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수사 논란부터 항명파동까지…일부선 “성역 없는 수사 보여주려 TF 무리하게 만들어” 비판도
문 총장 입장에서 다행이라면, 수사단이 고발인 측의 고발장을 대필해줬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옹호론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문 총장을 중심으로 다시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조성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문무일 총장이 TF만 찾다가 스스로 무덤을 팠다, 문 총장 책임도 있다”는 비판도 여전하다.
들불상을 수상한 서지현 검사. 연합뉴스
문무일 총장은 서지현 검사가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을 폭로하자, 곧바로 내부 TF를 꾸리는 해결책을 선택했다. 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사법연수원 19기)을 단장으로 하는 검찰 성추행조사단을 출범시켰다. 조사단은 안태근 전 검사장과 성추행 부장검사 김 아무개 씨 등 7명을 재판에 넘기는 성과를 냈다. 1월 31일 조사단이 출범한 지 85일 만에 나온 결과였다.
하지만 과정은 ‘빈틈’ 투성이었다. 조사단은 안 전 검사장이 지난 2010년 10월 서 검사를 성추행한 이후 2015년 8월 통영지청으로 발령 내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려 했지만, 대검에서 한 차례 반려됐다. 수사 과정이 부실했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조사단은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다.
불구속 기소로 사건이 마무리되자, 서지현 검사는 부실 수사라고 즉각 반발했다. 서 검사는 입장 자료와 국회 발언 등에서 “조사단 명칭에서 보듯 처음부터 직권남용에 대한 수사 의지는 없었다“며 ”사무 감사와 인사를 활용한 직권남용 문제는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들이 맡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서 검사의 지적을 놓고 ‘반만 맞는 얘기’라고 진단한다. 특수수사 경험이 없다시피한 검사들로 수사팀을 꾸린 것은 맞지만, 수사 자체가 성과를 낼 수 없는 사안이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장검사는 “이번 사건의 진짜 잘못은 안 전 검사장에 대한 영장 청구가 불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알면서도 억지로 TF 형식의 수사단을 꾸린 것”이라며 “수사단에 법무부 검찰국 인사 업무를 제대로 해 본 검사도 없지 않냐. 당연히 불구속 기소가 예상됐고, 그런 결정에 반발할 것이 분명한 서지현 검사의 반응까지 모두 예상 가능했던 시나리오”라고 비판했다.
# 변호사 법조 로비 사건 화력 집중했지만…
문무일 총장은 그 후에도 검찰 내 화력 집중 카드를 꺼내들었다. 최인호 변호사(사법연수원 25기)의 전방위 법조 로비 의혹도 그랬다. 문 총장은 횡령·탈세 등 혐의를 받던 최인호 변호사가 과거 검찰 내 인맥을 통해 봐주기 수사를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이두봉) 소속 특수통 손영배 부장검사(사법연수원 28기)를 투입하는 등 총 10명의 검사로 수사를 확대했다. 검사 10명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2개 부서 수준의 엄청난 규모다.
하지만 수사 결과는 미흡했다. 현직 검사의 수사기록 유출과 수사관의 금품수수 정황이 드러나는 등 대형게이트로 번질 조짐을 보였지만, 이름이 거론되던 대형 법조인 등 로비의 실체는 전혀 규명하지 못한 채 현직 평검사 2명의 불구속 기소로 마무리됐다. 현직 검사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지나치다’는 말이 나왔고, 억지로 성과를 내려고 하는 수사팀을 조롱하는 글이 검사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돌았다.
