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들 머리박기·외출금지·빨래 전담·두발제한…고충 털어놓자 “참으라” 교수·조교 알고도 방치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철인3종 고 최숙현 선수 인권침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권위 결정문에 따르면 지난해 4월 한체대에서는 4학년이 신입생에게 전 학년 빨래와 생활관 청소 등 부당한 노동을 강요하고 폭언을 하는 등의 가혹행위가 있었다. 신입생 A 씨는 “자신이 소속된 운동부 주장과 4학년 선배들로부터 빨래, 생활관 청소, 머리박기, 외출금지, 휴대폰 야간 수거, 두발제한 등의 인권침해를 당해 학교에 알렸으나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며 지도교수와 조교를 인권위에 진정했다. 조교로부터는 “XX 새끼야”라는 폭언도 들었다고 주장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 A 씨가 소속된 운동부 1학년은 선배와 함께 쓰는 생활관 방을 청소하는 것은 물론 전 학년의 빨래까지 전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훈련 중 실수를 하면 선배들에게 집합을 당했다. 주장의 명령으로 일정 기간 생활관 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밤 10시 이후에는 강제로 휴대폰을 빼앗긴 사실도 있었다.
선수 보호의 의무가 있는 지도교수와 조교는 이를 알고도 방치했다. 인권위 결정문에 따르면 지난해 4월 A 씨는 지도교수에게 빨래와 청소 등의 고충을 종이에 적어 제출했다. 그러나 개선이나 시정조치는 없었다. 되레 같은 날 조교는 이들을 불러 모아 “참으라”고 말했다.
지도교수와 조교는 인권위 조사과정에서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A 씨가 지도교수에게 빨래와 청소 등의 고충을 적어 제출한 점 △같은 날 조교가 1학년을 불러 모아 참으라고 한 점 △지도교수가 이 종이를 보관하고 있다가 인권위 조사에 제출한 점 등을 근거로 두 사람의 주장을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한편 참고인들은 인권위 조사에서 조교로부터 “너네도 내년에 선배가 되면 안 시킬 거 같으냐? 1년만 버티면 대접받는 거다” “왜 청소, 빨래를 똑바로 안 하느냐”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두발제한에 대해서는 지도교수가 직접 머리카락 길이를 정한다는 일관된 진술도 나왔다. ‘XX새끼야’ 등 조교의 욕설이 일상적이고 반복적이었다는 점도 인정됐다.
인권위는 “지도교수는 부당 노동, 머리길이 제한, 휴대폰 수거 등의 인권침해 사실을 알고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며 조교는 학생들이 집합당하는 사실까지 알았음에도 그런 행위들이 유지되도록 방치했고 때론 직접 지시하는 언행도 한 것으로 보인다”며 “교육공무원 및 지도자로서 선수를 보호해야 할 의무에 반해 학생들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한체대 총장에게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당 종목 선수들에게 인권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고, 이 외에도 선후배 간 사적 제재가 있는지 등의 추가 조사를 통해 개선방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지도교수와 조교에게는 특별인권교육을 수강하라고 권고했다.
체육계에서는 한체대 등 체육학교에서 시작된 폭력행위가 결국 실업팀에까지 이어지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고 최숙현 선수 사망 이후 만난 한 비인기 종목 전 국가대표는 “동호회 출신 선수나 감독이 덜 폭력적인 것은 사실“이라며 “체육중, 체육고, 체육대학교에서는 훈육을 가장한 폭언 및 폭행이 일상적이다. 어릴 때부터 그런 환경에서 자란 선수들은 부조리에 대항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본인들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보고 배운 것이 어디 가겠나. 그런데 체육학교 출신이 대부분 국가대표가 되고 선수 생활도 계속한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