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성매매 탈세 등 버닝썬과 흡사…‘성매매 알선’ 외국계 중국인 여성 관심 증폭
‘버닝썬 사태’와 비슷한 일들이 강남의 한 고급 사교모임에서도 벌어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진은 클럽 버닝썬. 박정훈 기자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단독주택. 외관은 평범해 보이지만 이곳에선 가끔 은밀한 파티가 열렸다. 내부엔 유흥을 위한 모든 채비가 갖춰져 있다고 한다. 참석자는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이들도 제법 있다. 정치인 자녀, 재벌 3~4세, 투자사 대표, 대형 병원장 아들, 연예인 등이 모임 멤버다. 파티가 열리는 주택 소유주는 투자사 대표다. 그는 얼마 전 이 주택을 처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모임의 정식 명칭은 없다. 아예 그 존재 자체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강남 일대에선 이들을 가리켜 ‘VVIP 사교모임’이라는 얘기가 은밀히 돈다. 이들도 아레나와 같은 강남 유명 클럽을 즐겨 다녔던 것으로 전해진다. 버닝썬 폭행사태의 ‘나비효과’가 이들에게까지 미칠 것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버닝썬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도 뒤를 잇는다. 한때 이들과 자주 어울렸지만 2년 전쯤 나왔다는 한 사업가는 설득 끝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부분 미국 유학 시절 친분을 쌓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자주 어울리면서 정기 모임처럼 됐다. 지인들도 데리고 오면서 한 15명까지 늘었다가 지금은 6~7명 정도만 가끔 모인다고 들었다. 처음엔 그냥 술 마시고 골프 치는 그 수준이었다가 갈수록 수위가 높아졌다. 돈 씀씀이로만 따지면 우리가 강남 클럽의 가장 ‘큰손’이었을 것이다. 몇 년 전쯤 유명 정치인 사위가 연루된 마약 사건이 터졌을 때 우리도 긴장했었다. 그 이후 서로 조심하자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삼성동 단독주택 소유주였던 투자사 대표의 최측근도 이 모임에 여러 번 참석했다고 전했다. 그는 “대표가 몇 번 데리고 간 적이 있다. 그들은 주로 회원제 룸살롱에서 만났다. 아니면 호텔방을 빌렸다”면서 “가끔 아레나와 옥타곤 같은 유명 클럽도 간다고 했다. 지난해 1월 개장한 버닝썬도 몇 번 갔다. 클럽은 그저 재미삼아 가는 곳이라고 했다. 하룻밤에 룸살롱과 클럽을 여러 군데 다니기도 한다. 이들에게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대로까지 술값이 나온다. 돈은 3~4명이 돌아가면서 낸다고 들었다”라고 전했다.
물론, 단순한 사교 모임을 일방적으로 매도할 순 없다. 하지만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일탈이나 도덕적 해이 정도로 치부하긴 어려울 듯하다. 모임 내에서 불법적인 일들이 공공연하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버닝썬 사태 역시 승리를 비롯한 일부 연예인들 친분에서부터 비롯됐다. 모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성매매와 마약 흡입, 탈세 등이 공공연하게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버닝썬과 비슷한 양상으로, 참석자들 면면과 자금 규모 등을 감안하면 공개될 경우 그 파장은 훨씬 클 전망이다.
앞서 언급한 사업가로부터 좀 더 내밀한 얘기를 들어봤다. 그는 “성매매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지는 모르겠는데 소위 말하는 ‘2차’가 우리 술자리의 마지막인 것은 맞다. 클럽에 가더라도 모르는 여성들과 즉석 만남은 하지 않았다. 연예인처럼 얼굴 알려진 사람도 있어 노출되기를 꺼렸기 때문이다. 단골 룸살롱 마담들로부터 여자를 ‘공급(공급이라는 표현을 썼다)’ 받았다. 우리가 원하는 장소에 필요한 여성들을 보내줬다. 그 대가로 돈을 지불했다”고 귀띔했다. 이어 그는 “술집 종업원뿐 아니라 모델이나 신인 여배우도 가끔 나왔다. (만났던 여자들 중) 나중에 TV 드라마에 나온 연예인도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투자사 대표 최측근도 비슷한 말을 털어놨다. 그는 “우리가 다니는 룸살롱은 2차가 되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 모임엔 종업원들이 서로 2차를 나가려고 경쟁했다고 들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구체적인 액수를 묻자 그는 “나랑 친한 투자사 대표는 보통 한 달에 2000만 원을 주고 4번 정도 만나는 것 같았다. 한 번 만날 때 500만 원 정도의 화대를 지급한 셈”이라면서 “마음에 들면 집이랑 외제차까지 사준다. 그들에게 돈의 액수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답했다.
