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없는 이들의 가난하지만 넉넉한 터전
캄보디아 톤레삽 호수의 수상가옥들.
[일요신문] 우리에게 바다, 강, 호수는 각기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바다의 포용력, 강물 같은 평화, 고요한 평안이 그것입니다. 언젠가 방송에서 월든 호수를 본 적이 있습니다.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 있는 호수입니다. 1845년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살던 곳입니다. 카메라가 호수를 비추다가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국의 법정스님이 호숫가를 걷고 있습니다. 그 스님의 추모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언젠가 이 숲속을 찾았던 기록입니다. 그의 ‘무소유’와 소로우의 ‘소박한 삶’이 겹치는 순간입니다. 소로우는 이 호숫가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명저 ‘숲속의 생활’을 썼지요. 초목의 빛깔, 호수의 물결소리, 계절의 변화를 섬세하게 다루며 자연과 인생의 깊이를 느끼게 했습니다. 고요한 호수는 이렇게 삶의 고요를 일깨워줍니다. 고요하게 살기라도 하라는 듯.
톤레삽은 동남아 최대 호수로 잉어, 메기, 민물농어 등 물고기가 풍부하다.
제가 미얀마로 오기 전에 강원도 양양에서 일 년을 산 적이 있습니다. 고향 근처입니다. 그곳에도 영랑호라는 제법 큰 호수가 있습니다. 그 호숫가를 산책하며 언젠가는 바이칼호를 가리라 생각하곤 했지요. 양양에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정기 페리가 있었습니다. 대개 낚시하러 많이 갔지만 거기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기착지였습니다. 그 도시에서 바이칼호를 보러 떠나는 여행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는 소금호수로는 카스피해입니다. 중앙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에 있습니다. 둘레가 7000km가 넘습니다. 한반도보다 큽니다. 담수호로는 단연 바이칼호수입니다. 러시아 시베리아 남쪽에 있습니다. 둘레가 2100km가 넘습니다. 최고 깊은 곳이 1600m가 넘는 가장 맑고 깊은 호수여서 가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언젠가 남과 북의 철도가 열리면 가는 길이 더 쉬워지겠지요.
수상가옥 주민 중에는 베트남 난민들도 많다.
오늘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 톤레삽(Tonle Sap)으로 갑니다. 캄보디아 유적관광도시 씨엠립에서 40분 거리입니다. ‘톤레’가 호수란 뜻이고 ‘삽’이 지명입니다. 그러니 삽호수라고 할까요. 옛 크메르 왕들은 이 호수를 끼고 수도를 세워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수도 프놈펜도 보트로 이 호수를 통해 갈 수 있습니다. 약 6시간 걸립니다. 톤레삽 호수는 크기가 한국 경상북도만 하다고 합니다. 수상가옥과 난민들의 피난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환경이 많이 오염되었습니다. 주민들은 호수의 물로 씻고 빨래하고, 밥 짓고 설거지 하고, 생선도 손질하고 가축도 키우고, 화장실도 겸하기 때문입니다. 수상가옥들은 우기에는 호수 깊숙이 들어가 흩어져 살다 건기에는 연안으로 나와 집단마을을 이루며 삽니다. 호수물이 건기와 우기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기에는 호수 깊이 들어가 살다 건기에는 연안에 나와 모여 산다.
10월에서 3월까지의 건기에는 수심이 1m, 호수 면적이 3000㎢입니다. 그러나 우기인 4월부터 9월까지는 수심 12m, 면적은 1만 2000㎢까지 불어납니다. 캄보디아 국토의 15%에 해당할 정도입니다. 그 이유는 메콩강물이 엄청나게 역류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티베트에서 6개국을 통과해 흐르는 메콩강은 건기에는 베트남 델타 삼각주를 지나 남중국해로 자연스럽게 빠집니다. 그런데 우기에는 수량이 넘쳐 델타 삼각주에서 역류해 톤레삽으로 밀려와 거대한 호수를 만듭니다. 참 특이한 호수입니다. 이 호수의 넉넉함으로 인해 메콩강은 범람하지 않고, 캄보디아와 베트남 델타지역에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줍니다. 또한 혼탁한 호수에는 잉어, 청어, 메기, 민물농어 등 850여 종의 물고기들이 있어 이 나라의 중요한 어업자원이 되었습니다.
톤레삽 마을의 아이들.
수상가옥에는 그래도 슈퍼마켓, 식당, 잡화점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구호단체에서 세운 학교와 병원도 보입니다. 거룻배 위에 물코코넛잎으로 만든 주거공간에는 예닐곱 명의 가족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습니다. 이곳에는 베트남 난민들이 많이 삽니다.
어린 소녀들이 1달러를 외치며 관광객에게 다가온다.
양은 함지박을 타고 어린아이들이 관광객을 찾아 떠다닌다.
1975년 사이공이 함락되고 전쟁이 끝났지만 수많은 보트피플이 생겨났습니다. 미군이나 연합군에 협력했던 많은 베트남 남쪽 사람들이 보트를 타고 망망대해로 나갔습니다. 유엔난민기구 보고서에 의하면 약 25만 명이 폭풍과 질병, 그리고 굶주림에 죽어나갔고 약 160만 명이 전세계에 퍼져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 중 일부는 메콩강을 따라 톤레삽으로 들어왔습니다. 캄보디아는 이들 난민들을 반기지 않았고, 베트남 정부도 냉담했습니다. 유엔의 본국 귀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돌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캄보디아 정부가 몇 년 전부터 국적 취득을 허용하면서 이들은 새로운 삶을 합법적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은 의료, 교육, 생존이 어려운 수상마을입니다. 아이들은 함지박을 타고 코카콜라를 팔아야 하고, 어른들은 하루치 양식을 벌기 위해 깊은 호수에 그물을 내려야 합니다.
비옥한 땅을 만들고 물고기가 풍성한 호수 톤레삽. 오늘도 여전히 아이들은 관광보트에 다가와 1달러를 외치고, 아낙네들은 미소를 보냅니다. 톤레삽 호수에 서면 풍요함과 빈곤, 편리함과 불편한 삶의 경계가 무엇인지 드넓은 호수에 묻게 됩니다. 소로우가 살았던 맑고 고요한 월든 호수를 걸으며 법정스님은 호수에게 무엇을 물었을까요. 삶의 그 무엇을.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