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노스캐롤라이나 팬 ‘접수’하고 파워랭킹도 상승…팬 친화적 야구문화에 야구종가 미국도 ‘감동’
지난 5월 5일 개막한 KBO 리그는 무관중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ESPN에서 중계가 되며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계 최고 수준과 규모의 프로야구 리그를 운영하는 미국, 그 안에서도 가장 유명한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이 ‘KBO 리그 경기를 매일 한 게임씩 중계한다’는 소식은 한국 야구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유니폼을 입은 현장 관계자들뿐 아니라 구단 프런트, 취재진, 야구팬들까지 매일 ESPN 중계 이야기로 꽃을 피웠고 수많은 기사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미국 팬들의 실시간 반응이 대거 소개됐다.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뛰는 한국인 선수들의 활약을 보기 위해 새벽에 눈을 떠야 했던 한국 야구팬들 입장에선 미국 야구팬들이 한국 야구를 보러 밤늦은 시간 TV 앞에 앉는다는 사실 자체가 격세지감으로 느껴진 듯하다. 실제로 미국 팬들은 “생중계되는 야구를 보는 것만으로도 반갑다” “지금 나는 한국 야구 경기에 매료됐다. 생동감 있는 야구를 기다려왔다”는 소감과 함께 KBO 리그 중계를 반겼다.
#ESPN 파워랭킹에 울고 웃은 팀은?
미국 내 중계권을 구입한 ESPN은 상당히 공을 들여 KBO 리그를 소개하고 있다. 개막 첫날 대구 삼성 라이온즈-NC 다이노스 전이 미국 동부시간으로 오전 1시 ESPN2 채널을 통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됐고, 이후에도 전담 해설자를 배치해 꾸준히 한 경기씩 내보내고 있다. 또 KBO 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로 뛰었던 여러 인물을 섭외해 인터뷰를 진행하고, 하이라이트 영상도 제작하는 열성을 기울였다.
현지 팬들의 관심도 높다. 미국 야후스포츠는 KBO 리그 개막 시점에 ‘ESPN이 중계하는 2020시즌 KBO 야구를 보겠는가?(Will you watch the KBO in 2020?)’라는 온라인 설문 조사를 진행했고, 응답자의 85%가량이 “보겠다”는 쪽에 투표했다.
야후스포츠는 이와 관련해 “방탄소년단이 앞장선 ‘K-팝’과 영화 ‘기생충’ 신드롬으로 대표되는 ‘K-무비’에 이어 ‘K-베이스볼’도 미국에 상륙했다”고 의미를 뒀다. 또 “KBO 리그는 지난해 평균 타율이 0.267로 0.252인 메이저리그보다 타자 친화적인 리그”라고 소개하면서 “무엇보다 KBO 리그는 다양한 ‘배트 플립(타격 후 배트 던지기)’이 이뤄지기에 멋진 세리머니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개막과 동시에 매주 공개하기 시작한 ‘KBO 리그 파워랭킹’도 흥미를 높이는 요소다. 일단 ESPN은 개막 전 사전 순위에서 지난해 한국시리즈 준우승팀 키움 히어로즈를 1위로 예측했고, 강력한 외국인 원투펀치를 앞세운 LG 트윈스와 지난 시즌 통합우승팀 두산 베어스를 각각 2위와 3위에 올려놓았다.
이어 김광현이 빠진 SK 와이번스를 4위, 한 번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막내 구단 KT 위즈를 5위로 꼽았다. 그 뒤로는 6위가 NC 다이노스, 7위가 삼성 라이온즈, 8위가 롯데 자이언츠, 9위가 KIA 타이거즈, 10위가 한화 이글스 순이었다.
실제로 KBO 리그 경기를 일주일 지켜본 뒤에는 이 파워랭킹에 변동이 생겼다. 1위는 여전히 키움이다. 강력한 타선의 위력이 여전한 데다 일주일 동안 3세이브를 올린 마무리 투수 조상우의 위력을 다시 확인한 터다. ESPN은 “조상우가 키움 불펜의 마지막 주자로 나서 세 차례 세이브 기회를 모두 살렸다”며 ‘뒷문’을 키움의 강점으로 평가했다.
