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상 비밀 누설’ 강도 높은 수사 예고 속…“정권 바뀌면 부메랑 될 수도” 우려
정부는 여러 경로를 통해 ‘문제될 게 없다. 김태우 수사관 개인의 문제’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검찰 내부는 조금씩 동요하고 있다. 지나치게 ‘정치적인’ 사건이기 때문. 특히 사건 전개 흐름이 앞선 정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특검이나 공수처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수사 흐름은 예상대로 흘러갈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김태우 수사관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는 물론, 그를 통한 정권 면죄부라는 결론이 나오지 않겠냐는 전망이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 박은숙 기자
“미꾸라지가 물을 흐린다”며 사건 초기, 일일이 김태우 수사관의 폭로를 반박했던 청와대는 12월 19일 비위혐의로 원청 복귀된 김태우 수사관의 청와대 민간인 사찰 주장과 관련해 “더 이상 대응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자연스레 사건은 법조계 이슈로 옮겨 붙었다. 김 수사관에 대한 감찰(대검찰청)과 고발 건(수원지검), 그리고 야당의 청와대 고발 건(서울동부지검)이 각각 수사가 시작됐다.
#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이지만”
검찰을 비롯한 법조계의 반응은 “청와대 대응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건에 정통한 검찰 관계자는 “사실 관계는 수사에서 다소 달라질 수 있다”면서도 “청와대가 내놓은 해명이 대부분 맞는 것 같다. 초반에 너무 감정적인 대응을 했고 김태우 수사관이 구체적인 폭로를 자유한국당 및 특정 언론을 통해 하다 보니 향후 정치적인 쟁점 요소가 남은 것은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박형철 청와대 민정수석실 비서관, 이인걸 청와대 감찰반장 등은 특정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보이는 첩보는 정상적인 방식을 통해 폐기했다”고 일관되게 설명했다.
청와대 흐름에 정통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김태우 전 수사관이 청와대 감찰반원들 중 경력이 가장 길다보니, 수사 첩보성과도 좋았던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지나치게 성과에 집착했던 차에, 전 정권에서 하던 패턴대로 보고를 올리다가 다소 달라진 청와대 분위기에 어긋나 사단이 난 것 같다”고 사건을 평가했다.
국회사무총장 시절 우윤근 우윤근 러시아 대사가 시정연설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을 배웅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우윤근 러시아 대사 비위 관련 등 다양한 첩보 생산 및 폐기 과정에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일부 쟁점은 향후 재등장할 소지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청와대의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이다. 김 수사관은 자유한국당 등을 통해 박근혜 정부 시절 임명된 박용호 전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장을 사찰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 수사관은 상급자의 지시를 받아 박 전 센터장에 대한 첩보를 수집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청와대는 첩보 수집을 지시한 바가 전혀 없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김 수사관 변호인인 석동현 변호사는 “적폐청산 관련 정보가 있으면 내보라는 이인걸 특감반장의 지시에 따라 정보 추가 수집을 시작했다“면서 ”지난해 7월 13일 첩보 초안을 작성하고, 도중에 이 특감반장의 보완지시를 받은 후 7월 20일 최종 완성해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가 체계적으로 정보 수집을 지시하고 관여했다고 강조한 것이다.
반면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은 12월 23일 “박용호 창조경제센터장 사안의 경우 (이인걸) 특감반장이 첩보를 수집하도록 지시한 바가 전혀 없다”며 민간인 신분인 박 전 센터장을 감찰했다는 의혹을 전면 반박했다.
정보를 많이 다뤄본 검찰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는 ‘민간인 사찰 DNA가 없다’고 얘기했지만, 민간인과 비민간인을 구분하는 것은 너무나 불분명하다”며 “어느 정부나 할 수밖에 없는 일을 했고, 그게 잘못된 것도 아닌데 그걸 문제 삼다가 정권을 잡다보니 스스로 발목을 잡힌 부분이 있다”고 진단했다.
검찰 고위직 출신 법조인 역시 “어느 정부나 정권이 바뀌고 나면 문제가 됐던 부분들에 대해 다시 검증을 받고, 필요할 경우 수사 및 처벌을 한다”며 “박근혜 정부 당시에도 관행적으로 하던 것들이 다 적폐가 되지 않았냐. 이번 정부 역시 바뀌고 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 사건이 현재로서는 확대될 여지가 가장 큰 사안”이라고 평가했다.
