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 전망 우세하나 KB증권 펀드 부실 등 ‘변수’
임기 만료를 5개월 앞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거취를 두고 금융권의 관심이 쏠린다. 윤종규 회장이 1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은 모습. 사진=최준필 기자
KB금융은 오는 6월 말부터 회장추천후보자 명단을 작성하기 시작해 7~8월 롱리스트 선정 작업을 끝낼 예정이다. 9월 회장추천위원회(회추위)를 열고 숏리스트를 확정한 뒤 평가·면접 등 심사를 거쳐 윤 회장 임기가 끝나는 11월 20일 전까지 차기 회장을 결정한다.
#실적 좋은 데다 사외이사 ‘우군’
윤종규 회장은 3연임을 염두에 두고 포석을 마련해왔다. 올 4월 푸르덴셜생명을 인수하며 보험업을 강화했고, 디지털 부문에서는 지난해 말 국내 금융사 최초로 금융과 통신을 결합한 알뜰폰 서비스를 출시했다.
올 4월 캄보디아 소액대출기관 프라삭 마이크로파이낸스를 인수하는 등 해외 사업도 확대했다. KB금융은 2008년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에 1조 원가량 지분 투자를 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현지 화폐 가치 폭락으로 실패를 겪었다. 이후 해외 사업에 소극적이었으나 업계 흐름에 따라 2016년부터 은행·증권·보험·카드 등 계열사를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있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그간 윤종규 회장의 3연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금융업계 중론이었다. 외부 평가도 나쁘지 않다. 윤 회장은 2014년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이 내분을 벌인 KB사태 직후 수장에 올라섰다. 그해부터 대표와 은행장을 겸직하며 내부 갈등을 봉합했고, 2017년 KB금융 회장 최초로 연임하며 조직 체계를 안정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울러 2015년 LIG손해보험, 2016년 현대증권, 올해 푸르덴셜생명 등 굵직한 M&A에 나서면서 사업을 다각화했다. 그 결과 KB금융 당기순이익은 2014년 1조 4151억 원에서 2017년 3조 3435억 원으로 역대 최고를 찍으며 리딩뱅크 자리에 올라섰다. 이듬해부터 다시 신한에 밀렸지만 꾸준히 성장한 점에서 윤 회장의 경영실적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회장 선임 주체가 윤종규 회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도 연임에 힘을 싣는다. KB금융 사외이사 7명은 그간 거수기 논란이 일 만큼 회장을 전폭 지지해왔다. 이번에 열릴 회추위가 사외이사 전원으로 구성되면서 차기 회장 선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조직 내 유력한 경쟁자도 없어 윤 회장의 연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기 만료를 5개월 앞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3연임을 앞두고 포석을 마련해왔지만 최근 KB증권 부실 펀드 사태가 커지면서 연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여의도 KB증권 영업부 건물. 사진=박은숙 기자
#윤 회장, 라임 사태 책임론 벗어날까
그러나 KB증권을 둘러싼 펀드 부실 사태 논란이 커지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라임자산운용과 관련해 판매사 KB증권에 대해 지난 5월 12일부터 6월 5일까지 본사 현장검사를 진행했다. KB증권이 라임운용의 자펀드를 판매하면서 기초자산인 모펀드의 부실 징후를 알고 있었는지, 그걸 알고서도 라임자산운용과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맺고 레버리지를 일으켜주며 투자자 손실을 키웠는지, 불완전판매는 없었는지 등을 조사했다고 알려졌다.
