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직해진 후예들 개헌론 불붙여…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상도동계 막내’로 “언젠가 역사가 YS를 제대로 평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상도동계 막내’로 불리다 어느덧 집권여당 수장이 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8월 20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YS를 두고 한 말이다. 제14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행정실장을 거쳐 문민정부 당시 청와대 비서관, 내무부 차관 등을 지낸 김 대표는 자신의 뿌리가 상도동에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김 대표 이외에도 현재 새누리당 지도부 5인 가운데 4인은 YS의 문민정부 당시 정치인으로 발탁되고 성장했다. 김 대표와 7·14 전당대회에서 맞붙은 서청원 최고위원은 김영삼 민주당 총재 비서실장, 문민정부 정무장관 등을 지냈고, 특히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민정계의 지지를 받는 이회창 후보를 상대로 비주류 단일후보를 만들기 위한 정치발전협의회 간사를 맡아 민주계 지키기에 앞장서기도 했다. 훗날 서 최고위원은 친박계 좌장으로 변모해 박근혜 대통령 지키기에 나섰다.
‘불사조’라는 별명이 붙은 이인제 최고위원은 문민정부 시절 민주자유당 소장파를 자처했다. 그는 문민정부에서 치러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로도 거론될 만큼 YS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상도동계 핵심 축이었던 ‘좌형우, 우동영’ 가운데 고 김동영 전 장관 집에서 과외를 시작하며 정치의 꿈을 꽃피웠다. 김 전 장관의 집은 상도동계 핵심 조직인 민주산악회 집결지와도 같은 곳이었다.
병상에서 ‘브이’ 자를 한 손을 들어보이는 김영삼 전 대통령. 페이스북 사진 캡처.
친박계 황우여 장관을 꺾고 당선된 정의화 국회의장도 ‘상도동계 DNA’를 지닌 인물로 평가된다. 정 의장은 지난달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싸고 여야가 일촉즉발인 상황에서 여당 의원들만 참석한 본회의를 전격 연기했다. 당내 거센 반발을 사면서도 야당의 손을 들어주며 ‘타협하는 의회주의자’ 면모를 보인 것이다.
새누리당의 한 고참 당직자는 “YS의 상도동계와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 모두 민주화 투쟁 이미지가 강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원내 활동을 중시했던 정치인들”이라며 “김무성 대표 체제와 함께 야당에 문희상 비대위 체제가 들어서면서 강경 일변도였던 정치권에 상도동-동교동 정치가 부활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상도동계의 분화와 화합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문민정부 당시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으면서 YS의 ‘젊은 양 날개’로 활약했던 김영춘·이성헌 두 정치인이 표본이다. 각각 고려대와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이들은 향후 엇갈린 행보를 택했다. 이성헌 전 의원은 지난 대선 박근혜 후보 외곽조직인 국민희망포럼을 이끌며 ‘개국공신’이 됐다. 현재는 새누리당 원외 당협위원장협의회를 이끌고 있어 김무성 지도부와 미묘한 긴장감을 형성하고 있다. 김영춘 전 의원은 노무현 정부 때 한나라당을 탈당,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여권과 결별했고 이후 안철수 신당 창당에 관여하는 ‘6인회’ 멤버로 지목되기도 했다.
상도동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저. 임준선 기자
지난 대선 당시 여권 내 상도동계 인사들은 동교동계 인사를 적극 영입해 대통합 이미지를 내세우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새천년민주당 대표를 역임한 한화갑 한반도평화재단 총재, <김형욱 회고록>으로 유명한 김경재 전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맞서 민주통합당 역시 뒤늦게 상도동계 출신 영입에 나섰다. 상도동계 맏형 김덕룡 전 장관과 문정수 전 부산시장, 그리고 문민정부 ‘안풍’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됐던 강삼재 전 의원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것이다. 하지만 야권은 상도동계 출신 영입에 대한 내부 반발이 적잖아 선거 차원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현 정권 들어 상도동계 인사들이 개헌 이슈에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청와대의 개헌 불가에 맞서 김무성 대표가 개헌 논의에 물꼬를 틔우기도 했다. 김 대표는 지난 16일 중국 상하이에서 “정기국회가 끝난 뒤 개헌 논의에 대한 봇물을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 권력을 분점해야 우리 사회의 진영논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김 대표는 다음날 “평소 생각한 것을 말했는데 이렇게 폭발적일지 몰랐다. 대통령과 정면충돌이라고 났는데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며 자체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한번 불이 붙은 개헌 논의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왼쪽 두 사진은 서청원 최고위원과 홍준표 경남지사, 이인제 최고위원과 김태호 최고위원. 새누리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연합 문희상 비대위 대표 체제는 상도동-동교동 정치의 부활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관해 상도동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YS 차남 김현철 한양대 특임교수는 각론을 달리 한다. 김 교수는 <일요신문>과 전화통화에서 “개헌은 고려 대상이 아니라 언제 닥칠지 모르는 통일을 앞두고 하루라도 빨리 관철시켜야 할 필수불가결한 당면과제”라고 강조했다.
상도동을 중심으로 한 개헌론 불 지피기에 여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는 중이다. 친박계 한 재선 의원은 “YS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결국 문민정부 당시 IMF 사태, 그리고 3당합당에 합의한 부분이 아닌가. 요즘 정치권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과거 3당합당과 같은 제3지대 창당 움직임이 있다”며 “상도동계 인사들이 주축이 된다면 결국 정치적 투쟁이라는 비판과 국민의 외면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