’ 두 사람 주변에서 2020년부터 벌어진 사건과 의혹 전말을 서울과 부산, 김해 등지에서 9개월 동안 추적했다.
[연재 순서][일요신문] 서울 중구 광희동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근처 중앙아시아길은 이름에 걸맞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식당, 휴대전화 대리점 등 여러 상점 간판은 러시아어다. 고소한 냄새를 따라 시선을 옮기면 중앙아시아 전통 화덕 탄두르가 보인다.
[마피아의 심부름꾼 ①] 총기와 밀항, 그리고 돈세탁
[마피아의 심부름꾼 ②] 2020년 고려인 난투극, 사라진 한 사람
[마피아의 심부름꾼 ③] "술 상자에 돈 넣어 경찰에 바쳤다"
[마피아의 심부름꾼 ④] 난투극 도망자 밀항, 경찰관은 알고 있었다…녹취 속 그날 대화
[마피아의 심부름꾼 ⑤] 은행서 막힌 수십만 달러, 주인은 누구?
[마피아의 심부름꾼 ⑥] 고려인 성공신화 장 회장, 은둔하는 까닭

중앙아시아 식품이 어디서 제조됐는지 살펴보니 상당수는 장 회장이 운영하는 식품업체 R 사 제품이었다. 광희동 중앙아시아길에 있는 다른 식료품점 3곳을 돌아봐도 마찬가지였다. R 사 제품이 가장 많았다. 한 식료품점 구석에는 R 사 이름이 적힌 운반용 플라스틱 상자 10여 개가 쌓여 있었다.
박 안톤(가명)은 R 사가 제조하는 소시지 등 식품 사업을 자신이 처음 시작했다고 이야기한다. 안톤은 2018년 말 소시지 공장을 차리려는 계획을 구상하던 중 장 회장을 알게 됐다. 안톤은 2019년 초 장 회장에게 1억 원을 빌려 소시지 제조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자 명의는 장 회장 조카로 했다. 장 회장에게 빌린 돈에 대한 담보 성격이었다.
R 사는 전국 곳곳 중앙아시아 식료품점에 소시지를 납품했다. R 사 매출은 날로 증가했다. 그러자 장 회장이 돈 냄새를 맡은 걸까. 안톤은 장 회장이 2019년 말 사업 확장을 제안해왔다고 기억한다. 이후 R 사는 할랄 소시지 등으로 사업 영역을 점차 확대했다.

R 사 주인이 누구인지와 별개로 과감한 투자는 성과로 돌아왔다. R 사 사업은 갈수록 번창했다. 식품 제조업체, 할랄 식품 제조업체, 생선가공업체, 유가공 식품 제조업체, 식품 배송·유통업체 등 여럿이다. R 사는 부산에서 열리는 식품 박람회에도 매년 참가하고 있다.

장 회장은 러시아 사할린 출신 고려인이다. 2022년 9월 국적 판정을 통해 한국 국적을 얻었다. 사할린 동포 1·2세는 귀화 시험 등 별도 국적 취득 절차 없이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덕분에 장 회장은 한국말을 거의 구사하지 못하지만 한국 국적을 얻었다.
한국에 들어온 고려인 다수는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비하면 장 회장은 언뜻 입지전적 인물로 보인다. 재력도 상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장 회장 아들은 20대 중반이었던 2023년 경남 김해 한 공장 건물을 25억 원에 매입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장 회장은 외부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은둔의 경영자라고 느껴질 정도다.

당시 국회 포럼 발표 자료에 따르면 R 사 관련 사업체 총 매출은 2024년 약 110억 원에 달했다. 사업을 시작한 2019년 이후 5년 만에 매출이 13배 성장한 결과다. R 사는 국내 700여 개 식료품점은 물론 파크하얏트, 롯데호텔 등 유명 호텔에도 식품을 유통한다.
R 사 사업의 성공은 국내에 머무는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등 중앙아시아 외국인은 꾸준히 늘어난 영향으로 보인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 정책 통계 월보에 따르면 국내에 체류하는 우즈베키스탄인은 2025년 처음으로 10만 명을 돌파했다. 2015년 약 4만 7000명에서 2025년 약 10만 3000명으로 증가했다. 중국인(97만 명), 베트남인(37만 명), 미국인(19만 명), 태국인(16만 명)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은 숫자다. 국내 체류 러시아인은 2015년 약 1만 9000명에서 2025년 약 6만 7000명으로 늘었다.
장 회장은 다른 고려인 사업가들과 달리 공개된 언론 인터뷰가 하나도 없다. R 사가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한 건 아니다. R 사는 2022년 11월 한 케이블 경제방송에 유럽 전통 소시지 제조업체로 소개됐다. R 사 공장 내부도 이 방송에서 공개됐다. 방송에 출연한 한 개그맨은 R 사 소시지 제품을 맛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장 회장은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R 사는 지난 9월 인천 연수구에서 열린 고려인 청년 축제 후원사로 이름을 올렸다. 인천 연수갑이 지역구인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참석해 축사를 한 행사였다. 지역 언론 보도에 따르면 R 사는 이 행사에서 시식 코너를 운영했다. 장기자랑 경연 참가자에게 시상도 했다. 이 행사에서 촬영된 사진에서도 장 회장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안톤은 장 회장이 스스로 떳떳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추측한다. 안톤은 R 사 사업 초기 장 회장에게 자금 투자를 받은 뒤에야 장 회장이 마피아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안톤은 장 회장과 함께 일하며 여러 불법 행위를 목격했다. 하지만 마피아인 장 회장에게 보복당할까봐 두려워 R 사에서 내쫓긴 뒤에도 장 회장에 대해 쉬쉬했다.