# 수원지검에서 큰 사건을? 수사할 의지 없는 검찰?
진짜 문제는 검찰이다. 사건을 들고 있는 검찰이 이번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검찰 내에서 “3년 뒤, 정권이 바뀌면 사건 관련된 검사들이 구속될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앞서 김 수사관은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가 2009년 4월 건설업자 장 아무개 씨에게 장 씨 조카 취업청탁과 함께 1000만 원을 받은 의혹을 특감반 근무 시절에 보고했다가 여권 인사를 감찰한다는 이유로 ‘보복성 퇴출’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수사관이 폭로한 우 대사의 의혹은 검찰 수사로 이어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우 대사 측은 김 수사관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방침이었지만, 법리 검토 끝에 고소해도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폭로 사건의 시작이 된 ‘여권 핵심 인사 비위’ 의혹이 사실 확인 없이 끝나고, 정작 김 수사관은 근무 시간 골프 등에 대한 수사만 진행되고 있다.
12월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대호에서 청와대로부터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고발된 김태우 수사관의 변호를 맡은 석동현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특히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에 배당됐으나 “김 씨가 원청(서울중앙지검)에 복귀해 같은 곳에서 수사를 하는 게 옳지 않다”는 대검찰청의 판단으로 수원지검으로 이첩됐다. 검찰 내에서조차 “뻔한 결론을 가기 위한 힘 빼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앞선 전직 검찰 관계자는 “수원지검은 언론의 관심도 덜하고, 대검찰청에서 사건을 핸들링하기도 쉽다”며 “이미 결론은 뻔한 것 아니겠냐. 수원지검에서 김 수사관을 공무상 비밀누설로 강도 높게 수사할 것이고 계속 폭로가 이어질 경우 구속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고 내다봤다.
법조계 관계자 역시 “수원지검이나 서울동부지검에 뛰어난 검사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정치적 사건은 큰 사건을 많이 다뤄본 서울중앙지검이 하는 게 맞다”며 “앞선 정권에서 검찰이 정치적으로 눈치를 봤던 사건들에 대해 재조사위원회가 구성돼 수사 과정을 문제 삼고 있지 않냐. 이번 사건 역시 정권이 바뀌면 검찰에 다시 칼을 겨누는 사건이 될 수 있다. 검찰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수원지검·동부지검 양갈래 배당 왜? 현재 검찰 수사는 크게 양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수원지검은 김 수사관에 대한 공무상 비밀누설 수사를, 서울동부지검은 야당이 고발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등에 대한 직권남용 수사를 각각 그대로 진행하고 있다. 통상 청와대 관련, 예민한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나 특수부, 공안부에서 맡는 게 관행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에도 산케이 신문 세월호 7시간 칼럼, 박관천 경정 문건유출 사건 등 첨예한 정치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와 특수부 등에 배당됐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 대검찰청은 수원지검과 서울동부지검이라는 다소 의외의 선택을 했다. 앞서 김 수사관 측 석동현 변호사는 기자들을 불러 모은 뒤 “수원지검 및 서울동부지검 사건 모두를 김 수사관과 청와대 관계자들이 조사를 받아야 하는 한 곳에서 수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대검찰청은 “관할권 문제, 거주지 등을 고려해 사건을 배당한 것”이라며 “배당에 관해 견해가 다를 수 있겠지만 이 사안은 수사 주체들이 이미 정해져 수사를 하고 있는 사안”이라는 선을 그었다. 수사를 양갈래로 진행하는 선택을 바꾸지 않겠다고 한 셈이다. 대검 감찰본부는 ‘골프 접대’ 등 김 수사관에게 제기된 의혹들에 대한 조사 결과를 이번 주 감찰위원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감찰 결과가 나오면, 수원지검의 김 수사관을 향한 수사는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가운데 검찰 내에서는 예민한 정치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서 배제한 이번 배당에 대한 비판어린 목소리도 고개를 들고 있다. 검찰 고위직 출신 법조인은 “당연히 서울중앙지검에서 해야 할 사건을, 특히 정권의 예민한 부분을 수사해야 하는 신중한 사건을 여기저기 흩어놓은 것을 보라”며 “향후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요직(총장)에 올라갈 때 국회 야당 등에서 편파 수사 결과 등 논란이 될 소지를 막으려 했다는 추측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건에 관계된 검찰 관계자 역시 “대검찰청에서 여러 이유를 들어 사건을 수도권으로 배정했지만, 청와대와 김 수사관 양쪽 다 수사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대검찰청이 사건을 완벽하게 통제하려고 제한된 수사 영역만 줬을 수도 있지만 수사하는 입장에서는 제한이 많다”고 토로했다. 수사 효율성이 떨어지는 배당이라는 비판이다. 특히 대검찰청은 사건에 대해 수원지검과 서울동부지검에 깊숙하게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선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이 몇 년 뒤 어떻게 다시 부메랑이 될지 모른다는 것은 대검찰청이 더 잘 알고 있는 듯하다”며 “대검찰청 역시 이를 정확히 알고 사건이 법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되, 정권에 해가 되지 않도록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사건에 관심이 많은 것도 이 때문 아니겠느냐”고 귀띔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