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씨 기부금 상당수 이 이사장 관련 기관·인물에 지급돼…박 씨 거짓 폭로된 후 변호사 선임 도움주기도
과거 이력도 화려하다. 이 이사장은 참여정부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널리 알려졌고 노무현 대통령 정책특보, 18대 대선에서 민주통합당 ‘미래캠프’ 경제민주화위원장을 역임했다. 이 이사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 브레인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그를 원하는 기업들도 많다. 2018년 2월 KT 황창규 회장이 직접 사외이사 제안을 했고 이 이사장도 수락했지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자 부담을 느껴 철회한 바 있다.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 브레인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사진=연합뉴스
이 이사장은 취임 전부터 장학사업에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이 이사장은 ‘영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공이 ‘불평등의 경제학’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다. 그 분야를 평생 공부해 온 사람이라서 딱 맞는 일이라 할 수 있다”며 성적이 0.2점 낮아 장학금을 받지 못한 학생을 생각해 “1989년 경북대신문에 ‘성적 위주의 장학금제도, 과연 옳은가?’라는 장문의 글을 기고했다”고 밝혔다.
명망 높은 이정우 이사장이 각별히 아끼는 제자가 바로 박철상 씨다. 박 씨는 최근 사기 및 유사수신 혐의로 구속됐다. 박철상 씨는 평소 방송과 언론 매체를 통해 ‘이정우 경북대 교수가 나의 멘토’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박 씨와 이 이사장의 관계는 무엇이었을까. 박 씨 피해자들은 ‘이정우 교수 얼굴을 보고 투자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 이사장이 박 씨를 시민단체나 사업가에 소개시켜 주기도 했고, 대구 사회혁신가 모임에 연결해주기도 했다.
‘일요신문’은 박철상 씨가 2016년 9월부터 최근까지 수발신한 문자를 확보해 [단독] 사기 구속 박철상 씨 문자에 드러난 유력인사들 낯뜨거운 행태를 보도한 바 있다. 수많은 문자 속에서도 이 이사장은 특별했다. ‘일요신문’은 2016년부터 이 이사장과 박 씨가 주고받은 문자와 대구 지역 취재, 이 이사장과 세 차례에 걸친 전화 인터뷰를 통해 두 사람의 관계를 파악해봤다. 그 결과 박 씨의 기부금 중 상당수는 이 이사장과 관련 있는 곳과 이 이사장이 추천해준 교수에게 지급됐다.
2014년 박철상 씨는 대구시민센터에 사회혁신가 발굴과 양성을 위해 1억 원을 기부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구시민단체 동행위원회 주최로 열리는 사회혁신가 포럼은 2015년부터 박 씨의 기부금을 기반으로 사회혁신가 발굴과 양성에 나서기로 했다. 대구시민센터 동행위원회 위원장은 이정우 이사장이었다.
이정우 이사장은 “대구에 사회혁신가 프로그램이라는 좋은 게 있어 거기에 돈을 좀 지원할 수 있겠느냐 물어서 지원을 해줬다. 그 다음 한베평화재단이 돈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지원을 해줄 수 있겠느냐 물어서 해준 게 전부다”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 말대로 박 씨는 자신의 최종 기부 내역을 정리한 표에도 대구시민센터에 9200만 원, 한베평화재단에 9300만 원을 기부했다고 나와 있다.
2016년 7월 이정우 교수 이사장의 누나인 이 아무개 씨가 박철상 씨에게 문자를 보낸다. “철상 군! 방금 이정우 교수가 보낸 카톡 읽고 너무나 감격스러워 말문이 막혔다오. 자네 같은 제자를 둔 이 교수는 얼마나 자랑스럽고 행복할까”라고 했고, 이에 박 씨는 “선생님 항상 좋은 말씀으로 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미리 연락드리고 인사드리러 찾아뵙겠습니다”고 답했다. 이 이사장의 누나가 박 씨에게 이런 문자를 보낸 배경에도 역시 장학금이 있었다.
이 이사장의 누나는 경북여고 동문회 이사장이었고, 박 씨는 경북여고에 1억 6000만 원을 기부했다고 알려졌다. 박 씨가 지원한 고등학교 중에서 가장 큰 금액이었다. 이 이사장은 박 씨와 자신의 누나가 자주 연락한 이유는 ‘동문회 장학금 때문이다’라고 일축했다. 이 이사장은 “누님이 경북여고 장학회 회장을 했는데 박 씨가 크게 기부를 했다. 나하고 잘 아는 학생이라고 하니까 그런 고맙고 기특한 학생이 있느냐며 누님이 ‘그럼 내가 밥이라도 한 번 사야겠다’해서 한 번 만났다. 그게 전부다.”
박철상 씨는 이정우 이사장이 임원으로 재직 중인 단체와 추천한 단체에 거액을 기부했다.
2017년 1월 이 이사장이 문자를 보낸다. “전남대 홍 아무개 상경대 교수 (휴대전화 번호), 홍 아무개 교수 (휴대전화 번호) 곧 정년퇴직, 박 아무개 씨 인문대 (휴대전화 번호), 이 아무개 씨 인문대 (휴대전화 번호). 학생들에 대해 평소 관심과 애정이 많은 사람들입니다”라고 하자 박철상 씨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교수님 내일 뵙겠습니다”고 답했다. 이에 이 이사장이 “우선 문자로 이 교수들에게 취지를 설명한 뒤 통화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조언했다.
