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령 개정 이유 면허심사 지연돼 투자금만 축나…“시장진입 자체 막는 꼴” 지적
항공업계에 따르면 국토부는 지난 8일 ‘항공운송사업 신규 면허 심사 추진계획’에서 항공사업법 하위법령 개정 중 자본금 요건을 150억 원 이상으로 유지하는 안을 확정했다. 대신 국토부는 사업계획서상 항공기 보유 대수를 3대에서 5대로 늘린다는 방침을 정했다.
국토부는 올해 초만 해도 항공운송사업 신규 사업자의 재무안정성을 위해 자본금 300억 원 이상을 면허기준으로 하는 시행령 개정 후 심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국토부는 지난 5월 30일 면허신청을 낸 플라이강원에 “자본금 기준을 강화한 시행령이 개정되면 면허신청을 다시 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 17일 국토부에 항공운송면허 신청서를 제출한 에어로케이에 대한 면허 심사도 면허기준 개정 미완료로 진행하지 않고 있다.
저비용항공사(LCC)가 실적 고공행진에 이은 노선 확대에 나서면서 탑승장 운항정보 모니터에 LCC 여객기 정보가 눈에 띌 정도로 많아졌다. 연합뉴스
국토부 계획은 현재 진행 중인 항공사업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면허기준 개정을 10월 중 완료해 오는 11월부터 면허 심사에 착수한다는 것이지만, LCC 시장 진입을 노리는 신규 사업자들 우려는 여전하다. 앞서 국토부가 면허 심사를 계속 미뤄온 탓이다. 지난 6월 ‘7월 중 완료 예정’을 밝힌 국토부는 7월이 되자 다시 ‘8월 중 완료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김정렬 국토부 차관은 지난 7월 23일 국회서 “면허기준을 개정하고 10월까지 면허 허가 여부를 결정짓도록 하겠다”고 말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국토부 항공산업과 관계자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항공운송사업을 한진그룹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독과점하고 있는 산업으로 분류해 면허 신청 요건 하향 필요성을 지적한 데 따라 자본금 요건을 다시 150억 원으로 낮추기로 했다”면서 “10월 중 항공사업법 개정안을 공포, 11월부터 면허 심사에 착수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공정위 시장구조개선과 관계자는 “입법예고 때부터 면허기준을 개정해 진입 장벽을 높이는 데 반대해 왔다”면서 “국토부가 공정위 측 의견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혀온 것은 반길 일이지만, 법제처 심사도 가지 않은 만큼 10월 중 처리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항공사업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은 10월 초 관계부처 합의를 마친 상태로 규제 심사와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심의, 국무회의 심의 등 절차가 남아 있다.
플라이강원, 에어로케이, 에어프레미아, 에어대구 등 4곳 신규 사업자가 올해 국토부에 항공운송사업 면허 신청을 낸다는 계획이다. 일요신문
문제는 오는 11월 면허 심사를 시작한다 해도 내년 1분기는 지나야 면허 발급이 가능하다는 데 있다. 국토부가 자본금 요건은 그대로 두는 대신 면허신청 처리기한(심사기간)을 25일에서 90일로 늘리는 안을 확정한다는 계획을 정한 탓이다. 오는 11월 1일부터 영업일 기준 90일 후는 내년 3월 말이다. 여기에 국토부가 심사 중 의견청취 기간 10일과 문서 보완 등에 소요되는 기간은 심사기간에서 제한다고 밝힌 만큼 면허 발급 여부는 4월이 지나야 알 수 있다.
면허를 받는다고 끝이 아니다. 면허를 받은 신규 사업자는 운항증명(AOC)을 취득해야 한다. AOC 승인에는 다시 90일이 걸린다. 항공운송사업 신규 사업자는 항공서비스 지역마다 AOC 승인을 받아야 하므로 신규 사업자가 정식으로 서비스를 하려면 내년 하반기는 돼야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LCC 시장 진출을 고려하는 신규 사업자 부담만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2016년 4월과 2016년 5월 각각 설립한 플라이강원과 에어로케이는 지난해까지 총 92억 3844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국토부가 올해 면허기준 개정을 이유로 면허신청을 받고도 심사에 나서지 않고 있는 데 따라 면허 신청을 앞둔 에어프레미아 등 신규 사업자가 부담한 누적 적자는 약 200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LCC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인 한 업체 관계자는 “투자받은 자본금만 축내는 상황이다. 국토부는 언제나 확답 없이 곧 된다고 기다리라고만 하는데, 이미 10월이다”면서 “인건비는 물론 항공기 가계약도 전면 조정할 수밖에 없어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토부가 면허 발급을 두고 갑질을 하고 있다”면서 “국토부가 왜 신규 사업자가 시장 진입 후 기존 사업자들과 시장 경쟁으로 겪을 장벽을 미리 만드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신규 사업자가 국토부에 막혀 있는 사이 시장 진입 장벽은 더 높아지고 있다. 플라이강원과 에어로케이가 기반을 두고 있는 양양국제공항과 청주국제공항의 국제선 노선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양양국제공항은 지난해 10월 3개 노선에 불과했던 국제선 노선이 10월 기준 6개로 두 배 늘었다. 같은 기간 청주국제공항 해외 정기노선은 6개에서 13곳으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
국토부는 현행 항공사업법에 따라 면허 심사를 진행할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신규 사업자 재무안정성 취약 우려를 지적한 면허자문회의로부터 올해 항공사업법 개정 후 면허 심사를 진행하라는 권고를 받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국토부는 이미 자본금 요건을 변경하지 않기로 정했다. 이에 대해 오성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시행령 개정이 늦어지면 개정과 면허 심사를 별개로 진행하는 게 맞다”면서 “현행법대로 진행하지 않은 행정 거부에 대해 거부 취소 소송 제기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