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연합으론 승리 장담 못해…비대위 출범 및 특정계파 움직임도 변수
국회의사당 전경. 박은숙 기자
여야의 21대 총선 전략을 단순화하면, ‘19대 모델이냐, 20대 모델이냐’로 압축된다. 이명박(MB) 정부 말기인 2012년 4·11 총선에선 진보진영(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이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에 맞서 중앙당 차원의 연대로 맞섰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를 띄운 새누리당이 과반(152석)을 확보했다. 민주통합당은 127석에 그쳤다. 통합진보당은 13석을 건지면서 진보정당의 새 역사를 썼지만, 진보진영 패배로 빛이 바랬다.
4년 뒤 총선은 정반대 구도였다. 진보진영은 2016년 4·13 총선을 앞두고 분열했다. 여야가 공수를 전환한 이른바 ‘일여다야’ 체제였다. 찢어진 진보진영의 참패가 예상됐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새누리당은 122석을 얻는 데 그쳤다. 과반은커녕 제1당도 더불어민주당(123석)에 뺏겼다. 범진보진영 의석수는 167석(민주당 123석+국민의당 38석+정의당 6석)에 달했다. ‘16년 만의 여소야대’, ‘20년 만의 다당체제’로 전환한 것이다. 진보와 보수 중 어느 한쪽이 대연합 작전을 써도 승리를 담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여야의 주판알 튕기기가 불가피한 이유다.
관전 포인트는 ‘21대 총선 모델의 수렴점’이다. “과거 선거에서 나타난 법칙을 봐라.” 여의도의 한 전략가는 21대 총선 구도 전망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총선마다 반복한 정계개편의 수는 ▲체제 붕괴→비대위 출범 ▲대연합·대통합 ▲특정 계파의 색 강화 등 크게 세 가지다. 차기 총선 역시 세 가지의 패 중 하나로 귀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보수와 진보 모두 이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대 총선을 앞둔 한나라당(현 한국당)은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로 거대한 쓰나미를 맞았다. 홍준표 호는 친박(친박근혜)계의 노골적인 흔들기를 견디지 못하고 2011년 12월 9일 결국 낙마했다. 한 달여 뒤인 박근혜 비대위가 난파 위기에 처한 당의 구원투수로 나섰다. 당명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꿨다. 20대 총선을 앞두고는 민주당을 이끌던 문재인 체제가 무너졌다. 이후 김종인 비대위가 들어섰다. 거대 양당(민주당·한국당)도 종종 ‘체제 붕괴→비대위 출범’ 희생양으로 전락했다.
대연합·대통합의 대표적 사례는 2012년 4·11 총선 직전 단행한 ‘야권중통합(민주당+혁신과통합+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진보대통합(민주노동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 등이 꼽힌다. 하지만 야권중통합으로 출범한 민주통합당은 친노(친노무현)계 중심의 공천을 단행, 결국 자멸했다. 특정 계파의 색 강화가 통합의 시너지를 죽이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보수진영도 마찬가지다. MB정부 출범 직후 치른 2008년 4·9 총선은 ‘친박 살생부’가 난무한 선거였다. 당시 친이(친이명박)계는 당내 정적인 친박계를 대거 몰아냈다. 표적 낙천을 당한 친박계는 당 밖에서 친박연대를 만들어 친이계에 저항했다. 특정 계파의 당 독식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여야의 21대 총선 수렴점도 세 가지 경우의 수 가운데 한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일단 특정 색 계파 강화에 방점을 찍었다. 이른바 ‘이해찬 발 시프트’를 조기에 가동, 친문(친문재인)계 브레인을 전진 배치할 뜻을 비친 것도 친정 체제 구축의 연장선이다. 이해찬 호가 흔들리는 것을 조기에 막아 비대위 출범 가능성을 앞 선에서부터 틀어막자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 대표는 그간 “인위적인 이합집산 식의 정계개편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20년 집권론 등 장기 집권론에 군불을 지피는 이 대표의 구상에 ‘체제 붕괴→비대위 출범’ 시나리오는 아예 없는 선택지다.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이 대표의 과제는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청와대 1기 참모진을 파열음 없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모두가 선당후사로 임하면, 차기 총선에서 (연대 등을 하지 않아도) 과반은 어렵지 않게 달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진보대연합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 명분은 ‘범민주진보개혁진영의 승리’다. 변수는 문 대통령의 지지도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 무산 이후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세다. 미세먼지 파동 등 외생 변수는 연일 여권 전체를 옭아매고 있다. 반면 자유한국당 2·27 전당대회 이후 보수층은 서서히 결집 중이다. 진보진영 한 관계자는 “진보대연합의 키는 문 대통령 지지도”라고 잘라 말했다.
