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균열 가능성 제기된 가운데 흔들리는 신흥국 경제도 뇌관
다만 악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산가격 상승은 계속될 전망이다. 경제의 난제를 풀기 위해서는 통화량 확대와 초저금리 유지가 불가피한데, 결국 유동성이 향할 곳은 인플레이션 헤지가 가능한 자산시장이 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달러와 금과 같은 안전자산과 함께 코로나19 이후 유망할 바이오와 ‘언택트(Untact)’ 관련주들에 돈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 공포가 가시지 않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다시 터진 재정위기 앞 유로존 균열
지난 5월 5일 독일 헌법재판소는 유럽중앙은행(ECB)의 경기부양 정책에 대해 일부 위헌 판결을 내렸다. ECB의 공공채권매입프로그램(PSPP)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회원국의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 적절한 조치인지 확실치 않다는 이유다. ECB가 3개월 안에 PSPP가 정당하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는 이 프로그램에 돈을 댈 수 없게 된다.
PSPP는 ECB가 유로존 국가들이 발행하는 국채 등 공공 채권을 매입한다. 경기부양을 위한 자금을 각국에 빌려주는 장치인 셈이다.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인 만큼 분데스방크는 가장 많은 돈을 댔다. 그런 독일이 빠지면 사실상 프로그램이 무력화될 수 있다.
분데스방크는 PSPP를 여전히 지지한다는 입장이다. 당장은 PSPP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독일 헌재의 이번 판결은 2018년 PSPP의 정당성을 인정한 유럽사법재판소(ECJ)의 결정과 배치된다. 즉 유로존의 역할에 대해 회원국 법원이 제동을 건 셈이다. 코로나19로 회원국 내 공조가 절실한 상황에서 오히려 유로존 분열 우려가 커지면 브렉시트 당시와 같은 불안이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
올해 유럽연합(EU) 경제성장률 전망은 -7.4%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5000억 유로 규모의 규제조치에 합의는 했지만, 실행이 더디다. 경제가 강한 독일과 네덜란드는 대출 형식을, 경제가 약한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은 보조금 형태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내에서는 유로존의 가난한 나라를 돕는데 자국의 부(富)가 쓰이는 것을 두고 반감이 적지 않다. 게다가 ECB를 이끄는 것도 20년 가까이 프랑스와 이탈리아 관료 출신들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 재정위기 때는 마리오 드라기, 이번 코로나19 위기에서는 크리스틴 라가르드가 이끌고 있다.
반대로 유로존에서 가장 경제난이 심각한 이탈리아는 재정정책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ECB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이 시선의 바탕에는 유로존 내에서는 독일이 단일 통화권의 수혜를 가장 많이 입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깔려 있다. 일례로 유로화 약세로 수출이 강한 독일이 가장 큰 덕을 보고 있다는 논리다. 재정위기 때 드러났던 유로존 균열 조짐이 코로나19로 다시 불거지는 모습이다.
#무너지는 신흥국 경제
코로나19는 원자재 수출과 위탁생산 등으로 경제를 지탱해 온 신흥국 경제에 치명타를 가했다. 글로벌 자금이 이탈하고, 무역 중단으로 달러 공급이 막히면서 외채가 급증했다. 빚을 갚지 못해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국가가 100곳이 넘는다. IMF는 이미 25개국에 채무상환을 유예했고, G20 국가들의 동의를 받아 76개국에 대해서는 채무 동결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빚은 존재하고, 이들 나라의 경제는 예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코로나19로 경제활동의 밀도가 낮아지면서 원자재 소비가 획기적으로 늘어나기는 쉽지 않다. 싼 인건비를 찾아 전 세계에 흩어졌던 생산시스템을 자국 내로 이동하려는 공급망 변화도 진행되고 있다.
미국이 경제부양을 위해 계속 달러를 찍어내고 있지만, 오히려 경제 강국들과 자산가들이 달러를 사재기하고 있다. ‘달러 벌이’가 어려운 신흥국 통화가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통화가치 하락은 빚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게 된다.
신흥국 경제가 쇠락하면 결국엔 선진국 기업들도 소비시장을 잃게 된다. 생산성과 효율이 하락하면 임금이 낮아지고, 상품가격은 오르게 된다. 일자리를 지키려면 경쟁력이 약화된 기업들이라도 살려야 하고, 이를 위해 초저금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생산 부문의 효율이 떨어지면 돈은 자산시장으로 쏠릴 가능성이 크다. 유동성 효과로 자산가격이 상승하면 자산가는 더 많은 부를 갖게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진행된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관심을 가질 곳이 러시아다. 이미 미국의 경제제재로 타격이 작지 않은데, 최근 사우디와의 유가전쟁으로 재정부담이 더욱 커졌다. 경제난으로 여론이 악화되면서 푸틴 대통령의 종신집권을 위한 국민투표도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군사강국인 러시아가 경제난에 봉착한다면 군사적 갈등이 높아질 수도 있다.
#우려되는 빚의 역습
최근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기업 국유화에 논란이 커지고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민간의 빚 부담 때문이다. 각국에서 코로나19로 천문학적 금융지원을 수행하고 있지만 거의 대부분이 대출 형태다. 정상적인 매출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인건비와 각종 고정비를 감당하기 위해 돈을 빌리게 되면 부채비율은 더욱 높아진다. 이른바 좀비 기업이 된다. 불어난 이자비용을 감당하려면 매출이 늘거나, 수익성이 개선돼야 한다. 코로나19로 생산효율을 높이기는 이미 어렵게 됐다.
초저유가로 치명타를 입은 셰일가스 업체 등을 비롯해 기업부채 문제가 심각한 미국에서는 금융지원을 대출에서 투자로 전환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부채가 아니라 자본 형태로 돈이 투입되면 재무건전성이 강화되고, 향후 경영이 정상화될 경우 성과도 공유할 수 있다. 하지만 투자가 되면 손실의 위험도 높아진다. 금융지원이 절실한 곳일수록 경쟁력이 약한 기업일 가능성이 크다. 경쟁력 자체가 한계에 도달한 기업에는 추가로 자본을 투입해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실패시 재정부담이 크다.
이미 미국 정부의 올해 부채 증가는 천문학적이다. 2분기 순차입액만 3조 달러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75배,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의 9배 규모다. 하반기에도 추가 차입이 예정돼 있어 올 연간으로는 4조 5000억 달러로 예상된다. 국내총생산(GDP)의 20%를 넘는다. 기업 실적 악화로 세수는 주는데 나라 빚만 늘어나는 꼴이다. 국채 부담을 줄이려면 초저금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자산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나마 미국은 기축통화국이어서 통화 발행에 대한 부담이 적다. 미국 외 국가들도 경기부양을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 있어 향후 나라 빚 부담이 더 커질 전망이다. 특히 국채를 국내 자금으로 소화해내지 못한다면 외채 증가로 국가 부도 위험을 키울 수도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