펀드 부실 사태가 연이어 터지고, 조직적 부정 의혹이 다수 제기된 만큼 그룹 전체 신뢰도 하락은 물론 윤종규 회장도 책임론을 벗어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KB증권은 라임과 해외부동산펀드 등 온갖 부실 사태에 복잡하게 엮여 있다. 이 문제가 지주사까지 타격을 주지 않도록 KB증권 차원에서 개인투자자들에게는 적극 배상해왔지만, 부실펀드에 대한 조사 결과가 조금씩 나오고 있어 문제가 하나둘 드러나면 사태는 더 심각해질 것”이라며 “금감원이 적극 단죄한다면 윤 회장도 그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했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펀드 손실 사태와 관련해 본인이 부당 행위를 지시했다면 책임을 져야 하기에 직접적인 개입 유무가 연임의 가장 중요한 변수”라고 했다. KB금융 관계자는 “계열사마다 대표가 있는데다 지주회장이 개별상품과 관련해 일일이 지시를 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의 입장도 연임 여부를 결정할 변수다. 은행들이 금감원 제재에 대해 잇달아 불복하면서 금감원 권위가 흔들리는 분위기였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가 지난해 말 키코 피해 기업에 배상 권고를 내리자 6개 은행 중 우리은행을 제외한 모든 곳이 수용하지 않았고, 올 초 DLF 사태에 대한 금감원 중징계에도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이 제재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냈다.
심지어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채용비리 혐의에 연루됐음에도 올 3월 주총에서 연임에 성공하자, 윤 회장 3연임도 수월할 것이란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최근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이 펀드 부실 사태 대응 과정을 살피고자 금감원을 조사한 결과 무혐의로 끝나면서 다시 금감원에 힘이 실리는 방향으로 판세가 바뀌고 있다는 후문이다.
앞의 IB업계 관계자는 “금융지주사들이 금감원에 대항하면서 금감원장 교체설까지 돌았지만, 최근 민정수석실 조사 결과 아무런 문제점이 없었고 민정수석실 감찰은 월권이었다는 비판까지 나오는 등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며 “다시 힘을 받은 윤석헌 원장이 펀드 부실 사태에 강경 대응한다면 KB증권 문제가 걸린 윤 회장 연임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고 귀띔했다.
KB증권이 각종 펀드 부실 사태에 휩싸인 상황에서 윤종규 KB금융 회장의 연임 성공 여부는 금융감독원의 부실 사태에 대한 대응에 달렸다는 의견이 나온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2019년 10월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는 모습. 사진=박은숙 기자
#M&A 광폭 행보에 ‘내실 경영’ 목소리도
윤 회장의 M&A 행보가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푸르덴셜생명을 2조 3400억 원이라는 거액에 인수했지만 지속된 금리 인하로 운용자산이익률이 하락해 역마진 우려가 커지고 있다. KB금융 노동조합도 이런 이유로 인수 전부터 반발했다가 최근엔 법정 다툼까지 벌이고 있다.
노조는 앞서 주주 권한으로 사측에 인수 당시의 이사회 의사록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으나 사측이 영업기밀이라며 거절하자 법원에 열람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사측은 지난 3일 변론기일에서 김앤장 변호인단까지 앞세워 강경 대응했다. 연임을 앞두고 잡음이 샐까 쉬쉬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서지용 상명대 교수는 “그룹에서 약한 보험업을 강화하는 차원이겠으나 너무 비싼 가격에 사들인 것이 나중에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며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시기에 마켓셰어를 위해 외연을 확장하는 모습을 보면 내실 다지기에는 성공적이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알뜰폰 사업도 연내 100만 명 가입자가 목표였지만 현재 가입자는 6만 5000명에 그치고 있다. 해외사업은 시작 단계다. 금융업계 다른 관계자는 “알뜰폰 출시 당시 강조했던 금융과 통신을 결합한 혁신은커녕 혜택이 단순 폰 요금 할인에 그치는 탓에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부족하다”며 “해외사업도 신한·우리·하나금융이 먼저 진출한 상태에서 뒤늦게 뛰어든 데다 소액대출 위주로 차별화된 비즈니스가 아니고 지금 같은 저금리 기조에선 전망이 더 어둡다”고 했다.
윤 회장에 대한 직원 평판도 좋지 않다. KB금융그룹 내 가장 큰 계열사 KB국민은행의 경우, 직원 1만 7000여 명 중 1만 4500여 명에 달하는 노동조합원을 대상으로 매년 설문조사한 결과 수익 우선 정책에 따른 낮은 직원 처우, 2017년 노조 선거 개입, 2018년 채용비리 의혹 등으로 윤 회장의 연임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KB금융 관계자는 “오히려 실적이 향상되고 KB금융의 위상을 높였다는 점에서 직원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안다”고 반박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