21대 총선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통하는 4·3 재보선 단일화 논의가 이를 증명했다. 애초 민주당 내부에선 ‘단일화는 없다’는 기류가 강했다.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 핵심인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고 노회찬 전 의원 지역구인) 창원·성산을 정의당에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당 내부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우 의원은 결국 사과문까지 냈다.
민주당 비문(비문재인)계 의원은 “집권 4년 차에 들어서면 대통령과 당 지지도가 더 빠질 것”이라며 “범진보진영의 전선을 어디까지 형성할지에 관한 논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비주류 내부에선 민주평화당과 역할 재정립 및 무소속 손금주·이용호 의원의 입당 문제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범진보진영 간 ‘선 개혁입법 양해각서(MOU)’ 체결 등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거론된다. 이 MOU를 일종의 ‘진보대연합의 약속어음’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자유한국당도 마찬가지다. 황교안 호가 무너지든지, 보수대연합을 하든지, 특정 계파의 독점화가 강화되든지, 셋 중 하나다. 황교안 호 출범 이후 당 지지도는 국정농단 게이트 이전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황교안 호의 안정성은 2% 부족하다. 당 최대 주주의 뒷배 없는 황교안 호는 모래알만큼이나 약하다.
특히 당 최대 주주로 불렸던 대구·경북(TK)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총선 공천 과정에서 친박계와 비박(비박근혜)계, 당내 소장파 등이 일시에 튀어나오면서 내부 알력 다툼이 극에 달하는 최악의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만에 하나 이 과정에서 TK가 황교안 체제를 버린다면, 이들의 관계는 불편한 동거 차원을 넘어 제2의 반기문 사태에 직면한다. 야권 한 관계자는 “지난 대선 때 보수의 대안으로 떠오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나머지 두 시나리오에 내포된 딜레마다. 황 대표가 당 최대 주주와 전략적 동거를 감행한다면, TK 색은 한층 강화된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 등 한국당 탈당파와의 보수대연합은 사실상 폐기 처분된다. 황 대표는 2·27 전당대회 과정에서 “보수대통합에 헌법적 가치를 부여하면 함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유 의원 등이 추구하는 ‘개혁적 보수’로는 통합할 수 없다는 시그널인 셈이다.
이 경우 한국당은 ‘당내 알력 다툼→최대 주주 계파색 강화’ 등의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TK가 또다시 한국당의 최대 주주가 된다면, 황교안 체제는 ‘친박 그림자’에 가려진다. 황 대표가 사실상 TK 등 친박계의 꼭두각시 인형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비TK 쪽이 당 최대 주주가 되더라도 이 과정에서 친박계가 신당 창당설을 고리로 압박 작전에 나서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이 경우 보수진영은 대연합은커녕 분열한 채 차기 총선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황교안 체제의 단명 여부의 1차 분수령은 오는 4·3 재보선이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한국당이 4·3 재보선에서 2곳을 다 이겨야만 체제를 안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역으로 2곳 모두 진보진영에 내주면, 단명의 그림자는 황교안 체제 곁으로 바짝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