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단열제 제작 부실” vs LG전자 “음용에 문제 없어”
최근 가정용 정수기에 곰팡이가 피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최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곰팡이 정수기’의 실상을 고발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소비자들은 사용 중인 가정용 정수기 내부에 곰팡이가 가득하다며 불편을 호소했다. 해당 내용에 따르면 장기간 렌탈 서비스로 정수기를 이용하고 있는 소비자들이 정수기의 뚜껑을 열었는데, 그 내부에 곰팡이가 가득 피어 있었다는 주장이다. 거론된 정수기들은 LG전자 정수기가 주를 이루며, 그 외에는 SK매직, 웅진코웨이 등이다.
소비자들은 “정수기 뚜껑을 열어보니 검은 곰팡이가 가득하다”, “곰팡이에서 냄새도 난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불만 글이 집중됐던 시기인 10~11월 사이, 한국소비자원에도 이에 대한 신고가 쏟아졌다. LG전자 정수기의 곰팡이에 대한 상담건 수는 지난 1~9월 8건이었는데, 이슈가 된 10월 23일부터 하루에 20~30건씩 신고가 접수됐다. 그 외에 청우나이스는 35건, SK매직은 16건, 타사는 10건 이하로 알려졌다. 소비자원은 업계를 대상으로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LG전자 정수기의 경우, 곰팡이는 정수기 내부 스티로폼 표면에 나타났다. 냉각수탱크를 차갑게 유지하기 위한 단열재로 스티로폼이 사용되는데, 스티로폼 안팎의 온도차에 따라 결로가 생기며 곰팡이로 번진 것이다. LG전자 측은 “어느 정수기에나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제조사와 상관없이 다른 제품에서도 생길 수 있는 곰팡이고, 가정의 공기 환경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SK매직과 웅진코웨이는 선을 그었다. SK매직은 “우리 제품은 기계 결함의 문제가 아니라 조리 과정 등에서 물이 튀며 외부에 생기는 곰팡이 정도가 전부”라며 “클레임 들어온 것은 2~3건이 전부인데 이들 모두 안전도 확인을 위한 검사를 요청한 것 정도일 뿐”이라고 말했다. 웅진코웨이 역시 “우리 제품에는 건조를 위한 팬이 공기 흐름을 만들고, 부착된 흡수제가 수분을 흡수시킨다”며 “만약 곰팡이가 생긴다면 가정의 습도가 높거나 사용하며 물이 튀어 들어가는 경우”라고 밝혔다. 각 업체의 정수기에서 곰팡이가 발생하는 것은 공통적이지만, 발생의 원인과 기전은 다르다는 의미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제작이 부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단열을 하려면 두껍고 품질이 좋은 스티로폼을 사용하고, 냉각수탱크에 잘 밀착시켰어야 했는데 그 부분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 곰팡이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웅진코웨이에서 ‘팬으로 건조시킨다’고 주장한 부분에 대해 이 교수는 “통풍, 건조와 전혀 상관없다. 단열제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생활가전 업계 한 관계자는 “보통의 정수기들은 단열제를 부분적으로만 사용하는데 LG전자의 제품에선 내부의 상당 부분을 단열제로 둘러싸 놓았다”며 “결로 실험에서 부족함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수기 내부 스티로폼 표면에 곰팡이가 핀 모습.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위해성에 대한 부분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LG전자 측은 “곰팡이가 물이 흐르는 직수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음용수의 위생과 관련 없다”고 밝혔다. 정수기의 물이 곰팡이이 때문에 직접적으로 오염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가정에서 사용하는 제품에 곰팡이가 피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곰팡이가 악취를 유발할 수도 있고, 곰팡이가 포자를 퍼뜨려 호흡기 질환 또는 피부염 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종태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는 “결로와 곰팡이 등의 발생은 직수관 내가 아니더라도 위생적으로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며 “다행히 음용수 채취 과정에 직접 오염되는 것은 아니지만, 실내공기 오염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제작사는 이런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고 구조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업체들은 이후 불만이 접수된 가정을 직접 방문해 A/S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대책을 세웠다. 특히 LG전자는 단열 성능을 강화하고 습기를 예방하기 위해 부착형 단열재를 추가하겠다고 밝혔고, 정수된 물에서 곰팡이 균 검출 검사도 실시했다. 두 곳의 연구원에 의뢰한 결과, 곰팡이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LG전자는 정수기에 결함 또는 하자가 없기 때문에 서비스 무상해지를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위약금을 내야만 해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고시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어긋날 수 있다. 정수기는 ‘물품대여서비스업(렌탈서비스업)’에 해당되는데, ‘이물질 혼입 및 수질이상’의 경우 제품교환 또는 위약금 없이 계약 해지를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사업자의 귀책사유로 인한 장애 발생’, 즉 품질의 현저한 악화로 물품 관리 및 유지가 곤란한 경우에는 등록비 상당의 손해배상을 소비자에게 반환한다고 기준을 밝히고 있다. 소비자는 위약금 지불 없이 계약 해지를 요구할 수 있는 셈이다. 물론, 이 기준은 법적 효력이 없고 강제성이 없는 ‘가이드라인’ 수준이다. 다만 판매처에서 해당 내용을 명시한 바 있다면 그때는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된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