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부터 친인척 재산까지 수집…한국당 “명백한 표적 사찰” 주장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박은숙 기자
얼마 전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김병준 위원장 사생활이 담긴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에 따르면 보고서 내용은 김 위원장과 한 사업가가 부적절한 ‘스폰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아직 ‘팩트’라고 단정 지을 순 없겠지만 석연치 않은 구석들이 많아 사실관계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보고서를 만들었다”면서 “정식 수사 직전 단계로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지금은 첩보 수준이지만 향후 김 위원장에 대한 수사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사정기관에선 김 위원장 가족과 친인척들 재산, 취업 현황 등을 수집해 분석한 보고서가 만들어졌다. 김 위원장과 주변을 광범위하게 훑은 자료들이 모아진 셈이다. 첩보 수준까진 아니지만 김 위원의 정치적 행보와 관련된 소위 ‘동향 정보’가 최근 여의도를 중심으로 돌아 화제가 됐는데, 그 출처가 특정 사정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 한 의원은 “제1야당 대표에 대한 명백한 표적 사찰”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의원들은 “사정기관의 일상적인 정보활동”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정치적으로 비중 있는 인물과 관련해 여러 의혹과 소문들이 들리는데, 사정기관이 이를 모른 체하는 것은 오히려 업무 소홀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민주당 의원도 “특정 정치인을 표적으로 사찰한다는 것은 현 정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반응이 우세하다. 문재인 정부는 사정기관의 정치 동향 보고를 최대한 자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립을 지켜야 할 사정기관들이 지나치게 정치화됐다는 문제 인식 때문이었다. 그동안 정치 동향 보고로 여러 번 도마에 올랐던 국정원과 검찰이 주요 대상이었다. 국정원은 정치 분야를 포함한 국내 정보 수집 부서를 폐지하기도 했다. 국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사정기관 관계자들 모습은 현 정권 들어 자취를 감췄다.
또 김 위원장 첩보는 소문이나 의혹을 확인하기 위한 차원이 아닌 적극적인 자료 수집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설령 이러한 얘기가 정치권에서 먼저 나왔다 하더라도 사정기관이 제1야당 대표를 상대로 첩보를 생산한다는 것은 이례적일 뿐 아니라 민감한 사안이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정기관 일선 직원들이 야당, 그것도 제1야당 대표와 관련된 첩보 보고서를 쓴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윗선에서 지시를 했거나, 아니면 어떤 시그널을 줬을 것이다. 예를 들면 ‘누가 요즘 이런 얘기가 있는데 한번 알아봐라’는 식으로 흘렸을 수 있다는 얘기다. 어찌됐건 사정기관의 독단적인 업무는 아니라고 보면 될 것이다. 제1야당 대표 정도 되면 통상 뒤에 청와대가 있을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더군다나 현 정권에선 정치 정보 생산을 금지했는데 이런 내용의 보고서가 청와대 모르게 만들어질 수 있겠느냐.”
청와대 민정수석실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도 “검찰 등 사정기관들은 정치적으로 예민한 조직이다. 청와대나 정권 실세들이 어떤 정보를 필요로 하는지 눈치껏 알아서 보고하는 일이 많다”면서 “김 위원장 보고서도 그 연장선상에서 보면 될 것이다. 여권 어딘가에서 김 위원장 첩보를 원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니면 누군가가 직접 ‘오더’를 내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선 친문 인사로 통하는 사정당국의 한 고위 인사가 김 위원장을 향한 일련의 사정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앞서의 자유한국당 의원은 “현 정권 실세 중 한 명으로 통하는 그 인사가 작심하고 김 위원장을 파고 있다는 제보를 사정기관 내부에서 확보했다. 김 위원장 취임 때 터졌던 골프 접대 사건 역시 그쪽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추가로 확인을 거쳐 10월 국정감사 때 문제를 삼을 예정”이라고 털어놨다.
정치권에선 여권 핵심부가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김 위원장을 타깃으로 정한 데엔 여러 배경이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우선, 김 위원장을 괘씸해하는 친문 진영 기류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김 위원장은 한땐 친노 인사였지만 지금은 민주당과 대척점에 서 있는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이다. 김 위원장 취임 당시 일부 친문 의원들은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낸 바 있다.
정치적 의도를 거론하는 의원들도 있었다. 끝 모르게 추락하던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김 위원장 취임 후 완만한 회복세를 나타냈다. 반면, 승승장구하던 민주당 지지율은 하락 중이다. 자유한국당의 또 다른 의원은 “한국당 지지율은 밑바닥을 찍었다. 고질적 병폐였던 계파에서 자유로운 김 위원장 발탁이 신의 한수였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여권이 김 위원장을 흠집 내기 위한 자료를 모으고 있다는 것은 모종의 노림수가 깔려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