#드라마틱한 순위 변동 ‘롯데 자이언츠’
가장 눈에 띄게 순위가 바뀐 팀은 개막 5연승 행진을 벌인 롯데다. 개막 첫 주 5경기를 모두 승리로 장식하면서 예상 8위에서 5위로 세 계단이나 뛰어 올랐다. ESPN은 “지난해 최하위에 머문 롯데가 개막 첫 주 팀 평균자책점 3.13으로 이 부문 1위에 올랐고 쾌조의 출발을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롯데의 첫 일주일은 완벽했다. 투수진뿐 아니라 팀 타율 3위(0.295)의 타선도 충분히 제 몫을 했다. 내야수 안치홍과 외국인 타자 딕슨 마차도가 가세한 수비도 안정적이었다. 다만 둘째 주가 시작되자마자 두산을 만나 기세가 다소 꺾였다. 다음 파워랭킹이 달라질 수도 있는 이유다.
개막전 3위로 꼽혔던 두산은 2위로 올라섰다. 선발진도 그다지 강력하지 못했고 불펜이 크게 흔들려 위기를 맞았지만, 타선의 집중력과 폭발력을 앞세워 3승을 올린 덕이다. 외국인 타자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는 여전히 두산 타선의 핵으로 활약하고 있다. ESPN은 “지난해 타율 0.344를 찍은 쿠바 출신 페르난데스가 첫 5경기 타율 0.591(22타수 13안타)로 이 부문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썼다.
NC는 6위에서 4위로 올라 5강에 진입했다. ESPN은 “NC 선발 드루 루친스키와 구창모가 12이닝 무실점을 합작했다”며 “견고한 선발진 덕에 개막 4연승 행진을 벌였다”고 리뷰했다. 이뿐 아니다. NC 간판타자 양의지와 나성범은 ESPN이 가장 주목하는 한국 타자로 떠올랐다.
ESPN 해설자인 에두르아르도 페레스는 “가장 주목하는 선수는 NC 양의지와 나성범”이라며 “둘은 타석에서 차분함을 유지하고, 안정감 있게 타격한다”고 높이 평가했다. 또 소프트볼 스타플레이어 출신이자 최초의 여성 메이저리그 해설자인 제시카 멘도사는 KBO 리그 경기를 중계한 뒤 양의지를 가장 주목할 만한 선수로 꼽으면서 “뛰어난 타격을 하지만 수비력이 떨어지는 선수가 많지 않나. 공격을 선호하는 KBO 리그에서도 수비력이 부족한 선수들이 눈에 띈다”며 “양의지는 공수를 겸비한 선수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반대로 순위 하락을 면치 못한 팀들도 있다. LG는 2위에서 3위로, SK는 4위에서 6위로 각각 떨어졌다. ESPN은 “LG가 지난 10일 NC전에서 0-6으로 뒤지다 10-7로 역전했다”며 반등의 요소를 찾았지만, SK에 대해선 “일주일간 17득점에 그치는 공격력으로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다”고 지적했다.
KT 역시 선발진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면서 5위에서 7위로 떨어졌다. 8위부터 10위까지는 ‘삼성→KIA→한화’ 순으로 평가가 유지됐다. 세 팀이 나란히 개막 첫 주 6경기서 2승 4패를 기록한 탓이다.
이정후 박병호 등 스타들이 이끄는 키움은 ESPN 파워랭킹에서 개막 이전부터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불 뿜는 로봇 비룡” 팬 친화적 KBO 문화 ‘감동’
미국 야구팬들 사이에선 이미 여러 차례 관심을 모은 ‘배트 플립’ 외에도 KBO 리그를 둘러싼 화젯거리가 만발하고 있다. 삼성과 개막전이 ESPN을 통해 생중계 된 NC는 가장 큰 수혜를 본 구단 중 하나다. 드루 루친스키, 에런 알테어 등 미국 야구팬들에게 익숙한 전직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뛰고 있는 데다 나성범도 내년 시즌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는 타자라는 내용이 소개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특히 인구 10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주 야구팬들은 ‘NC’라는 이름이 노스캐롤라이나의 이니셜과 같다는 이유로 “우리의 팀을 찾았다”며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구단 SNS에 노스캐롤라이나주 야구팬들이 대거 몰려 응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탬파베이 레이스 산하 마이너리그 트리플A팀이자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을 홈으로 하는 더럼 불스는 구단 SNS 계정을 통해 “우리는 이제부터 KBO 리그 NC를 응원할 것이다. 이제 이곳을 NC의 팬 계정이라 여겨도 좋다”고 공식 선언하기도 했다. 또 NC와 노스캐롤라이나주를 연결한 ‘밈(Meme·온라인에서 유행하는 문화 콘텐츠 놀이)’이 각종 SNS를 통해 넘쳐나고 있다.
