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계 “FA 사전 접촉은 오래전부터 공공연한 비밀”… 높아지는 ‘우선협상기간 폐지’ 목소리도
5월 16일 KBL 재정위원회에 출석하는 김종규. 사진=연합뉴스
[일요신문] 프로농구 자유계약선수(FA) 사전 접촉(탬퍼링) 관련, 창원 LG와 김종규의 진실 게임이 ‘사전 접촉 불인정’으로 막을 내렸지만 후폭풍은 여전하다.
KBL은 15일 LG로부터 FA 자격을 얻은 김종규의 사전 접촉 진상조사 요청을 받고 16일 KBL센터에서 재정위원회를 열어 김종규의 타구단 사전 접촉에 대해 심의했다. 그러나 재정위는 “김종규의 타 구단 사전 접촉으로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김종규의 손을 들어줬다. 이로써 김종규의 영입을 원하는 구단은 20일 낮 12시까지 KBL에 영입의향서를 제출할 수 있다. 김종규는 LG로부터 총액 12억 원(연봉 9억6000만 원, 인센티브 2억 4000만 원)을 제시받았지만 사인하지 않은 터라 김종규를 영입하려는 구단은 최소 12억 원 이상을 써내야 한다.
김종규가 어느 팀 유니폼을 입든 그의 FA 진행 과정은 프로농구에 다양한 화두를 던졌다.
“3개 팀이 바보가 아닌 이상, ‘우리가 김종규랑 사전 접촉했다’라고 말하겠나. KBL에서 아무리 사실 확인을 위해 노력해도 선수 휴대폰 등을 조사하지 않는 한 이 싸움은 이미 결론이 난 거나 마찬가지다.”
창원 LG가 김종규의 탬퍼링이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며 녹취록과 함께 KBL에 유권해석을 요청했을 때 익명을 요구한 감독은 기자에게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귀띔했다. 법적인 수사 권한이 없는 KBL에서 선수와 타 구단간의 탬퍼링 여부를 확인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
그렇다면 김종규와 LG가 벌인 FA 협상 과정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명 ‘김종규 사태’는 김종규의 승으로 일단락 됐지만 LG와 김종규 사이의 협상 과정에는 여전히 미스터리한 부분이 남아 있다. 이와 관련해서 창원 LG 손종오 사무국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하나씩 체크해 봤다.
#LG가 김종규한테 제시한 12억 원의 진실
프로 데뷔 이후 LG 세이커스에서 활약했던 김종규. 사진=연합뉴스
프로농구 FA 선수들은 5월 1~15일까지 원 소속 구단과 FA 협상을 벌였다. 김종규와 LG는 14일 저녁에 만났다. 손종오 국장은 “김종규한테 12억 원을 제시한 건 아주 늦은 밤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처음부터 12억 원을 제시한 건 아니라고 한다. 올 시즌 김종규의 연봉은 3억 2000만 원. 처음 LG가 김종규에게 제시한 금액은 6억 원이었다가 8억 원까지 올랐다는 후문이다.
“마지막 카드로 12억 원을 제시했음에도 김종규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종규의 계약 상황에 따라 다른 FA 선수들은 물론 선수단 연봉 책정도 달라지기 때문에 김종규한테 12억을 제시한 건 모험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도 김종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14일 밤에 LG와 김종규는 협상 결렬서를 작성했고, 김종규는 12억 원이 제시된 결렬서에 최종 사인을 했다.
“협상 결렬서에 사인하기 전 한상욱 단장이 김종규한테 ‘종규야, 침착하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그래도 김종규는 사인을 마치고 일어났다.”
LG는 15일 오전에 KBL에 ‘김종규와의 FA 계약이 협상 결렬됐다’는 소식을 알렸고, 한 가지 의혹을 추가했다. 바로 김종규와 타 구단의 사전 접촉이 의심된다는 ‘녹취록’을 제출한 것이다.
“그 녹취록은 유럽으로 출장 가 있는 현주엽 감독과 김종규의 통화 내용이다. 구단과의 협상이 최종 결렬된 후 김종규가 현 감독과 통화했는데 그때 현 감독에게 했던 김종규의 발언이 사전 접촉을 의심케 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그 통화 내용을 KBL에 제출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녹취는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손 국장은 현 감독이 스피커폰으로 김종규와 대화를 나눴고, 이 대화 내용을 출장에 동행한 구단 직원이 녹음을 했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녹취한 걸 두고 좋지 않은 시각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녹취가 아니라 KBL의 FA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걸 구단이 KBL에 질의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선수를 다치게 하기 위해 KBL에 이의 신청서를 제출한 게 아니다. 이번 일을 통해 FA 제도의 맹점을 수정 보완하자는 의도다. 단순히 12억 원 제시하고 결렬됐다는 내용이면 우리도 묻었을 것이다. 그러나 팀 주축 선수마저 흔들리는 이러한 FA 제도는 분명 개선돼야 한다.”