사건 흐름에 정통한 검찰 관계자는 “원래 몇몇 법조인 이름이 최 변호사 입에서 나왔다는 얘기는 있었지만, 누가 들어도 친분이 있기 어려운 사이가 맞고, 그런 점을 감안할 때 최 변호사가 혼자 ‘거짓 친분을 꾸며냈다’고 보는 게 적절했다”며 “수사단을 확충하기 전에 사건이 어디까지 성과를 낼 수 있을지를 먼저 확인하고 화력 집중 카드를 꺼내들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안미현 검사가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강원랜드 수사단, 문 총장과 불협화음 끝에 ‘항명’
문 총장은 그럼에도 검사 폭로 사건이 터질 때마다 TF를 선택했다. 그 정점이 바로 강원랜드 수사단이었다. 강원랜드 부정채용 의혹을 수사하던 안미현 검사가 ‘수사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하자, 문무일 총장은 양부남 광주지검장(사법연수원 22기)을 단장으로 하는 ‘TF 수사단 구성’을 결정했다.
한창 수사가 진행되던 지난 15일, 안 검사는 갑작스레 기자회견을 자청한 뒤 “강원랜드 취업비리 수사과정에서 정치권의 외압이 있었고, 대검 반부패부와 전·현직 검찰총장이 개입돼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단장인 양부남 검사장은 “검찰총장이 지휘권 행사를 하지 않겠다는 당초 약속과 달리 권성동 의원 구속영장 청구를 지연시키고 현직 검사장 등에 대한 기소여부 결정과정에 개입했다”고 밝히며 문 총장에게 대놓고 항명했다. 김우현 대검 반부패부장 등 검사장 2명에 대한 기소를 주장했는데, 문 총장이 방해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외부 법조인으로 꾸려진 전문수사자문단의 회의 결과는 일방적이었다. 7명으로 꾸려진 자문단은 회의를 통해 7 대 0, 전원 일치 의견으로 김우현 대검 반부패부장 기소는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문무일 총장과 대검찰청의 손을 들어준 셈이었다.
항명 파동을 그렇게 마무리됐지만, 별도의 수사단을 꾸린 선택에는 여전히 비판이 뒤따른다. 한 검사장은 “일선 부서에서 맡겨도 될 사건을 억지로 TF로 꾸려서 수사를 하다보니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 하는 수사단이 무리를 하게 된 것”이라며 “더 좋은 인력으로 꾸리는 게 아니라면 일선 부서보다 수사를 더 잘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외부에 ‘성역없이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TF를 무리하게 만들어 대응하다보니 발생한 사고”라고 지적한다.
수사단장 자리에 검사장 급 인사들이 앉아있는 것도 이런 문제를 야기했다는 비판이다. 한 차장검사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청와대의 신임을 받는지 확실하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차기 검찰총장을 노리는 검사장들이 무리하게 수사를 키우다가 대검과 부딪히게 된 구조로 봐야 한다“며 ”당연히 수사단 입장에서는 언론은 물론, 청와대도 주목하는 사건을 통해 성과를 내려 할 수밖에 없지 않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무리하게 TF를 꾸린 것은 문 총장이다, 지금 혼란스런 분위기는 문 총장 책임도 상당하다“고 비판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 그럼에도 문무일 총장에게는 기회?
하지만 분위기는 오히려 문 총장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기세다. 항명 파동을 일으켰던 강원랜드 수사단이 애초 이 수사를 시작할 무렵 김수남 전 검찰총장 등 검찰 고위간부 등에 대한 추가 고발장을 스스로 만들었다는 사실까지 알려졌기 때문.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은 지난 2월 중순,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 김순환 사무총장을 고발인 신분으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고발인에게 추가 고발장 작성을 제안했고, 고발인인 김 사무총장이 ”집에 가서 쓰겠다“고 했지만 수사를 맡은 수사관은 ”오신 김에 내는 게 어떠냐. 대신 써주겠다“고 말하면서 추가 고발장을 대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한 부장검사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수사단이 얼마나 객관성을 잃고 사건에 임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그는 ”원래 문 총장의 잇따른 결정에 무게감이 없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그래도 문 총장 체제에서 흔들리는 검찰을 다시 다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지금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검찰이 더 하나로 뭉치는 분위기“라고 평가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