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랜드 수사’ 항명 뒤 대검의 수사팀 신뢰 뚝…“수사 주체 2곳이면 한쪽이 일방적 결론 못 내려”
# ‘정치적인’ 수사만 쪼개기?
김태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감찰반원(현 검찰 수사관)의 폭로 사건과 이재명 경기도지사 직권남용 혐의 사건의 공통점은 바로 ‘수사 주체’가 2곳이라는 점이다.
현재 김태우 수사관 사건은 수원지방검찰청 형사1부와 서울동부지방검찰청 형사6부로 나뉘어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대검찰청은 청와대 등이 김태우 수사관의 언론 인터뷰 내용을 ‘기밀 유출’이라고 고발한 건은 수원지검에서, 자유한국당이 청와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박형철 민정수석실 비서관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건은 서울동부지검에 각각 배당했다.
김태우 수사관이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검에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김 수사관은 향후 수원지방검찰청에도 출석해야 한다. 최준필 기자
이는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해 말, 이재명 경기도지사 관련 사건들은 수원지방검찰청과 성남지청으로 나눠서 수사를 벌였다. 친형 정신병원 강제입원 의혹 사건은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부가, 혜경궁 김씨 트위터 의혹 사건은 수원지검 공안부가 각각 수사를 맡아 기소여부를 판단했다.
따라서 청와대가 관심 있게 챙기고 있는 정치적인 사건들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룰’로 볼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유력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건 때도 그렇고, 이번 김태우 수사관 사건도 그렇고 청와대가 민감하게 흐름을 챙기고 있다”며 “대검찰청도 이를 감안해 사건을 배당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 수사 효율성? “여러 명분 얘기하지만, 효율성 떨어져”
그렇다면 대검찰청이 ‘수사 쪼개기’에 대해 내놓은 설명은 무엇일까. 대검찰청은 경찰 지휘 및 사건 관계자 주거지 등을 이유로 사건을 배당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건의 경우 첫 수사가 각각 경기 분당경찰서와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서 나눠서 시작했다는 이유로, 김태우 수사관 사건의 경우 서울동부지검에 사건을 배당하면서 박형철 청와대 민정수석실 비서관의 거주지 등을 이유로 사건을 나눠 배당했다. 특히 검찰 각각 지청에는 “수사의 성격이 다소 다르다. 양이 많다”는 설명과 함께 ‘수사 효율성’도 쪼개기 배당 이유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에 대해 ‘쪼개기 배당’을 하는 것은 수사 효율성과는 상관없다는 게 특수 수사에 밝은 검찰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오히려 수사 효율성을 감안하려면, “한 개의 지검이나 지청에서 수사하는 게 맞다”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사건 관련 검찰 관계자는 “원래 청와대가 관심 가질 만큼의 정치적인 사건의 경우 서울중앙지검에서 맡아서 진행을 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언급했다. 실제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청와대는 박관천 경정의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이 제기되자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배당했다.
그리고 당시 서울중앙지검은 형사1부(부장검사 정수봉)와 특수2부(부장검사 임관혁)에 나눠 배당했다. 형사1부는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정호성 제1부속 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 비서관 등 8명이 세계일보 사장과 편집국장, 기자 등 6명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건을, 특수2부는 문서유출 과정에 대한 위법성 여부를 수사했다. 한 지검에서 일제히 불러 조사하는 게 더 빠르다는 판단에서였다.
앞선 검찰 관계자는 “진짜 빠른 수사 의지가 있다면, 인재들이 가장 많이 모인 서울중앙지검에 여러 개의 부서를 동원하는 게 가장 확실하다”며 “김태우 수사관 사건만 해도, 김태우 수사관이 서울동부지검에도 나와야 하고 수원지검에도 출석해야 한다. 그게 효율적이냐”고 지적했다. 실제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당시 검찰은 소환자를 형사1부와 특수2부에 같은 날 나눠 조사하는 방식으로 효율성을 꾀한 바 있다.
검찰 고위직 출신 법조인은 “서울중앙지검이 아니라, 서울동부지검과 수원지검, 성남지청 등에 사건을 분산한 것은 취재력이 약한 곳으로 사건을 보내 언론의 관심을 떨어뜨리고 싶은 것도 있어 보인다”며 “청와대가 원하는 대로 사건을 몰고 가며 시간을 벌기 위한 전략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 “강원랜드 수사 후폭풍에 쪼개기 시작한 듯”
하지만 수사 쪼개기의 목적이 단순히 언론 관심 떨어뜨리기 한 가지라고 생각하는 검사들은 없다. 특히 강원랜드 수사 이후 대검찰청이 수사팀 장악을 위해 더 신중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게 드러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앞서 안미현 검사는 지난 2월 4일과 언론인터뷰를 통해 ‘강원랜드 취업비리 수사과정에서 정치권의 외압이 있었고, 대검 반부패부와 전·현직 검찰총장이 개입돼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문무일 검찰총장은 양부남 검사장을 수사단장으로 삼고, 강원랜드 채용비리 관련 수사를 진행했다.
문무일 검찰총장
하지만 수사 도중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양부남 당시 수사단장이 대검찰청이 수사 도중 외압을 부당하게 행사했다며, 김우현 대검 반부패부장(현 인천지검장)과 최종원 서울남부지검장(현 변호사)을 기소하겠다고 나서는 항명을 한 것.
결국 전문수사자문단 회의까지 열어야 했다. 영화 ‘재심’의 실제 주인공으로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의 재심을 맡아 무죄판결을 이끌어 낸 박준영 변호사 등 법조계 주요인사 7명으로 구성된 자문단은 7명 전원의 의견으로 김우현 반부패부장의 불기소를 결정했고, “양부남 단장이 왜 그렇게까지 항명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정치적인 수가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뒤에야 문 총장의 리더십은 겨우 회복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검찰청의 개별 수사팀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고, 대검이 철저하게 사건을 장악하고 가겠다는 의지가 더 높아졌다는 평이다. 실제 “문 총장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검찰 내 의사소통 채널과 절차를 개선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우 수사관 수사팀 관계자는 “수원지검과 동부지검으로 사건을 쪼갠 것뿐만 아니라, 현재 대검찰청 내에서조차 형사부와 반부패부가 각각 수사를 나눠서 진행하고 있다”며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결론을 절대 내릴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건 역시 유사한 흐름이었다. 당시 성남지청과 수원지검은 각각 수사 결론을 대검찰청에 보고한 뒤, 이에 대한 언론 공표 역시 같은 날 진행했는데 이재명 지사는 기소하면서도, 부인 김혜경 씨는 불기소 처분하면서 ‘미리 조율했다’는 평이 나온 바 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