NC 구단은 이 같은 현상을 반기면서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구단 SNS 계정에 “전 세계 야구팬들을 환영한다”며 구단의 새로운 로고를 홍보했고, “상업적인 용도로만 사용하지 않는다면 자유롭게 써도 괜찮다”며 구단 이미지 파일을 온라인상에 배포했다. 또 전광판을 통해 노스캐롤라이나주 팬들을 향한 환영 메시지를 띄우고, 구단 SNS에 영문으로 된 선발 라인업을 업로드하면서 ‘글로벌 팬 모으기’에 앞장섰다.
KBO 리그의 팬 서비스도 현지의 관심을 받고 있다. 야후스포츠는 ‘KBO 리그의 팬 친화적인 문화를 메이저리그가 배워야 한다’는 취지의 기사를 통해 “메이저리그도 ‘배트 플립을 하지 말아야 한다’ 같은 불문율들을 포기하고 좀 더 재미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구 종가인 미국이지만 메이저리그의 인기가 이미 미식축구(NFL)에 밀린 데다 팬도 장년층과 노년층에 집중된 점을 꼬집은 것이다.
ESPN 중계를 유심히 본 이 매체는 “한국 야구에는 타자들의 배트 플립뿐 아니라 다 함께 노래 부르고 선수의 이름을 외치는 팬들의 응원, 치어리더 응원, 구단 마스코트 춤 경연, 불 뿜는 로봇 비룡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많다. 팬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며 “한국에서 야구는 전통보다 팬을 우선으로 여긴다. 그래서 훨씬 경쾌하고 흥미롭고 즐겁다”고 호평했다. 또 현지에서 사실상 ‘한국 야구 홍보대사’로 활약하고 있는 조쉬 린드블럼(밀워키 브루어스·전 두산)이 “한국에 있을 때 가장 즐겁게 야구를 한 것 같다. 야구장에 있는 것 자체로 즐겁다”고 말했다는 점도 덧붙였다.
#ESPN 중계진 “콘택트 위주 타격 KBO 리그”
KBO 리그의 야구 그 자체도 미국 야구계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KBO 리그 경기를 전담 중계한 에두아르도 페레스는 최근 미국 경제지 포브스와 인터뷰에서 “ESPN이 KBO 리그 해설 제의를 했을 때 한국으로 가서 중계하는 줄 알고 짐을 싸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내 차고에 영상 수신 장치와 방송 장비 등이 설치돼 있다”며 “이런 방식으로 중계할 줄은 정말 몰랐다. 집에서 차고가 떨어져 있는 편이라서 매일 출근하는 기분”이라고 현지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사실 KBO 리그에 대해 잘 몰라서 지명타자 제도나 연장 12회를 비롯한 리그 규정을 새롭게 배웠다”며 “KBO 리그 최우수선수 출신 린드블럼과 에릭 테임즈(워싱턴 내셔널즈)에게 한국 야구에 대해 많이 배웠다. 그들이 얼마나 한국 야구를 존중하는지도 알게 됐다”고 털어 놓았다. 페레스는 또 한국 야구를 “홈런에 의존하기보다 히트앤드런(치고 달리기) 작전을 많이 내고 콘택트 위주의 타격을 하는 리그”로 정의하면서 “한국이 올림픽이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 같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이유가 이것 같다”고 분석했다.
페레스는 이후 한국 언론 인터뷰에서는 KBO 리그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들 가운데 LG 외국인 타자 로베르토 라모스를 가장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라모스가 KBO 리그의 스타가 될 것 같다”며 “새로운 리그에서도 크게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또 KIA 김선빈과 삼성 김지찬처럼 메이저리그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키 작은 선수’에게 흥미를 보이면서 “김선빈은 타석에서 볼을 잘 고르고, 김지찬은 나를 팬으로 만든 선수”라고 했다. 무엇보다 한국 선수들이 “눈으로 공을 보고, 빠르게 반응해 치거나 잡아내는 능력(hand-eye coordination)이 뛰어나다”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페레스와 함께 중계를 맡은 ESPN 캐스터 칼 래비치는 “NC 3루수 박석민과 김태진이 각각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3루수 놀란 아레나도(콜로라도 로키스)와 앤서니 랜든(LA 에인절스)을 연상시킨다”고 극찬했고, 다른 캐스터 존 샴비는 “NC의 구창모, 양의지, 나성범이 눈에 띄었고 KIA 양현종이 등판한 경기를 보고 싶다”고 했다.
이들은 또 입을 모아 “KBO 타자들의 적극적인 주루, 기대 이상의 수비력, 홈런을 노리면서도 삼진은 많지 않은 점 등이 신선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한국의 일부 관계자들과 언론은 메이저리그와 KBO 리그의 수준 차를 걱정했지만, 정작 미국 전문가들은 메이저리그에서 보기 힘든 한국 야구만의 매력을 발견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