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피해자 코스프레에 이용당해” vs “발빠른 대처로 사태 확산 막아”
방탄소년단. 사진=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러나 국내에서는 “전쟁 피해 국가가 가해 국가에 사과하면서 오히려 모양이 안 좋아졌다”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이들의 단순한 ‘입장문’이 일본에 대한 ‘사죄문’으로 뒤바뀌어 일본 국내에서 보도되면서 모양새가 다소 이상해졌다는 비판이었다. 특히, 일본이 패전 후 자신들 역시 전쟁의 피해자였다고 주장하는 데 이용하는 사안을 그대로 받아들여 이에 사과의 뜻을 밝혔다는 부분에서 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에 맞서 다른 한편에서는 “이미 일본 내에서 방탄소년단의 사안을 시작으로 혐한, 우익단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현재 일본 내 한류의 한 축을 담당하는 트와이스에게도 출연 배제 이야기가 나왔다”라며 “더 이상 일본이 핑계삼지 않도록 정확하게 입장을 밝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을 것”이라는 옹호의 목소리도 높다. 실제로, 일본 연예가는 방탄소년단에 대해 문제를 삼기 시작한 시점과 거의 동시에 트와이스에 대해서도 주요 음악 프로그램에서 배제시킬 의향이 있다고 밝혀 왔던 바 있다. 오히려 발 빠른 입장문으로 사건이 더 크게 번질 수 있는 가능성을 막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일본 매체의 ‘방탄소년단 때리기’가 시작된 것은 지난 8일부터의 일이다. 방탄소년단의 멤버 지민이 입은 광복절 기념 티셔츠가 일본 내에서 문제가 되면서 TV아사히가 이미 예정돼 있던 방탄소년단의 ‘뮤직스테이션’ 출연을 취소한 것이 계기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NHK의 연말 가요 축제인 ‘홍백가합전’, 후지TV의 ‘FNS가요제’ 출연도 잠정적으로 보류됐다.
지민이 입은 광복절 기념 티셔츠에는 1945년 8월 15일 나가사키‧히로시마 원폭 투하 사진이 프린트 돼 있다. 이 직후 한국이 독립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해 그 옆에는 한국인들이 만세를 부르는 사진이 함께 프린트 됐다. 이와 더불어 ‘애국심’ ‘우리의 역사’ ‘해방 대한민국’이라는 영어 단어가 반복해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방탄소년단의 멤버 지민이 지난해 다큐멘터리 촬영 중 착용했던 티셔츠. 일본에 원폭이 투하된 사진이 프린트 돼 있다. 사진=아워히스토리 제공
문제는 지민이 입은 티셔츠가 처음 공개됐던 것은 이미 1년 전의 일이라는 데 있다. 더욱이 이 티셔츠를 입고 공식 석상에 오른 것도 아니다. 지난해 유튜브 다큐멘터리 영상 촬영 당시에 착용하고 있었을 따름이다. 그마저도 2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노출됐던 것이다. 심지어 같이 비난의 대상이 된 RM의 글은 2013년에 올린 글이다.
이와 관련해 한 한국 주재 일본 매체 기자 K 씨는 “1년 전 입었다는 방탄소년단의 티셔츠가 이달 초 갑자기 과격 우익파들 사이에서 ‘반일 문제’로 변해 구체적으로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RM의 광복절 SNS 글도 큰 문제로 비화된 적은 없었는데 갑자기 같은 시기에 부각되고 있다”라며 “이런 점을 놓고 본다면 지난달 강제징용 피해자 손배소 결과에 반발하는 일본 내 우익세력이 방탄소년단을 희생양 삼아 혐한 감정에 불을 붙이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짚었다.
그러나 보도 양상과는 달리, 일본 내에서는 실제 이 문제에 대해 크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또 다른 일본 매체 기자 T 씨는 “일본에서는 혐한 기사를 쓰면 일단 잘 팔리니까 일을 부풀리는 감이 있다”라며 “우익단체가 혐한 시위를 한다거나 하는 것도 사실 일본 내에선 주류 의견으로 보지 않는다. 그걸 정치권이 이용한다면 다른 이야기지만 사실 이렇게 큰 문제로 비화될 건 아니었다. (한류에) 타격도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결국 방탄소년단 측은 공식 입장문을 내고 사과 의사를 밝혔다. 단순히 ‘광복절 티셔츠’나 ‘반일’만이 아니라, 멤버들이 독일 나치 문장이 찍힌 모자를 착용했거나 공연에서 나치를 연상하는 깃발을 흔들었다는 문제까지 제기되면서 침묵을 지키기 어렵다는 판단이 섰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 건은 유대인 인권단체 지몬 비젠탈 센터(Simon Wiesenthal Center)에서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고, 일본 매체는 이들의 입장을 이용해 방탄소년단에 강도 높은 비난을 가해 왔다.
지난 13일 밤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당사 소속 모든 아티스트들의 활동에 있어 나치를 포함한 모든 전체주의, 극단적 정치적 성향을 띤 모든 단체 및 조직을 지지하지 않고 이에 반대하며, 이러한 단체들과의 연계를 통해 과거 역사로 인해 피해를 입으신 분들께 상처를 드릴 의도가 전혀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일본이 가장 문제 삼은 ‘나가사키·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해자’ 관련해서는 “원폭 피해자 분들께 상처를 드릴 목적으로 제작된 의상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음에도, 당사가 사전에 충분한 검수를 못하여 당사의 아티스트가 착용하게 됨으로 인해 원폭 피해자 분들께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드릴 수 있었다”고 사과했다.
입장문의 내용만 보면 일본에 대한 사과가 아닌, 원폭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일본인과 당시 일본에 거주하고 있던 한국인 피해자 양 측에게 향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일본의 나가사키·히로시마 원폭 투하는 일본이 자신들을 ‘패전국’이 아닌 ‘전쟁의 피해자’로 주장할 때 가장 주요한 근거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이 부분에 사과 의사를 밝힌 빅히트 측에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유대인과 일본을 한데 묶어 사과가 이뤄짐에 따라, 양 측이 모두 전쟁 피해자로 외부에 인식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2차 세계대전 나치에 의해 전쟁 피해자였던 유대인들의 주장과 전쟁 가해자인 일본 제국주의는 그 성격이 다르다. 일본은 오랜 기간 국제사회에 2차 세계대전 전범국가 가해자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원폭 피해국가로서 이미지만 부각해서 적극적으로 해외 홍보를 해 왔다”며 “전쟁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이미지만 악용하는 일본에서 이번 방탄소년단 이슈를 악의적으로 이용하고 있고, 특히 해외 유명 유대인 권리단체의 발표 내용을 자신들의 국제적 정당성을 얻는 데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