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끌고 모친이 받치고 ‘비상체제’ 가동
‘비자금 의혹’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지난 6월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임준선 기자
이 회장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재산 해외도피 문제가 구속영장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재산 해외도피와 관련해서는 그 액수가 50억 원이 넘을 경우 무기징역에 처해질 수도 있어 만약 이 회장의 재산 해외도피가 입증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었다.
재계에서는 구속 여부와 상관없이 이재현 회장의 경영 일선 퇴진을 점치고 있다.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구속된다면 이 회장은 회장직을 계속 유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설사 구속되지 않더라도 투명경영의 각오를 보인다는 전략에 따라 이 회장 스스로 총수자리를 내놓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이호진 태광 회장이나 최태원 SK 회장처럼 이재현 회장도 스스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상민 인턴기자.
CJ그룹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이재현 체제에 대한 얘기는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현재 CJ 안팎에서는 손경식 그룹 공동대표이사 회장과 이미경 CJ E&M 총괄부회장, 이관훈 지주회사 대표가 핵심 인물로 거론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맡고 있는 손 회장은 CJ의 막후실력자로 알려져 있는 이 회장의 어머니 손복남 고문의 동생이다. 이 회장에게는 외삼촌이다. 이 회장의 누나인 이미경 부회장은 CJ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총괄하며 해당 분야에서 ‘대모’로 불리고 있다. 이관훈 대표는 제일제당 시절부터 CJ그룹의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로 CJ가 투명경영 차원에서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을 앞세운다면 가장 유력한 대표 후보로 꼽힌다.
왼쪽부터 이미경 부회장, 손경식 회장.
이 회장의 딸 경후(28), 아들 선호 씨(23)는 나이가 아직 어린 데다 경영수업도 제대로 받지 않은 터라 그룹 경영을 이어받기 곤란해 보인다. 이 회장의 동생 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는 그동안 그룹 경영과 거리를 둬왔다. 손복남 고문이 경영 전면에 나서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 회장 전에 그룹을 이끌어왔던 손경식 공동대표 회장도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나 적잖은 나이(74세)에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어 새삼 그룹 경영에 전력을 다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드물다. 재계 고위 인사는 “크고 작은 행사에 얼굴을 자주 비칠 만큼 워낙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 고령이 문제될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다만 그룹 경영에서 손 뗀 후부터는 대외활동에 더 신경 써온 탓에 경영 일선에 복귀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들과 달리 이미경 부회장은 오래 전부터 CJ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도맡다시피 하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아왔다. CJ가 현재 엔터테인먼트 왕국으로 성장하는 데 이 부회장의 역할이 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오죽하면 CJ가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분리, 이 부회장이 맡는 남매간 계열분리설이 그럴듯하게 나돌았을 정도다. 선대회장인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 때부터 범삼성가는 여성의 경영 참여에 적극적이었다는 점도 CJ의 계열분리설에 힘을 보탰다.
이 회장 다음 경영권은 이미경 부회장이 쥐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받고 있다.
그러나 계열분리와 임시적 경영권 행사는 다르거니와 CJ는 지금 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해 있다. 게다가 손복남 고문이 뒤에서 받치고 있는 한 이미경 부회장의 힘도 결코 약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벌써 막후실력자로 통하는 손 고문이 이미경 부회장 중심으로 새판을 짜고 있으며 그룹의 권력이 서서히 이 부회장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등장할 것이라는 관측에 회의적인 반응도 존재한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에만 치중해온 이 부회장이 식음료, 유통까지 전부 아우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이재현 회장과 함께 비자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도 이 부회장의 경영권 행사에 발목을 잡는 부분이다. 재계 관계자는 “비록 이 회장을 제외하고 실질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오너는 이 부회장뿐이지만 비자금 문제가 걸려 있다”며 “그동안 그룹 경영에서도 한 발 떨어져 있었기에 장악력에도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이미경 부회장 지분이 턱없이 낮은 이유
엄마가 장남에 다 몰아준 탓
고 이병철 창업주 때부터 범삼성가는 여성의 경영 참여와 지분 확대에 대해 관대했다. 이 회장의 장녀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그렇고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그렇다. 일찍 LG가로 시집간 차녀 이숙희 씨만 예외였다. 이 같은 집안 분위기는 3세까지 이어져왔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등이 모두 지분을 갖고 경영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이 창업주의 장손녀인 이미경 부회장만 지분이 턱없이 낮다. CJ E&M 총괄부회장으로서 CJ의 엔터테인먼트 사업 부문을 크게 성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등 이 부회장은 경영 참여에는 후회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오너 회장의 친누나인 데다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삼성가의 여성으로서 보유 지분이 고작 CJ E&M 주식 5만 7429주(0.15%)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여기에는 CJ그룹의 어려웠던 분가 과정과 손복남 고문의 선택이 숨어 있다.
