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보다 짜릿한 ‘승부’에 훅 간 선수 여럿
#선수들의 일상에 침투한 파친코
사실 ‘도박’이라는 단어는 많은 야구선수들의 생활에 깊숙이 개입돼 있다. 일본의 합법적 도박게임인 파친코가 대표적이다. 한 야구 관계자는 “어릴 때부터 운동만 해온 선수들은 여가 시간을 다양하게 보내는 방법을 잘 모른다. 특히 스프링캠프라도 가서 외국에 한 달, 두 달씩 있다 보면 스트레스를 해소할 거리를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훈련 기간이라 술을 양껏 마실 수도 없다. 그래서 대부분 일본에서 찾는 취미가 파친코다”라면서 “독서, 영화 감상, 음악 감상 같은 취미는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에게 너무 정적이다. 파친코 같은 게임을 적당하게만 하면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구단이 스프링캠프에서 휴식일 전날 야간 훈련을 면제해준다. 그날만큼은 파친코 업소에 다녀와도 좋다는 무언의 허가다. 이 관계자는 “감독이나 구단도 파친코에 대한 문제의식은 크지 않다. 파친코가 합법적인 도박장이고 밤늦은 시간이 되면 문을 닫기 때문에 오히려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며 “그보다는 그런 과정을 통해 다른 도박에 맛을 들이게 됐을 때의 후폭풍이 문제”라고 했다.
현역인 A 선수는 “사실 여러 명의 선수들이 캠프를 함께 가기 때문에 팀 내 사교의 일환으로 함께 파친코에 가는 일이 필요한 경우도 생긴다. 선배 선수들과 후배 선수들이 친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며 “그러다가 연봉도 적은 선수들이 너무 많은 돈을 잃게 되거나 너무 푹 빠져들면 운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 선배가 연봉 많은 후배에게 돈을 꿔서 파친코에서 탕진하고 안 갚는 일도 생긴다. 결국 무엇이든 ‘지나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도박으로 패가망신한 두 은퇴선수
물론 파친코 정도는 ‘애교’ 수준이다. 이미 은퇴한 B 선수와 C 선수는 야구계에서 도박 중독자로 유명했다. 둘 다 좋은 기량을 인정받고 팀에서 꼭 필요한 전력으로 활약했지만, 선수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하려 할 때마다 늘 도박에 발목을 잡혔다. 연봉이 오르고 돈이 생기면, 그만큼 더 도박에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B는 급기야 조직폭력배 자금을 조달 받아 쓰다가 잃기만 하고 갚지 못해 여러 차례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한 야구 관계자는 “이 선수 때문에 야구장이나 원정 숙소인 호텔까지 건달들이 찾아와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구단이 외부에 새어나가지 않도록 막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다른 팀으로 옮겨 가서도 결국 도박에 얽힌 사생활 문제로 은퇴했다”고 말했다. C 역시 쏠쏠한 프리에이전트(FA) 계약을 맺고도 억대 계약금을 1년 만에 날렸다는 풍문이 떠돌았다. 도박 탓에 이혼도 했다. 또 다른 야구 관계자는 “C는 필리핀에 체류하면서 도박을 하다 한국에 돌아갈 비행기 티켓 값이 없다고 후배 여러 명에게 연락해 송금을 받았다. 그런데 그 돈으로 비행기를 타지 않고 다시 도박을 해 모두 혀를 찼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 정도로 심각한 선수들은 다른 동료들에게 반면교사의 사례가 된다. 그러나 대부분은 도박에 대해 크게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프로선수 출신인 한 야구 관계자의 증언을 들어보면 이렇다. “선수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이른바 ‘노름’에 노출이 많이 돼 있어서 도박이 좋지 않은 일이라는 의식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한 팀을 예로 들면, D 감독 시절에 감독이 선수들의 사생활을 관리하려고 오후 11시가 넘으면 선수단 숙소 셔터를 내려버리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일찍 숙소에 들어온 선수들에게는 밤이 너무 길었다. 한 방에 삼삼오오 모여 고스톱이나 카드를 치기 시작했다. 다들 승부욕이 강해서 판돈이 점점 커졌고, 일부 선수들은 월급까지 다 걸고 게임을 했다. 그러다가 선수단 내부에서 채무 관계가 생기고 그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말도 많아졌다.”