창원 LG는 김종규와의 협상 결렬을 발표한 뒤 김시래와 5년간 첫 해 보수 총액 6억 원 계약에 합의했다.
#그렇다면 LG는 사전접촉한 적이 없나
5월 16일 열린 KBL 재정위원회. 사진=연합뉴스
손종오 사무국장의 자세한 설명에도 농구계에서는 여전히 LG의 행동에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농구 관계자 A 씨는 “LG가 김종규에게 12억을 제시한 건 프로농구 발전을 막는 처사”라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종규가 아무리 유능한 선수라고 해도 12억 원은 엄청난 금액이다. 2017년 이정현이 KCC로 가면서 받은 보수 총액이 9억 2000만 원이었는데 이걸 훌쩍 상회하는 금액 아닌가. 선수가 높은 몸값을 받는 건 프로에서 당연한 일이지만 프로농구는 샐러리캡 25억 원에 묶여 있는 상황이라 한 선수가 이렇게 많은 금액을 챙기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다른 선수한테 미친다. 원래 LG는 김종규에게 8억 원 이상은 줄 의향이 없었다. 그런데 막판에 12억 원을 써 넣었고, 김종규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협상 결렬서에 사인한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LG가 김종규의 사전 접촉 의혹을 제기했는데 그런 LG는 타 팀 FA 선수와 사전 접촉한 적이 없는지 묻고 싶다.”
A 씨는 전자랜드와의 FA 협상이 결렬된 김상규를 거론했다. 김상규는 전자랜드가 보수 총액 4억 원(연봉 3억 2000만원, 인센티브 8000만 원)에 계약기간 5년을 제시했지만 거절하고 FA 시장에 나왔다.
“김상규의 원래 연봉이 1억 1000만 원이다. 그런 선수가 전자랜드의 4억 원 제시에도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았다. 농구계에서는 창원 LG가 김상규와 사전 접촉을 시도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즉 김상규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전자랜드의 4억 원 제안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그런 LG가 김종규의 사전 접촉 의혹에 녹취록까지 챙겨 KBL에 제출한 행위가 온당하다고 보나. 자신들도 타 팀의 FA 선수와 사전 접촉을 하면서 자신의 선수와 관련해서 재정위원회까지 열게 하는 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나.”
김상규가 전자랜드와 협상을 시작한 건 지난 15일 오전 11시 40분. 낮 12까지가 원소속팀과의 FA 협상 기간이라 남은 시간은 20분밖에 없었다. 전자랜드는 김상규에게 처음 3억 2000만 원을 제시했다. 김상규가 움직이지 않자 3억 5000만 원으로 올랐고 이후 3억 7000만 원까지 뛰었다. 그런데 김상규는 계약서에 사인하기 직전에 구단에 4억 원을 요구했다. 전자랜드 측은 김상규의 협상 태도에 크게 실망했고, 결국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이와 관련해서 LG 손종오 사무국장은 김상규에 대해선 오래전부터 관심이 있었다고 말한다.
“전자랜드 김성헌 국장한테 몇 년 전부터 김상규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15일에도 전화해서 김상규에 대한 관심을 전했다. 탬퍼링은 원소속 구단을 제치고 선수와 타 구단이 사전 접촉하는 거라면 우리는 그 선수가 속한 구단에 정식으로 선수의 필요성을 어필했기 때문에 탬퍼링과는 차이가 있다.”
김상규는 2018-2019시즌 정규리그 52경기에서 평균 16분 8초 출전해 3.8점, 2.5리바운드, 0.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번 사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농구인들이 FA 제도 개선을 역설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농구팀 관계자 B 씨는 일부 구단에서 FA 제도를 악용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래전부터 탬퍼링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원소속팀과의 우선 협상 기간 자체를 없애야 한다. 물론 FA 선수들이 돈 많은 인기 구단으로 몰릴 수도 있지만 샐러리캡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 프로야구, 프로배구, 프로축구에도 없는 원소속 구단 협상 제도가 왜 프로농구에만 있어야 하나. 이번 일을 통해 FA 제도가 전면적으로 재검토 돼야 한다고 본다.”
또 다른 농구인은 선수의 권익 보호를 위해서라도 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선수는 구단에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프로야구, 프로축구처럼 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해 구단과 선수가 계약 문제로 얼굴 붉히는 일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