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당 연봉 절반 이상 후려쳐…룰 어기는 일 밥먹듯, 비리 다 드러난 것 아니다”
―어떤 연유로 당시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 이장석 대표를 알게 됐는지 궁금하다.
“호서대 경영대학 박사 과정 시절, 현대 유니콘스 매각으로 프로야구가 위기를 맞이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대학원장이 사람을 소개시켜주겠다고 했고 그 자리에 이장석 전 대표와 남궁종환 전 이사가 나타났다. 이장석은 2007년 5월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를 창업했고 야구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자신을 소개하더라. 재산이 많고 인맥이 좋으며, 특히 베트남 경마장, 일본 세이브 그룹과 수조 원대의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야구단 운영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하는 상황을 설명했고 최소한 자기 돈을 투자하거나 펀딩을 받으면 야구단을 운영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박 교수는 현대 유니콘스와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그런데 왜 팀 해체와 인수에 관심을 갖게 된 건가.
“공교롭게 지금은 고인이 되신 신상우 KBO 총재와 하일성 사무총장이 내게 도와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내가 정·재계에 걸쳐 두루 발이 넓으니 야구단 인수에 나설 만한 기업을 찾아달라는 내용이었다. 그걸 항상 염두에 뒀기 때문에 이장석의 출현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히어로즈 창단 당시 ‘일요신문’과의 인터뷰를 가진 박노준 교수
“KBO 수뇌부는 130억 원에 달하는 KBO의 야구발전기금으로 현대 유니콘스를 2007시즌에 참여시켜 8개 구단 체제를 유지했기 때문에 2008시즌은 하루 빨리 인수자를 찾아야 하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때 이장석이 나타난 것이다. 이장석도 처음에는 인수 비용과 수익 구조를 놓고 고민하다가 자신 없어 했다. 그때 내가 이장석에게 네이밍 스폰서를 제안했다. 네이밍 마케팅과 TV 중계권, 입장 수입 등을 포함하면 흑자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장석에게 야구단 사업을 권유했던 건 KBO가 2007년에 8개 구단 유지를 위해 현대 유니콘스에 130억을 지원하며 없앤 돈을 확보할 수 있고 8개 구단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KT에서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하지 않았나.
“KBO 수뇌부가 나와 이장석을 ‘보험용’으로 본 처사였다. 이미 다른 채널로 KT와 인수 협상을 벌였고 유니폼까지 마련하는 등 인수 준비를 해온 걸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2007년 12월 29일 KT가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KBO와 이장석의 협상은 백지화됐다. 당시 이장석의 반발이 거셌다. 하일성 총장의 해명을 들으려고 연락했지만 하 총장은 미안함 때문인지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마디로 이장석에게 KBO가 실수한 부분이었다. KT라는 대기업이 인수하게 됐다고 발표 하루 전에만 얘길 해줬어도 그렇게 화가 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KT가 다시 인수를 포기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다시 KBO 관계자들이 날 찾기 시작하더라. 제주도에 있던 나를 만나러 오겠다며 신상우 총재랑 하일성 총장이 계속 연락했다. 나중에 내가 서울로 올라가서 그들을 만났고 이후 이장석을 설득했다. 2008년 1월 15일 광화문 파이낸스빌딩에 있는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 사무실에서 나, 이장석, 하일성 총장, 이상일 사무차장이 만났고 이장석이 계약서에 사인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이장석이 돌발 제안을 했다.”
―어떤 제안이었나.
“원래 가입금이 131억 원이었다. 그런데 계약서에 사인을 하려던 이장석이 사인하기 전에 할 말이 있다면서 가입금을 깎아 달라고 했다. KBO에서 자신과 인수 협상을 벌이다 KT에 팀을 맡기겠다며 신뢰를 저버렸으니 131억 원의 가입금을 120억 원으로 수정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걸 안 받아주면 팀 인수를 하지 않겠다고 강경하게 나왔다. 이장석의 그 얘기는 사전에 나와 상의되지 않은 내용이라 나도 깜짝 놀랐다. 하 총장은 이장석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 이상일 사무차장도 있었기에 이 부분은 확인 가능하다. 어느 기업도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하겠다고 나서지 않은 상황에서 8개 구단으로 리그를 운영하려면 이장석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시기도 촉박했다. 2008년 1월 15일에 계약을 하려 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새로운 팀을 만들어 시즌을 준비하기가 어려웠다. 그때 이장석은 120억 원을 일시 납부하지 않고 2년에 걸쳐 분납하겠다고 설명했다. 순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장석은 내게 돈이 많다고 주장했지만 어쩌면 가입금 120억 원을 갖고 있지 않을 거란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이 전 대표한테 자금이 많지 않다는 걸 그때부터 인식했던 건가.
