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 못믿어” VS “매뉴얼대로” 옥신각신
‘엔진 불’ 사건을 둘러싸고 이스타항공 내부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지난 7월 18일 오전 7시 김포공항. 승객들을 태운 이스타항공 ‘ZE203편’은 활주로에 진입하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천천히 활주로를 향해 다가가는 ZE203편에 긴급한 무전이 들려왔다. ZE203편 뒤쪽으로 ‘불(화재)’이 보인다는 것이다. 다른 두 항공사 기장의 무전에 ZE203편 기장이 재차 확인을 요청했다. 다시 봤을 때는 불이 없어졌다고 알려왔다. 이 같은 내용은 당시 활주로에 있던 9대의 항공기와 관제탑이 모두 듣고 있었다. 활주로에 진입한 항공기와 관제탑은 같은 채널을 쓰기 때문이다.
‘불이 보였다’는 신고에 따라 ZE203편 기장은 이륙을 포기하고 정비를 요청했다. 항공사를 관리감독하는 국토부 관계자는 “이날 ZE203편이 해당 사건을 이유로 운항스케줄에서 빠져 연착됨에 따라 해당편 승객을 다른 비행기에 실어 보내고 2시간가량 정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정비에 들어간 ZE203편에 대해 정비사와 조종사 측의 시각은 완전히 엇갈렸다. 이스타 정비본부장은 “해당 항공기는 엔진 배기관 쪽에 화재(Engine Tailpipe Fire)다. 배기관 쪽 고여 있던 기름이 엔진이 가열되며 온도가 올라가 불이 붙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잠깐 불꽃이 보이는 정도로,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국토부에서 항공사의 정비를 감독하는 관계자도 “배기관에서 발생하는 화재는 큰 문제가 아니며 매뉴얼에도 나와 있고 그것에 대한 조치는 엔진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출력 실험(Power Test)만 하면 된다”면서 “전날 있었던 내시경 검사 때문에 해당 기체에 기름이 좀 묻어 있었던 것이 원인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불에 대한 시각도 엇갈린다. 이스타항공 A 기장은 “잠깐 보였다 없어지는 불꽃이면 뒤에 50m나 떨어져 있는 다른 비행기에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스타항공 정비본부장은 “만약 진짜 불이었다면 해당 기장이 엔진을 껐을 것”이라며 “엔진을 끄지 않은 것이 불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반박했다.
당시 ZE203편 기장은 ‘엔진 배기관 화재는 시동 직후에 발생하는 것이 정설이다. 엔진 시동 이후 15분이나 지났는데 불이 보였다는 것은 엔진 배기관 화재가 아니다. 더 정밀한 확인이 필요하다’며 내시경 검사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내시경 검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당 항공기는 활주로에서 되돌아온 지 약 2시간 만에 이스타항공 운항본부장이 직접 다음 비행 스케줄을 소화했다.
이스타항공은 안전규정 위반으로 당국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곧바로 내시경 검사가 이뤄지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도 복수의 이스타항공 기장들 의견과 정비본부 측 입장이 엇갈린다. 이스타항공 정비본부장은 “내시경 검사는 배기관 화재에서는 해야 한다고 매뉴얼에 써있지 않다.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안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A 기장은 “회사 게시판에 정비본부 측에서 내시경 검사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엔진이 아직 식지 않아서라는 답변을 달았다”며 “해당 글은 게시판에서 곧 삭제됐다. 이는 안전보다는 운항 스케줄을 맞추려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ZE203편은 이후 그날 남은 몇 개의 운항 스케줄을 소화한 뒤 다음날이 돼서야 내시경 검사에 들어갔다. 이를 두고도 의견은 첨예하게 대립한다. 이스타항공 정비본부장은 “국토부 검사관이 사건이 있었으니까 불안감 해소 차원에서 한 번 내시경 검사를 하자고 해서 했다”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도 “해당 기체에 대해 운항승무원 몇이 못 탄다고 하니까 내시경 검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스타항공 B 기장은 “운항이 끝난 이후에 내시경 검사를 한 것이 더 미심쩍다”며 “만약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면 기장이 요청한 만큼 내시경 검사를 해보는 것이 맞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타 항공사 기장은 “기장은 사고가 나면 모든 책임을 짊어진다. 기장에게는 끊임없이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 사건에서는 정비 측이 기장에게 기체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
사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배경에는 정비에 대한 기장들의 뿌리 깊은 불신이 숨어있는 듯했다. 복수의 기장들은 입을 모아 “회사가 힘들어서 그런지 정비에서 부실함을 느낀다”며 “물론 안전을 생각하겠지만 항공 스케줄이라는 돈과 안전이 대립할 때 안전을 선택할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한 국토부 관계자는 “이스타항공 경영이 어려우니 내부에서도 민감한 것 같다”며 “운항본부에서 정비본부가 혹시 정비를 철저히 하지는 않는지 의심하는 상황에서 과민 반응이 나온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일에 대해 이스타항공 본사 측은 “내부적으로 정비 매뉴얼대로 조치를 취한 후 끝난 사안이다. 사건이라고 하기에도 무리가 있다”며 “일부 감정이 있는 기장들이 악의적으로 말을 만든 측면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첫 흑자 저가항공사 현재 항공기 8대를 운항하고 있는 이스타항공은 지난 2007년 10월에 설립된 저가항공사(LCC)다. LCC업계 4위. 최대주주는 49.4%를 갖고 있는 (주)새만금관광개발이다. 이스타항공은 이상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전주 완산을·회장 역임)을 배출했지만 이 의원의 형 이경일 회장이 경영을 이어오다 지난해 11월 횡령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스타항공은 오랜 적자에 시달리다 지난해 첫 흑자(영업이익 23억 원) 달성에 성공했다. 올해 2월 누적 탑승객 1000만 명을 돌파한 이스타항공은 도쿄, 오사카, 대만, 홍콩, 방콕, 코타키나발루, 선양, 지난, 상하이, 8개의 국제선 정기편을 운항 중이다. 국내선은 김포-제주, 청주-제주, 군산-제주, 3개의 정기편을 운항하고 있다.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