그렇게 도박의 재미와 짜릿함을 알게 되면, 점점 더 일상화된다. 앞서의 야구 관계자는 “파친코나 인터넷 도박으로 범위를 넓혀가고, 그러다 해외여행을 떠나 카지노까지 발을 들여 놓는다. 파친코는 영업 종료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카지노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 곳에는 언제나 ‘돈 많은 고객’을 기다리는 전문 도박꾼들로 넘쳐난다”며 “물론 극히 일부의 사례지만,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하우스’라는 곳에서 사람 대 사람으로 도박을 하는 단계에 이르면 이제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없어진다. 그래서 무엇이든 적당히 하는 자기 절제가 중요하다”고 했다.
#왜 선수들은 도박을 할까
100만 원을 걸고 1000만 원을 딴 사람이 그 1000만 원으로 1억 원을 벌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순간 위험해진다. 그러다 그 1000만 원마저 잃게 되면 만회에 대한 욕구가 생기기 때문이다. 한 야구 관계자는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승리 욕이 강하고, 실수를 했을 때 만회하려는 본능이 있다. 투수는 홈런을 맞았으면 삼진을 잡고 싶고, 타자는 삼진을 먹었으면 홈런을 치고 싶은 거다. 게다가 남들보다 체력과 지구력이 뛰어나고 집념도 강하다. 그런 능력이 도박에 잘못 사용되면 엇나가기 십상”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야구 관계자 역시 “도박 중독에 빠지면 연봉이 높아지는 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그 돈이 결국 더 큰 도박 판돈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게다가 인기 야구선수나 연예인처럼 유명하고 목돈이 많은 사람들 주변에는 늘 검은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 조직폭력배들이 의도적으로 “돈을 대주겠다”며 접근하기도 한다. 한 야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반인에게 알려진 사람들은 돈을 빌려줬다가 채무가 생겼을 때 협박하기가 쉽다. 요즘은 조금만 소문을 흘려도 명성에 치명타가 되고 금세 퍼지기 때문에 더 그렇다”며 “실제로 큰돈을 따고도 오히려 ‘세간에 알리겠다’는 협박을 받아 딴 돈을 받지도 못한 선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배영은 스포츠 자유기고가
미·일 야구 최악의 승부조작 스캔들 화이트삭스 원투펀치 사구 남발…의혹이 사실로 선수들의 불법 도박이 만들어 내는 최악의 결과물은 ‘승부조작’이다. 불법 스포츠 도박과 연관된 승부조작 스캔들은 청명해야 할 그라운드를 검게 물들인다. 선수들을 향한 마수, 그리고 그 유혹에 넘어간 선수들의 승부조작이 리그 전체에 걷잡을 수 없는 악영향을 미치고 팬들의 마음을 앗아간다. 한국 프로야구도 승부조작의 검은 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12년 LG 소속이던 박현준과 김성현이 검찰 수사에서 승부조작에 참여한 사실이 발각돼 실형을 선고 받았다. KBO는 이들을 영구 실격시켰다. 대만 프로야구는 아예 광범위한 승부조작으로 인해 리그 자체가 초토화됐다. 하얀 양말이 검은 양말로… 승부조작에 가담했던 화이트삭스 8명의 선수들. 아랫줄 왼쪽 두 번째가 전설적 타격왕 조 잭슨. 야구로는 세계 최고의 리그라는 메이저리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오랜 전통을 지닌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이지만, 그들의 역사에는 여전히 ‘블랙삭스’라는 불명예스러운 단어가 새겨져 있다. 1919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에 오른 화이트삭스는 전설적 타격왕 조 잭슨을 위시해 에디 콜린스, 치크 갠딜, 에디 시카티, 클라우드 윌리엄스 등이 투타에 포진한 스타 군단이었다. 그러나 월드시리즈가 시작되기 전부터 ‘화이트삭스가 내셔널리그 챔피언 신시내티에 일부러 패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화이트삭스는 1차전에서 19승 투수 시카티를 내고도 1-9로 졌다. 2차전에선 23승 투수 윌리엄스가 4사구를 남발하면서 2-4로 패했다. 경기 후 포수 레이 쇼크가 윌리엄스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휘두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3차전은 화이트삭스의 승리. 