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무난한 평가 가운데 ‘김병준 흔들기’…바른미래 “기간 짧아 아쉬워”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6‧13지방선거 참패 후 쇄신과 재기를 위해 비대위를 꾸렸다. 사진은 김동철 바른미래당 비대위원장과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대위원장. 연합뉴스
지난 7월 24일에 공식 출범한 한국당의 ‘김병준 혁신비대위’. 목표는 당 노선의 재정립과 보수 좌표의 재설정, 이념적 지형 확장이었다.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는 내년 1월로 예정돼 있어 그전까지 약 6개월간 활동할 수 있으나, 2020년 21대 총선과는 거리가 멀어 인적 청산을 감행할 수 있는 직접적인 권한은 없었다.
김 위원장은 한국당 전국위원회에서 의결된 직후 모호한 행보를 보였다. 보수의 색을 재정립하겠다던 그가 봉하마을을 방문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자 “지나친 좌클릭 아니냐”는 당내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한국당의 고질적인 문제인 친박-비박 간 계파싸움을 불식시키기 위해 당내 의원 순회면담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소 독선적이라고 평가받던 홍준표 전 대표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또한, 자극적인 언행을 자제해오며 지난 ‘홍준표 체제’의 색깔을 지우는 데에 애쓰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네이밍 전략’을 통해 문재인 정부에 프레임을 씌우기 시작했다. 바로 ‘국가주의’ 논쟁이었다. 홍 대표가 내세우던 ‘위장평화쇼’는 당시 평화 국면에서 여론에 반하는 전략으로 비난을 많이 받았지만, 국가주의는 당 내에서도 호평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제1 보수야당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보수의 색채를 또렷하게 하는 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광복절을 맞아 정부‧여당 역사관을 정면으로 겨냥하며 건국절은 1919년이 아니라 1948년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결집을 위해 ‘북한산석탄수입의혹규명특별위원회’를 꾸리기도 했고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공격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폐지를 요구했다. 최근에는 종부세, 국민연금 논란, 최저임금 인상 등을 거론하며 연일 공세에 나서고 있다. 그간 부족한 점으로는 뚜렷한 정책과 비전 제시가 없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비판에 열을 올리는 데에만 집중했을 뿐 정작 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선 고민이 없었다는 것이다.
당내 의원들은 대체로 비대위에 대해 후한 평가를 내렸다. 비박계 강석호 의원은 “비대위가 생기며 계파 싸움이 멈췄다. 의원들 간의 이견들을 좁힐 수 있는 노력들을 하고 있다”며 “김 위원장이 아니었으면 우리 당은 또 망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그 중간적 역할을 잘 해줬고 대여전략도 잘 썼다”고 말했다. 친박계 김태흠 의원도 “잘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문제를 찾으려 하는데, 김 위원장에게 비판을 세게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 대체 어디 있겠는가”라며 “지금은 설계 단계다. 일각에선 왜 완성된 것(정책 등)이 없냐고 하는데, 아직 주춧돌을 놓는 단계에서 뭘 내놓을 수 있겠냐. 앞으로 설계를 하며 다같이 하나가 돼야 한다. 같이 재정립하고 노선을 정해야 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선 한국당 내 차기 지도부를 꿈꾸는 이들이 ‘김병준 흔들기’를 시작했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전당대회가 아직 5개월이나 남은 상황에서 당대표 출마를 위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고, 일부는 김 위원장을 무시하며 존재감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후문이었다. 여기에 한 한국당 관계자는 “아예 없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면서도 “딱히 흔든다기보단 성과가 안 나오니 (자극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김 위원을 무시하는 것보단, 김 위원장에게 정치적 무게가 있으니 이를 견제하는 것”이라며 “(김 위원장의) 리더십이 확보되는 순간 당권에 욕심을 내는 이들이 자신의 자리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아울러 전 평론가는 “김병준 체제에서 한국당은 더 이상 추락하지 않고 일단 하향세는 꺾인 상황이다. 앞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첫째로 당 내부 혁신방향에 대해 합의와 적극적인 실천을 이끌어내야 하고, 둘째는 국민의 마음을 열어 뿌리 깊게 박힌 실망감을 없애줘야 한다”며 “다만, 잠재돼 있는 불안요인은 홍준표 전 대표의 귀국인데 그가 돌아오면 당은 매우 혼란스러워질 가능성이 있다. 당을 수습하기보다는 분란을 자초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는 홍 전 대표의 귀환과 그의 정치활동이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당처럼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바른미래당 역시 비대위 체제로 운영 중이다. 바른미래당은 지방선거가 끝난 이튿날 김동철 원내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고 현재 비대위 활동 기간은 두 달을 넘어섰다. 활동 종료는 전당대회가 열리는 9월 2일이다. 바른미래당은 창당 때부터 바른정당과 국민의당계의 갈등으로 오랜 기간 내홍을 겪어 왔다. 때문에 지방선거 참패 수습을 위해 출범한 비대위에게 주어진 과제는 많았다.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출신 의원‧원외인사‧당직자들 간의 화학적 결합은 물론, ‘개혁보수와 합리적 진보’라는 정체성도 재정립해야 했다.
비대위 체제 출범 첫째 주, 김동철 비대위원장은 “당 전체가 개혁보수일 수는 없을 것”이라며 뼈있는 말을 던졌다. 대표직 사퇴의 변에서 ‘보수’를 강조하며 개혁보수 정체성을 못 박은 유승민 전 공동대표를 향해 던진 일종의 ‘기싸움’과도 같았다. 그리고 미래당은 당 정체성 확립을 위해 1박2일간 의원 전체 워크숍을 가졌다. 그렇게 첫 단추는 끼워졌다.
하지만 두 번째 단추부터 당의 정체성 또는 이념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오로지 야당으로서의 ‘문재인 정부 공격’만 있을 뿐이었다. 비대위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폐지를 요구하는 동시에 최저임금 인상에 온도차를 보였다. 물론 미래당이 거대 양당을 견제하는 역할을 전혀 안한 것은 아니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국회의 특활비 전면 폐지를 주장하며 민주당과 한국당 사이에서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이는 원내대표보다는 비대위에서 선제적으로 주도해야 했다는 아쉬움도 나온다. 비대위는 출범 두 달 뒤 청와대의 특활비 폐지를 요구하는 정도에서만 그쳤을 뿐이다.
이후에도 청와대의 각종 정책을 비판하는 동시에 장관의 교체를 요구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 이상의 개혁 또는 쇄신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 내에서도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비대위원장이 선출직도 아니고 임기가 너무 짧다보니 아쉬운 면이 있을 수밖에 없다. 비대위가 사실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지방선거 참패 수습 정도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도 “수습을 잘했느냐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글쎄 반반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도 한국당처럼 전당대회를 미뤘어야 했다. 비대위 기간을 늘려서라도 비대위가 힘을 얻고, 전당대회가 국민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동력이 생길까 싶다”며 “물론 비대위가 수고는 했으나, 겉으로는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출신 의원들의 갈등이 수습된 것 같지만 내부적으로는 여전하다. 다음 지도부가 화합을 위해 잘해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앞서의 전계완 평론가는 “바른미래당의 비대위는 한국당의 비대위와는 엄연히 다르다. 바른미래당의 비대위는 ‘실권’ 비대위가 아니라 새로운 전당대회를 통해 지도부를 만들기 위한 중간과정일 뿐이다. 때문에 힘이 실릴 수가 없었고, 역할을 한다고 한들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는 게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비대위를 평가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뽑힐 새로운 지도부가 어떻게 당을 수습해 나가는지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