지난 1993년 삼성에서 떨어져 나올 당시 손복남 고문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안국화재(현 삼성화재) 지분 15.6%를 제일제당 주식과 맞교환했다. 이렇게 교환한 제일제당 주식 약 16%를 손 고문은 아들인 이재현 회장에게 증여했던 것. 따라서 이 회장의 지분이 압도적으로 많고 이미경 부회장의 지분이 미미한 이유는 이병철 창업주가 이미경 부회장에게 재산이나 지분을 물려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머니 손 고문이 아들인 이재현 회장에게 전부 몰아줬기 때문이다.
이미경 부회장이 CJ그룹 계열분리 전 이미 결혼해 나간 것도 한 이유로 보인다. 집안의 반대가 심했으나 이를 무릅쓰고 이 부회장은 김석기 전 중앙종금 사장과 결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전 사장은 이 부회장과 이혼 뒤 1994년 배우 윤석화 씨와 결혼했다. 최근 김 전 사장 부부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던 것으로 밝혀져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CJ의 계열분리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한 대기업 임원은 “당시 CJ는 굉장히 위태로웠다”며 “손 고문으로서는 맞교환한 지분을 여기저기 나눠주기보다 장남에게 몰아주면서 경영권을 안정화시키는 게 급선무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고작 16% 지분으로 경영권을 행사하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지분을 자녀들에게 골고루 나눠준다면 경영권이 흔들렸을지 모를 일이었다는 얘기다. 이 임원은 또 “당시 삼성 쪽에서 이학수 삼성화재 부사장을 제일제당 대표이사로 파견하는 등 제일제당 분리를 막으려 한다는 의혹을 산 것도 손 고문이 이 회장에게 지분을 몰아줄 수밖에 없었던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형제간 불화를 방지하기 위해 손 고문이 이 회장에게 지분을 몰아주고 이 부회장에게는 지분을 증여하지 않았다는 해석도 있다.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부인이자 이병철 창업주의 맏며느리로서 가족·형제 간 불화를 직접 보고 들은 손 고문이 자녀들에게 지분을 나눠주면 훗날 다툼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경영권 안정과 불화 방지’가 삼성가의 맏손녀이면서도 이 부회장의 지분이 턱없이 낮은 이유가 된 셈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엄마가 장남에 다 몰아준 탓
고 이병철 창업주 때부터 범삼성가는 여성의 경영 참여와 지분 확대에 대해 관대했다. 이 회장의 장녀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그렇고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그렇다. 일찍 LG가로 시집간 차녀 이숙희 씨만 예외였다. 이 같은 집안 분위기는 3세까지 이어져왔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등이 모두 지분을 갖고 경영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이 창업주의 장손녀인 이미경 부회장만 지분이 턱없이 낮다. CJ E&M 총괄부회장으로서 CJ의 엔터테인먼트 사업 부문을 크게 성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등 이 부회장은 경영 참여에는 후회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오너 회장의 친누나인 데다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삼성가의 여성으로서 보유 지분이 고작 CJ E&M 주식 5만 7429주(0.15%)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여기에는 CJ그룹의 어려웠던 분가 과정과 손복남 고문의 선택이 숨어 있다.
지난 1993년 삼성에서 떨어져 나올 당시 손복남 고문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안국화재(현 삼성화재) 지분 15.6%를 제일제당 주식과 맞교환했다. 이렇게 교환한 제일제당 주식 약 16%를 손 고문은 아들인 이재현 회장에게 증여했던 것. 따라서 이 회장의 지분이 압도적으로 많고 이미경 부회장의 지분이 미미한 이유는 이병철 창업주가 이미경 부회장에게 재산이나 지분을 물려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머니 손 고문이 아들인 이재현 회장에게 전부 몰아줬기 때문이다.
이미경 부회장이 CJ그룹 계열분리 전 이미 결혼해 나간 것도 한 이유로 보인다. 집안의 반대가 심했으나 이를 무릅쓰고 이 부회장은 김석기 전 중앙종금 사장과 결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전 사장은 이 부회장과 이혼 뒤 1994년 배우 윤석화 씨와 결혼했다. 최근 김 전 사장 부부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던 것으로 밝혀져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CJ의 계열분리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한 대기업 임원은 “당시 CJ는 굉장히 위태로웠다”며 “손 고문으로서는 맞교환한 지분을 여기저기 나눠주기보다 장남에게 몰아주면서 경영권을 안정화시키는 게 급선무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고작 16% 지분으로 경영권을 행사하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지분을 자녀들에게 골고루 나눠준다면 경영권이 흔들렸을지 모를 일이었다는 얘기다. 이 임원은 또 “당시 삼성 쪽에서 이학수 삼성화재 부사장을 제일제당 대표이사로 파견하는 등 제일제당 분리를 막으려 한다는 의혹을 산 것도 손 고문이 이 회장에게 지분을 몰아줄 수밖에 없었던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형제간 불화를 방지하기 위해 손 고문이 이 회장에게 지분을 몰아주고 이 부회장에게는 지분을 증여하지 않았다는 해석도 있다.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부인이자 이병철 창업주의 맏며느리로서 가족·형제 간 불화를 직접 보고 들은 손 고문이 자녀들에게 지분을 나눠주면 훗날 다툼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경영권 안정과 불화 방지’가 삼성가의 맏손녀이면서도 이 부회장의 지분이 턱없이 낮은 이유가 된 셈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