일요신문은 장 회장에 대한 추적 끝에 국내 사정당국의 ‘국내 러시아 마피아 활동 사항’ 문건을 단독 입수했다. 사정당국은 장 회장이 2021년 말 국내 러시아 마피아 세력 수괴로 지명됐다고 문건에 적시했다. 장 회장이 운영하는 R 사 이름도 문건에 등장한다. 사정당국 문건에 따르면 장 회장은 불법 도박 앱을 운영하면서 고리 사채업도 했다.

안톤은 장 회장이 국내에 마약을 조직적으로 유통하는지 여부는 잘 모른다고 했다. 다만 일요신문이 확보한 판결문에 따르면 장 회장 조직원 중 한 사람은 대마 흡입 혐의로 2025년 11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40시간 약물중독 치료 프로그램 수강 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 그가 어떤 경로로 대마를 확보했는지는 판결문에 적시되지 않았다.
대마 흡입이 적발된 장 회장 조직원은 2020년 6월 김해 난투극 일주일 전 경남 창녕에서 고려인 안산파 조직원들에게 폭행당해 앞니 3개가 빠졌던 인물이다. 그는 안산파 조직원들에게 폭행당하고 며칠 후 이웃에 살던 지인을 폭행한 혐의도 받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이웃에 살던 지인이 안산파 조직원들에게 자신의 거주지를 알려줬다고 의심했다.
장 회장 선박은 러시아 사할린에서 잡은 킹크랩 등 수산물을 주로 운송한다. 선박 추적 데이터에 따르면 러시아에선 사할린과 블라디보스토크, 국내에선 부산항과 강원도 동해항을 오갔다. 장 회장 선박은 지금도 운행 중이다. 지난 9월 강원도 동해항을 떠나 러시아로 향했다.
선박을 통한 밀수는 국내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장 회장 선박은 최근 밀수 사건에 연루된 적이 있다. 지난 5월 한 수산업자는 러시아산 킹크랩을 빼돌려 국내 유통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6년 판결이 확정됐다. 처벌받은 수산업자는 강원도 동해항 등에서 하역한 킹크랩 일부를 냉동탑차 안 밀실에 숨겼다. 하역한 킹크랩 중 일부만 수입 신고를 하고, 나머지는 수입 신고 없이 국내에 유통하는 방식으로 밀수를 한 것이다.
처벌받은 수산업자는 여러 선박에서 킹크랩을 하역한 뒤 밀실에 숨기기를 반복했다. 그중에는 장 회장 선박에서 하역한 킹크랩도 있었다. 처벌받은 수산업자와 장 회장 등 선박 소유주의 공모 관계는 판결문에 거론되지 않았다. 판결문에서 장 회장 선박은 피해자로 명시됐다.
안톤은 장 회장이 마피아 조직원들에게 국내에 킹크랩을 수입하는 경쟁업자를 폭행하게 시킨 적도 있다고 폭로했다. 장 회장 조직원 5명에게 폭행을 당한 경쟁업자는 병원으로 실려 가 일주일 뒤에야 의식을 되찾았다고 한다. 경쟁업자는 죽다 살아났지만 폭행당한 사실을 함구하고 있다. 가족의 안위를 걱정해서다. 안톤은 장 회장의 명령을 따르는 조직원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있고, 적어도 수십 명이라고 이야기했다.
장 회장은 조세회피처 파나마에 설립한 유령회사 ‘JANSAN LOGISTICS S.A’를 통해 자금 세탁을 한 의혹도 받는다. 창원지검은 장 회장에게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2025년 1월 R 사 공장 등을 압수수색했다. 수사 결론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파나마 회사 JANSAN은 파나마에서 법인 자격이 정지된 상태다. JANSAN은 2010년 12월 파나마에서 설립됐다. 설립 때부터 대표이사 등 이사진은 파나마 현지 법률사무소에서 맡았다. 법인 실소유주 대신 법률사무소 소속 직원들이 이사진을 맡은 것이다.
하지만 파나마 법률사무소 직원들은 2023년 일제히 JANSAN 이사직 사임서를 냈다. 3년 동안 JANSAN 주주들과 연락이 두절됐고 법인 등록 대리인으로서 수임료도 받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파나마 법인등기소에 따르면 JANSAN은 2025년 5월 법인 자격이 정지됐다. 법인세를 3년 연속으로 내지 않은 탓이었다.
안톤은 오랜 기간 장 회장에 대해 침묵하다가 보복을 무릅쓰고 제보를 결심했다. 안톤은 지난 7월 28일 창원지방검찰청장에게 탄원서를 보내 장 회장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안톤은 “장 회장 범죄를 심부름했던 당사자로서 범죄 사실이 밝혀져야 한다는 바람으로 편지를 용기 내 올린다”고 탄원서에서 강조했다.
남경식·김지영·주현웅·최희주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