박 씨가 “그렇지 않아도 문자 드린 다음에 전화드리려고 했다. 직접 찾아뵙고 더 자세히 얘기해 보겠다”고 하자 이 이사장이 “오케이. 내일 보세”라며 “경북대 졸업한 아무개 교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날 이 이사장은 다시 문자를 보낸다. 이 이사장은 이번에는 단문으로 “자연대 아무개, 수의대 아무개, 인문대 아무개, 경영대 아무개, 사범대 아무개 등이 이상적일 것임”이라고 하자 박 씨는 “네 교수님 알려주신 교수들께 연락해 설명해 드리고 찾아뵙겠다”고 말한다. 이에 이 이사장이 교수들 번호 3개를 전달한다. 박 씨는 전남대에 6750만 원을 기부했다고 전해진다.
이에 이 이사장은 “(박 씨가) 전남대 장학사업을 한다고 하길래 심사위원이 필요하다고 해서 제가 아는 전남대 교수한테 ‘이런 좋은 일을 하니까 심사위원 할 만한 교수를 추천해달라’ 이렇게 부탁을 한 적은 있다”고 답했다.
약 한 달이 지난 뒤인 2월 말 이 이사장이 전화를 걸었고 박 씨가 받지 못했다. 박 씨가 “교수님 전화하셨네요. 통화 가능한 시간 알려주시면 전화 드리겠다”라고 하자 이 이사장은 “지난 번 소개해 준 전남대 교수 만났는데 장학사업 잘 돼는가 궁금해서? 지금 회의 중”이라고 보냈다. 이에 박 씨가 “이번 학기부터 시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2017년 8월 박 씨가 400억 자산가라는 게 거짓임이 폭로됐을 때 이 이사장은 질책보다는 위로의 문자를 보낸다. 이 이사장은 “박 군 뉴스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마음에 상처가 크겠군. 윤 아무개 씨와 셋이서 식사하며 위로모임 갖고 싶은데 시간 되려나”고 말했다. 그 사이 어떤 내용도 오가지 않았고 3일 뒤 박 씨가 갑작스레 자신의 아버지 번호를 이 이사장에게 보내면서 “진심으로 죄송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교수님”이라고 보냈다. 이에 이 이사장이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도 하고 술도 한잔하며 기분 전환을 하게. 너무 자책하지 말고. 인생은 길고 구불구불하니 늘 낙관 희망을 잃지 말기를”이라고 했고 박 씨는 “네 감사드립니다. 교수님”이라고 답했다.
이 같은 문자에 대해 묻자 이 이사장은 “편하게 생각하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때 얘가 혹시나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을까 그런 걱정이 되어 말한 거다” 그로부터 약 1주일 후 박 씨가 “교수님 오늘 오후 4시 30분에 저희 집에서 보셔도 괜찮으십니까. 외부장소에서 뵙기가 어려워 정말 죄송합니다. 교수님”이라고 보내자 이 이사장이 “오케이 윤 아무개 씨에게도 연락해 보게”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박 씨 집에 찾아갔다.
2017년 11월 다시 한 번 박 씨가 이 이사장에 안부 문자를 보냈고, 이 이사장은 ‘바빠서 못 봤다’며 ‘언제든 연락하라’고 답했다. 약 3일 뒤 박 씨는 성 아무개 변호사에게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내일 이정우 교수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는 것인지 물어보려고 한다”고 문자를 보낸다. 성 변호사는 “네 그렇습니다”고 하면서 주소를 보낸다. 박 씨는 다시 “어제 말씀하신 대로 오전 10시까지 찾아뵈면 되냐”고 답했다.
박 씨가 변호사를 만난 이유는 검찰 고발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 씨는 신준경 씨, 최우혁 씨 등의 폭로 이후 보도를 접한 제3자의 진정으로 검찰 조사까지 받게 된다. 이에 이 이사장이 변호사 선임에 도움을 줬던 것으로 보인다. 집으로 직접 찾아가고 변호사 선임에 도움을 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 이사장은 “도움을 준 건 맞다. 뭔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는가 싶어서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그랬다”고 답했다. 최근 박 씨가 구속됐을 때도 성 변호사가 선임계를 냈다.
이후 문자로는 연락이 없다가 2018년 12월 박 씨가 이 이사장에게 오랜만에 안부 인사를 한다. 이 이사장은 “반갑네. 잘 지내는지? 나는 요즘 엄청 바쁘네. 조만간 한 번 보세”라고 말했다. 12월 박 씨는 또 다른 인물에게 문자를 보낸다. 과거 이 이사장과 만났던 사업가 A 씨에게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일전에 이정우 교수님과 같이 뵀던 박철상이라는 청년입니다. 바쁘시겠지만 선생님 편하실 때 찾아뵈어도 되겠습니까”고 전송했다.
박 씨 피해자들은 박 씨가 이렇게 과거 만났던 인연이나 이 이사장을 언급하며 문자를 보내면서 접근해 투자를 권유했다고 말한다. 피해자들 사이에서 이 이사장 때문에 속았다는 반응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 이사장은 “나는 전혀 모른다. 그 뒤로는 통 연락도 없었고 그냥 울산에 가서 근신하고 있는가 보다 생각했다”며 “특혜나 그런 건 없다. 그런 의혹이 있다는 걸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제자가 좋은 일 한다니까 그랬을 뿐이다”고 말했다.
수도권 한 대학 교수는 “명예교수가 아니라 평교수라고 하더라도 집에 찾아가고, 변호사를 선임해주는 경우는 없다”며 “박 씨 기부금 중 많은 양이 이 이사장 관련된 곳으로 들어간 만큼 이 이사장 입김이 작용한 것은 아닌지 밝혀져야 할 필요성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구성모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