그러나 4차전에선 또 다시 선발로 나선 시카티가 5회 결정적 실책 2개로 2점을 내줘 0-2로 패했다. 5차전에선 잭슨의 실책 때문에 0-5로 졌다. 9전5승제의 시리즈에서 이미 1승4패로 수세에 몰렸다. 결과도 결과지만, 경기 내용이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그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다. 월드시리즈 3주 전 투수 시카티와 윌리엄스, 1루수 갠딜, 외야수 잭슨을 비롯한 8명의 선수들이 도박사들에게 8만 달러를 받고 고의로 시리즈에서 패하기로 계약했던 것이다. 당대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였던 이들은 짠돌이 구단주 찰리 코미스키 탓에 다른 팀 주전선수 연봉의 절반도 받지 못했다. 승부조작 가담의 원인이었다. 8명의 선수들은 5차전이 끝난 뒤 도박사들이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리란 점을 간파했다. 다시 6차전과 7차전에서 정상적인 승부를 펼쳐 3승4패까지 따라갔다. 그러나 8차전 선발 윌리엄스가 “아내를 살해하겠다”는 도박사들의 협박에 굴복했다. 결국 월드시리즈는 신시내티의 우승으로 끝났다. 월드시리즈의 승부조작 의혹은 이듬해 시즌이 시작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당시 아메리칸리그 회장 밴 존슨이 내사를 지시했다. 1920년 9월 뉴욕 자이언츠 투수 루브 벤턴이 결국 시카티, 윌리엄스, 갠딜 등의 이름을 고발했다. 언론에 보도되고 여론이 들끓었다. 시카티는 구단주와 구단 고문변호사 앞에서 전말을 자백했다. 관련 선수들도 속속 법정에 섰다. 법정의 판결은 ‘무죄’였다. “계약의 목적이 단순히 패하는 데 있지 않고 대중을 기만하려 했다는 점이 증명돼야 하는데,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의 판결은 달랐다. 선수 8명에게 모두 영구추방 명령을 내렸다. 최고의 타자로 꼽혔던 잭슨의 명성도 그렇게 얼룩졌다. 피트 로즈 역시 도박 때문에 야구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메이저리그 통산 3562경기에 출장해 4256안타를 친 최고의 타자였다. 명예의 전당 입성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인물이다. 그러나 1989년 2월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피터 유버러스가 로즈의 승부조작 베팅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고, 후임 커미셔너인 버트 지어마티는 끝내 로즈가 1987년 자신이 감독을 맡고 있던 신시내티의 52경기에서 경기당 수천 달러에 달하는 베팅을 하고 승부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선수보다 감독의 승부조작이 훨씬 쉬운 일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사상 초유의 ‘감독 승부조작.’ 로즈는 그해 감독직을 사임하고 도박중독 치료를 받았고, 메이저리그에서 영구 제명됐다. [은] |
1969년 일본 ‘검은안개’ 사건 니시테쓰 투수 4명 줄줄이 덜미…끝내 팀 매각 ‘검은 안개 사건’은 일본 프로야구가 지우고 싶어 하는 암흑의 단어다. 1969년부터 1971년까지 선수들이 잇따라 돈을 받고 경기를 져주는 일이 발각된 사건을 묶어서 그렇게 부른다. 1969년 <스포츠호치>의 니시테쓰 담당 기자가 한 선수에게 “팀원 가운데 일부러 실책을 하는 선수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 발단이었다. <스포츠호치>는 <요미우리신문> 사회부와 협력해 조사를 시작했다. 곧 니시테쓰 투수 나가야스 마사유키가 조직폭력단 관계자에게 승부조작 제의를 받아 실제로 가담하고 있었던 사실이 발각됐다. 니시테쓰는 시즌이 끝난 뒤 나가야스와 재계약하지 않았다. 일본야구연맹 감독관위원회는 나가야스에게 사상 최초의 영구출전정지 처분을 내렸다. 1969년 당시 승부조작 관련 기자회견 장면. 앞에서 두 번째 인물이 사건의 장본인 고 나가야스 마사유키. 이뿐만이 아니다. 1971년에는 야구가 아닌 오토레이스 불법 베팅에 전·현직 프로야구 선수들이 참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주니치 에이스 오가와 겐타로, 도에이 투수 다나카 미쓰구와 모리야스 도시아키, 한신 내야수 가쓰라기 다카오, 야쿠르트 내야수 구와타 다케시 등 스타플레이어들의 이름이 속속 드러났다. 오가와와 모리야스는 영구추방 처분을 당했고, 가쓰라기와 구와타는 3개월 실격 처분을 받았다. 이후에도 많은 선수와 코치들이 도박에 연루된 폭력조직과 깊은 친분을 맺어왔다는 혐의가 속속 드러나면서 계도와 근신 처분이 이어졌다. 그야말로 일본프로야구의 ‘흑역사’였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