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 ‘비공개’ 입대 100여명 운집…“제주 입소기간 18일로 짧아 육지에서 많이 와”
손흥민이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기 위해 지난 20일 오후 해병 제9여단(백룡부대)에 입소했다. 사진=연합뉴스
#예술체육요원 자격 얻기까지
예술체육요원 자격을 얻은 손흥민이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기 위해 훈련소에 입소했다. 손흥민은 지난 20일 오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해병 제9여단(백룡부대)으로 향했다. 3주간의 훈련 이후 사회로 복귀할 예정이다.
2010년 프로 1군 무대(함부르크 SV 소속)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손흥민의 병역 문제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유럽 커리어가 중단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축구선수로서 전성기 나이에 새로운 환경에 놓이는 것(현역 복무)이 치명적일 수 있었다.
그간 예술체육요원 자격을 얻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번번이 좌절되며 그의 병역을 향한 관심이 극에 달했다. 2012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당시 홍명보 U-23 대표팀 감독은 손흥민을 팀에 합류시키길 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주전 기용 등을 놓고 갈등이 빚어졌고 최종적으로 대회에 합류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손흥민이 빠진 대표팀 구성원 18명은 동메달을 목에 걸며 병역혜택을 받았다.
기회는 2014년에도 있었다. 아시안게임이 대한민국의 홈인 인천에서 열려 어느 때보다 금메달 획득 가능성이 컸다. 이번엔 소속팀이 가로막았다. 바이어 레버쿠젠이 손흥민의 차출을 반대했다. 반면 손흥민의 동갑내기인 1992년생 선수들이 주축(이재성, 김승대, 이종호 등)이었던 대표팀은 금메달을 목에 걸며 웃었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선 그가 스스로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었다. 당시 대표팀을 이끌던 신태용 감독은 손흥민을 와일드카드(24세 이상 선수)로 선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8강에서 도전을 멈추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
손흥민은 2018년에서야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주장 완장을 달고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이다. 현역병이 아닌 예술체육요원으로 복무할 기회를 얻어냈다. 소속팀 토트넘 홋스퍼도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손흥민은 2016 리우 올림픽 8강 온두라스전 패배로 눈물을 흘렸다. 사진=연합뉴스
#해병대로 향한 손흥민
코로나19 여파로 프리미어리그가 중단된 시점, 손흥민의 훈련소 입소 소식이 들려왔다. 행선지가 제주도였기에 더욱 주목을 받았다.
예술체육요원으로 복무할 경우 4주간의 군사훈련을 받는다. 소위 ‘공익’으로 불리는 사회복무요원과 같은 과정이다. 육군훈련소, 제36보병사단, 제31보병사단 등 육군부대가 대다수인 훈련소와 달리 제주에 위치한 백룡부대는 해병대식 훈련을 실시한다. 이곳은 훈련 기간이 18일로 짧다는 특징이 있다. 일명 ‘빨간명찰’을 다는 일반 해병대 신병 양성 과정인 7주에 비해서도 현저히 짧다. 지난 20일 입소한 손흥민은 오는 5월 8일 퇴소한다.
손흥민은 비록 3주 훈련이지만 해병대의 상징인 ‘빨간 명찰’을 달게 됐다. 사진=김상래 기자
손흥민은 제주도에서 어떤 훈련을 받을까. 해병대사령부, 교육훈련단, 9여단 측 모두 “훈련 내용에 대해서는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사령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군인으로 복무할 수 있는 내용인 제식, 사격, 행군, 각개전투 등이 포함돼 있다”고만 밝혔다. 통상적으로 사회복무요원 군사훈련(4주 과정)의 경우 제식, 개인화기, 수류탄, 화생방, 행군, 각개전투 등의 훈련이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훈련마다 훈련병의 체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실시되며 수류탄은 연습용 수류탄, 사격은 M16 소총을 사용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야외숙영은 생략된다.
손흥민은 훈련이 끝나면 해병대의 상징 ‘빨간 명찰’을 달 것으로 보인다. 해병대사령부 관계자는 “빨간 명찰 수여식의 경우 더 짧은 기간 이뤄지는 해병대 캠프에서도 진행되는 상징적인 의식이다. 9여단(제주)에서 훈련을 받더라도 빨간 명찰 수여식은 진행된다”면서 “이외에도 정신교육 시간에 해병대의 역사와 전통 등에 관한 교육이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손흥민이 입소한 지난 20일 해병9여단 입구에선 오전부터 취재진이 대기했다. 사진=김상래 기자
손흥민의 제주도행 소식이 알려지고 난 후 손흥민 측은 입소 현장에 인파가 몰리는 것을 경계했다. 손흥민 매니지먼트사 손앤풋볼리미티드는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협조하기 위해 비공개 입소를 결정했다”면서 “현장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손흥민의 입소 당일, 오전부터 해병9여단 훈련소 입구는 취재진이 몰렸다. 슈퍼스타의 입소에 제주지역 언론, 방송사, 통신사, 축구전문지 등 다양한 언론사가 현장을 찾았다. 한 취재진은 “언제 손흥민이 입소할지 몰라 오전 9시부터 기다렸다”고 전했다.
부대에서도 이른 시간부터 입구 통제에 신경을 썼다. 수시로 부대 관계자가 취재진에 주의 사항을 전달했다. “입소식은 오후 2시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된다. 입소자들은 2시 이전까지 도착해야 한다”면서도 손흥민의 입소 시간이나 형태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손흥민을 포함한) 오늘 입소자들은 부대 내부까지 차량을 타고 들어온 후 하차하는 방법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오가 넘어서자 머리를 짧게 깎은 입소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이들은 군사훈련을 앞두고 긴장을 하면서도 손흥민과 훈련소 동기가 된다는 사실에 기대감도 드러냈다. 다수의 입소자가 도착 이후 부대 내로 곧장 향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사회의 공기’를 마시려는 듯 외부에서 대기했다. “손흥민을 보고 들어가겠다”는 입소자도 있었다.
입소자나 입소자 가족이 아니지만 손흥민을 직접 보려는 팬들도 몰렸다. 손흥민의 입소 소식이 공개된 순간 직장에 휴가를 냈다는 이도 있었고 손흥민의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나타난 어린이팬도 있었다. 이들은 한 입으로 “제주도에선 손흥민을 직접 볼 기회가 많지 않다. 퇴소하는 날도 이곳을 찾을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손흥민은 이날 국산 SUV 차량을 타고 나타났다. 사진=김상래 기자
손흥민은 1시 45분께 별다른 절차 없이 곧장 부대로 들어갔다. 흰색 국산 SUV 차량이 한라산 방면에서 달려와 대정고 교차로에서 미끄러지듯 좌회전하면 부대 안으로 향했다. 대기 중이던 인파는 이 차량이 손흥민을 태운 차량임을 직관적으로 느꼈다.
육안으로는 손흥민을 확인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부대 내부 깊숙한 곳에서 입소자들의 하차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고성능 카메라를 보유한 일부 사진 전문 취재진도 급박하게 셔터를 누른 이후 결과물을 놓고 손흥민을 구별해야 할 정도였다.
제주=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