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처럼 달고 알로에만큼 큼직한 품종 개발…독자 브랜드 만들고 판로 개척해 22억 매출 올려
일본의 농부 시미즈 쓰요시는 한 단에 10만 원짜리 대파를 재배해 판매하고 있다. 사진=페이스북
일본 야마가타현은 음식이 맛있기로 소문난 지역이다. 특히 ‘과일의 왕국’이라 일컬을 정도로 과일을 재배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농부 쓰요시는 이곳에서 과일이 아닌, 대파를 재배한다. 9년 전 귀농해 오로지 대파 키우기에만 열정을 쏟아 부었다.
광활한 밭에는 대파가 17만 개 이상 심어져 있다. 이른바 ‘토라짱 대파’로 통한다. 쓰요시의 별명이 토라짱인 데서 기인했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알로에잖아!’라고 착각할 만큼 굵기가 상당한 것이 특징. 이파리가 널찍하다보니 광합성을 잘해 영양분도 풍부하다.
사실 대파는 ‘맛’보다 ‘모양’으로 가치가 매겨지는 채소다. 하지만 쓰요시는 ‘맛있는 대파’를 추구한다. 그는 “궁극의 맛을 목표로 미생물학자, 비료회사 등을 찾아 궁리를 거듭했다”고 밝혔다. 가령 밭에 뿌리는 비료는 5년간의 연구를 통해 독자 개발한 것으로, 90가지 미네랄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파를 심는 방법도 달리했다. 보통은 흰 부분을 길게 만들기 위해 파를 깊숙이 심는다. 반대로 쓰요시는 비교적 얕게 심는다. 햇볕을 많이 받아 당도를 높이기 위함이다.
이렇게 수확한 대파들 중에서도 유독 ‘더 굵고, 더 아름다우며, 더 달콤한 것’이 있단다. 까다롭게 엄선한 그야말로 최고급 대파다. 이름은 ‘참 대파’라고 붙였다. 대략 1만 5000개 중 하나꼴로 수확되기 때문에 수량은 매우 한정적이다. 8개를 한 묶음으로 해 1만 엔(약 10만 8000원)에 판매하는데, 매년 매진 사태를 빚는다.
‘토라짱 대파’가 멜론보다 당도가 높았다. 사진=후지TV ‘몸이 기뻐하는 슈퍼마켓’
참 대파의 맛을 만끽하려면 “구워 먹는 방법이 가장 좋다”고 한다. 쓰요시는 “구워 먹을 때 단맛이 보다 두드러진다”고 전했다. 그에 의하면, 부위에 따라 단맛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뿌리 부분이 제일 달콤하며, 다음은 이파리 부분이다. 가운데 줄기 부분은 파 본연의 알싸한 매운맛과 단맛이 어우러져 있다. 겉은 아삭아삭하고 안은 눅진눅진한 식감을 자랑한다. 중심에는 젤리 같은 심도 들어 있어 씹으면 씹을수록 묘한 식감을 더한다.
쓰요시는 “향후 하나에 1만 엔짜리 대파도 출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브랜드명은 모나리자. 채소도 예술품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그러면서 그는 “전에 없던 대파 맛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흔히 ‘대파는 대중적인 채소라 싼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소비자가 많을 것이다. 그런 풍토 속에서 하나에 1만 엔짜리 파를 팔겠다는 계획은 꽤나 모험적이다. 이와 관련, 쓰요시는 “우리 농장에서 일 년에 출하하는 대파가 200만 개 정도다. 그 안에는 깜짝 놀랄 만큼 굵고 아름다우며 맛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예술품’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동안 팔 만한 곳이 없었다. 농협에 출하할 경우 대파 맛은 묻지도 않고 외형으로만 평가한다. 길이와 굵기로 규격을 정하기 때문에 모나리자 대파와 같은, 극단적으로 굵은 파는 규격에서 제외된다. 아무리 맛있어도,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것은 ‘상품’으로서 부족한 것이다.
이에 반해 과일의 세계는 다르다. 수, 우, 특상이라는 등급이 있고, 특별히 크고 색채가 짙어서 ‘특상’ 등급을 받게 되면 가격은 수 배로 껑충 뛰어오른다. 수, 우밖에 없는 채소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셈이다.
선물하기 좋게 포장된 ‘토라짱 대파’. 오른쪽은 겨울 한정으로 예약판매 중인 ‘키스보다 달콤한 시금치’. 사진=공식 판매 홈페이지
일례로 500g짜리 특상 체리는 1만 엔에 팔린다. 누구도 이 가격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답례용 선물로 인기다. ‘그런데 대파로는 불가능할까.’ 쓰요시는 이런 의문을 품었다. 또한 선물용 대파 같은 것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쓰요시는 “여기서 착안해 토라짱 대파 선물세트를 인터넷에서 판매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대파 외에도 ‘키스보다 달콤한 시금치’를 겨울 한정으로 예약판매 중이다. 붉은 뿌리가 특징인데, 생으로 먹어도 달달한 맛이 일품이다. 보통의 시금치보다 7배가량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품질을 믿고 사는 고객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일본 매체 다임(dime)은 “고액이긴 하지만 ‘과연 어떤 맛일까’하는 호기심이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했다”고 분석했다. 고급 가전제품이나 자동차와 달리, 조금만 무리하면 살 수 있는 가격이다.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명품의 경우, 구입만으로 소비자의 만족감을 채워준다. 매체는 “계속해서 명품 채소 출시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쓰요시식 경영법을 소개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농지 대부분을 대파 재배로 활용해, 단일 채소만으로 2억 엔(약 22억 원) 가까이 판매하는 독자적인 경영법이 주목할 만하다”는 평가다.
단일 채소만으로 2억 엔 가까이 판매하는 쓰요시의 독자적인 경영법이 주목받고 있다. 사진=페이스북
요컨대 쓰요시는 지금까지 슈퍼나 백화점 등 스스로 개척한 판로를 통해 통상보다 50% 이상 비싼 가격으로 토라짱 대파를 판매해왔다. 자신만의 파 브랜드를 탄생시키고, 이후 농업회사 ‘네기비토 컴퍼니’도 설립했다.
근래 들어서는 가정에서 채소를 손질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자, 세척한 대파를 잘라 냉동 및 냉장 제품으로 선보이고 있다. 당도가 높은 고가격대의 대파 생산과 함께,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가공 대파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여기에 지난해 4월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유기질비료도 호평이다. 생선 등을 활용한 독자배합의 비료로, 대형 할인매장에 입고돼 있다.
젊은 농부 쓰요시는 “일본 제일의 대파 농가를 꿈꾼다”고 한다. 그래서 다양한 상품 전개에 힘을 쏟을 예정이다. 가까운 시일 “농가를 위한 파 모종 등을 발매해 초년도 5000만 엔(약 5억 원) 매출을 목표로 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덧붙여 ‘베란다에서 키우는 토라짱 대파 키트’도 발매된다. 파 모종과 흙, 비료를 세트로 한 가정용 재배키트다. 쓰요시는 “관련 상품의 출시로 자사의 브랜드력을 높이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