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보러 14개팀 이상 모여, 그중 일부는 ‘보스급’…“선발 고집 않으면 무조건 협상”
얼마 전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로 활발히 활약 중인 A 씨가 기자에게 보낸 문자 내용이다. 현재 한국에서 프리미어12 대회를 참관하며 김광현(SK·31)의 일거수일투족을 체크하고 있는 그는 미디어에 소개되고 있는 김광현과 SK의 반응을 면밀히 살피는 중이라고 말했다.
과연 김광현의 메이저리그행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SK는 선수가 팀에 남아주기를 바라고, 선수는 어릴 때부터 키워 온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을 이루고 싶어 하지만 양측 다 정확한 입장 표명을 미루고 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김광현은 7일 프리미어12 예선라운드 캐나다와의 경기에 등판해 7이닝 무실점으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현장에는 14곳이 넘는 메이저리그 팀 스카우트들이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연합뉴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A 씨는 김광현이 선발로 나온 2019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C조 예선라운드 2차전 캐나다전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김광현은 이날 경기에서 6이닝 동안 77개의 공을 던지면서 1피안타 2볼넷 7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최고구속 151km/h의 빠른 공과 날카로운 변화구로 캐나다 타선을 압도한 덕분에 한국 대표팀은 캐나다를 3-1로 꺾을 수 있었다.
경기가 열린 고척돔에는 이례적으로 많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등장했다. 어쩌면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김광현의 마지막 등판이라는 의미도 부여됐다. 텍사스 레인저스, 시애틀 매리너스, LA 다저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마이애미 말린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 14개 팀의 스카우트들이 고척돔에 모인 것이다. 이들이 모두 김광현만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 중에는 캐나다 선수들을 관찰하려고 고척돔을 방문한 스카우트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광현이 모든 투구를 마치고 차우찬에게 마운드를 물려줬을 때 자리를 뜨는 일부 스카우트들도 눈에 띄었다는 후문이다.
일요신문에서는 앞서 언급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A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김광현 관련된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봤다. 다음은 A 씨와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캐나다전에 선발로 나온 김광현의 투구가 인상적이었나.
“올 시즌 김광현 선수의 모든 경기를 직접 현장에서 지켜봤다. 다른 스카우트들처럼 빅게임에만 온 게 아니라 김광현이 선발로 등판한 전 경기를 체크했기 때문에 캐나다전이 더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올 시즌 김광현은 마운드에서 항상 좋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KBO리그에서의 모습과 국제대회에서의 투구 패턴에 큰 차이를 느끼진 못했다. 그러나 캐나다전에서는 노련한 경기 운영이 돋보였다. 처음에는 빠른 공과 슬라이더로 상대 타선을 공략하다 이후에는 커브로 상대의 허를 찔렀다. 그런 부분이 김광현의 가치를 높이는 것 같다.”
―캐나다전에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대거 모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14개 팀 이상의 스카우트들이 경기장을 찾았다고 하던데.
“스카우트들이 한 곳에만 몰려 앉은 게 아니라 포수 뒷자리와 3루 쪽으로 나뉘어 앉은 터라 정확한 숫자를 확인하진 못했지만 내가 확인한 스카우트들은 10개 팀 이상이었다. 서로 가볍게 인사만 나눴는데 그들이 김광현에게 갖고 있는 관심이 엄청나더라. 만약 김광현이 메이저리그 진출을 공식화한다면 우리 팀을 포함해 서너 팀과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어제 나타난 스카우트들을 보고 은근히 걱정이 되더라. 경쟁할 팀들이 더 많아진 듯해서.”
―소속 구단에서는 김광현 영입을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는 건가.
“내년 시즌 전력 보강을 위해 만들어 놓은 영입 리스트에 김광현이 포함돼 있다. 아마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선 그 많은 스카우트들이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캐나다전을 관전한 스카우트들이 모두 김광현한테만 관심을 보이는 건 아니라고 본다. 그중에는 캐나다 선수들을 보러 온 스카우트도 있을 테니까.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그게 무엇인가.
“내가 본 스카우트들 중에는 결정권자인 ‘보스’들이 눈에 띄었다. 즉 선수 영입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결정권자들이 김광현의 경기를 보러 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김광현이 모든 등판을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가자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경기장을 떠났다. 즉 그들은 김광현만 보러 온 것이다.”
―그만큼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진출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의미인데 메이저리그에서는 김광현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 팀에서는 김광현을 선발보다는 불펜으로 생각하고 있다. 김광현이 선발만 고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조건 협상 테이블에 나설 의향이 있다. SK가 김광현을 내보낸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김광현은 선발보다 불펜에서 더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내년 시즌 불펜에서 뛰게 된다면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김광현을 상대로 고전할 것이 분명하다. 다양한 구종을 갖고 있고 빠른 볼과 커브의 구속 차가 크고, 안정된 제구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광현이 선수들과 잘 지내고 환경에 적응만 잘한다면 메이저리그 진출 첫 해부터 좋은 모습을 보일 것이다. 장기 계약은 어렵겠지만 2~3년 계약을 맺게 된다면 연봉 300만에서 400만 달러의 가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 메이저리그 통계 사이트인 팬그래프닷컴은 FA 상위 50인에서 김광현을 41위에 올리며 계약 규모로 2년 1580만 달러(약 182억 원)를 전망했다.
“걱정이 많다. 우리 팀이 책정한 금액과는 차이가 있는 편이라서. 팬그래프닷컴은 김광현의 가치를 1년 600만 달러 이상으로 보더라. 만약 여러 팀이 영입에 나선다면 경쟁이 치열해질 수도 있다. 그동안 김광현 영입을 위해 많은 공을 들였고 다양한 자료도 만들었는데 금액 경쟁에서 밀릴까봐 고민이 되는 게 사실이다. 선수, 에이전트 입장에서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영입 시장에서 발을 뺄 수도 있다.”
―김광현을 불펜으로 영입하고 싶다고 말했다. 왜 선발이 아닌 건가.
“현재 우리 팀에 불펜 자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김광현이 처음에는 불펜에서 적응기를 갖고 그 이듬해부터 선발로 나서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고 본다. 물론 루틴 등 혼란스러운 면도 있겠지만 불펜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다면 팀 사정에 따라 선발로 올라서는 게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김광현은 지난 2018 시즌 소속팀 SK 와이번스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바 있다. 사진=연합뉴스
―만약 SK가 김광현 선수를 보내지 않겠다고 하고 내년 시즌 이후를 약속한다면 2021시즌에 김광현이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건 가능하다고 보나.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때 김광현의 나이는 33세다. 에이징 커브를 염려할 수 있는 나이라 지금처럼 김광현이 좋은 평가와 대우를 받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확률은 극히 낮다. 팀 우승을 위해 김광현을 데리고 있어야 한다는 구단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선수가 SK를 위해 헌신했고, 선수의 꿈이 간절하다면 여론에 떠밀려서가 아닌 구단이 먼저 김광현 선수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 게 맞다고 본다. KBO리그 투수들 중 김광현, 양현종 말고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는 선수가 얼마나 되겠나.”
현재 김광현 관련된 기사의 댓글은 대부분 SK 구단을 향한 메시지들로 가득 차 있다. 무조건 김광현을 보내주라는 내용들이다. SK 구단은 프리미어12를 마친 후 김광현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