“잠정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팀 인수 결정 후 목동야구장 시설공사를 포함해, 사무실 인테리어 등을 하는 과정에서 결제가 제대로 안 됐고, 야구공이나 방망이, 유니폼 등을 구입해야 하는데도 돈이 나오지 않았다. 당시 언론과 야구계에선 근본을 알 수 없는 회사가 야구계에 진입한 데 대해 의구심이 커 내가 두 가지 의미를 두고 KBO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물론 이장석과 상의 후 진행한 것이다. 첫째 히어로즈는 향후 5년간 절대 트레이드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장석이 선수 팔아 구단 운영하려는 것을 원천봉쇄 함과 동시에 나머지 7개 구단에는 선수 빼 갈 생각을 하지 말아 달라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둘째 이장석에게 120억 원을 어떻게든 마련해 가입금을 내야 한다는 마지막 통첩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장석과 모 구단들 사이에 시즌 후 현금 트레이드를 하기로 이미 약속돼 있었다는 게 나중에 밝혀졌다.”
우리히어로즈프로야구단 창단식에서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 이장석 대표가 박노준 단장에게 구단기를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7년 현대 선수단의 연봉이 69억 8000만 원이었다. 그런데 이장석은 2008시즌을 앞두고 내게 32억 원선에서 해결해 달라고 말했다. 창단 초기라 운영 자금이 많이 필요하다는 이장석의 입장도 이해가 됐다. 연봉 협상을 앞두고 선수단의 고참급 선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구단 상황을 설명했다. 운영 자금 부족으로 시즌 후 모두 인센티브로 보전해 줄 테니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해달라고 말했고, 선수단은 구단의 제안을 수용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당시 선수단은 전원 고용승계를 원했는데 전체 고용 승계만 되지 않았다면 고액 연봉자들의 연봉이 덜 깎였을 것이다. 신인 선수들 계약금도 제때 지급하지 못했다. 선수 부모들은 계약금 달라고 운영본부장에게 항의하고 운영본부장은 내게 하소연하고 내가 이 전 대표에게 계약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하면 돈이 없다는 말만 하고. 이 전 대표가 약속한 계약금 지급 날짜를 몇 차례 연기하면서 난 또다시 욕을 먹어야만 했다. 히어로즈 단장으로 10개월가량 일하면서 세 차례나 보따리를 쌌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결국 단장직에서 물러나게 됐는데.
“더 있다가는 내 명에 못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딴소리를 하는 이장석과 싸우는 게 힘들었다. 무엇보다 이장석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었다. 이장석도 사사건건 반대만 일삼는 나를 눈엣가시처럼 여겼을 것이다. 내가 반대를 했던 건 정도와 이치에 맞지 않고 불법적인 행태를 묵인하고 사인하면 내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10개월간 어려운 상황에서도 참고 견딘 건 8개 구단 체제를 지켜 프로야구 판이 깨지는 걸 막아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이장석은 회계, 세무, 마케팅에 무지했고 단 1원이라도 입출금은 사인과 증빙자료가 남아야 하는데 그에 대한 상식이 전혀 없었다. 나한테 지급해야 할 월급이나 판공비를 자꾸 미루고 지급하지 않으면서 내가 스스로 단장직에서 물러나길 바랐다. 결국 팀을 나오게 됐는데 이장석은 이후 나에 대해 음해성 소문을 퍼트렸다. 개인 이익만을 위해 자신과 싸운 단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올 정도였다.”
박노준 교수는 이장석 전 대표 관련된 비리는 아직 다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최근 이장석이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선수 장사했다는 게 사실로 드러났다. 히어로즈 구단의 전권을 장악한 이장석이 야구단을 운영하며 룰을 어기는 일을 밥 먹듯이 했는데 많은 내용들이 세상에 다 알려지지 않았다. 또 어떤 기막히고 황당한 일들이 터질지 모를 일”이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