모임 멤버들이 마약류를 흡입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들이 자주 다녔던 한 고급 룸살롱의 전직 마담은 “그들이 누군지 잘 안다. 그들이 아가씨들을 호텔로 불러 달라고 요청한 적이 여러 번 있다. 다녀 온 아가씨들에 따르면 정말 별천지라고 하더라. 가장 비싼 방을 통째로 빌려 최고급 술을 물처럼 마셔댄다더라”면서 “대마초를 피우는 장면도 자주 목격했다고 한다. 우리 아가씨들 중에서도 같이 피운 사람이 있다”고 털어놨다. 앞서의 사업가도 “성관계를 할 때 최음제나 마약 등을 하는 것은 모임 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누가 어디서 뭘 구해왔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며 나눠주기도 했다. 그 모임은 ‘치외법권’이나 다름 없었다”고 전했다.
눈길을 끄는 점은 이 모임에 외국인들도 여럿 참석했다는 것이다. 이들 중엔 해외 유명 스타의 자제도 포함돼 있다. 그는 모임의 핵심 인사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 동남아 지역을 무대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2~3명의 사업가도 모임 멤버였다. 복수의 모임 관계자들은 외국인 멤버들이 마약을 가져오는 역할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국내로 들어올 때마다 모임에 참석해 고급 룸살롱과 강남 클럽을 다녔다고 한다. 또 다른 모임 참석자는 이렇게 말했다.
“외국인 친구들이 들어오면 우리가 풀코스로 쏜다. 여자까지 말이다. 대신 우리가 외국에 가면 그들이 다 알아서 한다. 우리도 여기보단 해외에서 편하게 노는 게 좋고 그들도 그렇다. 그렇다고 우리가 마냥 노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파트너’였다. 서로 괜찮은 투자처나 부동산을 소개해주곤 한다. 우리가 해외에 부동산을 사려고 하거나 투자를 하려면 얼마나 까다롭냐. 하지만 이들을 통하면 쉽게 해결된다. 세금도 절약할 수 있고. 여러 측면에서 ‘윈윈’이기 때문에 모임이 유지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외국인들과 연락이 되질 않는 상태다. 모임도 거의 유명무실해졌다.”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흥미로운 인물을 포착할 수 있었다. 모임의 유일한 여성 멤버인 외국계 중국인 L 씨였다. L 씨의 자세한 인적사항을 파악하긴 어려웠다. 모임 멤버들조차 L 씨를 직접 본 적은 없다고 털어놨다. 다만, L 씨가 국내외 인맥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했다는 것은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성매매에도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투자사 대표 최측근은 “L 씨가 태국 등지에서 여성을 데리고 입국해 모임 멤버들에게 성매매를 알선하곤 했다. 또 국내 멤버들을 해외로 데리고 가 현지에서 성매매도 주선했다”면서 “모습을 드러내진 않고 대리인을 내세우는 것으로 들었다. 버닝썬에서 화제를 모은 ‘애나’도 그녀 밑에서 일한다는 얘기가 나온 적이 있다. 그녀의 존재를 아는 이들은 모임 내에서도 극소수”라고 전했다.
사정당국 관계자들과 중국 현지인들 말을 종합하면 L 씨는 40대 중반 여성이다. 유럽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대학교는 중국에서 나왔다. 독일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에 능통할 뿐 아니라 경제 분야 지식도 해박하다. 부친이 상당한 재력가라는 소문도 있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L 씨는 아시아 지역 유력 투자자들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L 씨는 각국 현지에 성매매 네트워크를 구축한 뒤 이를 투자자들에 대한 로비 등에 적극 활용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해외 몇몇 수사기관에서도 L 씨를 추적 중이다. 하지만 L 씨는 현재 일 년 넘게 행방이 묘연하다고 한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