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내리막 평가받다 토트넘서 ‘꿈틀’…맨시티 잡고 리그 1위 등극
‘스페셜 원’ 무리뉴의 화려한 족적은 대부분 부임 2년차에 만들어졌다. 사진=연합뉴스
#무서웠던 ‘무리뉴 2년차’
축구계에선 감독이 팀에 자신의 색깔을 녹여내기 위해선 일정 기간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무리뉴의 경우 일정 시간 이후 강력한 팀을 만들어내며 ‘무리뉴 2년차’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부임 2년차에 우승컵을 다수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무리뉴는 지도자 경력 중 세 번째 팀인 FC 포르투에서 본격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앞서 벤피카, 레이리아에서는 각각 20경기조차 치르지 않았다. 포르투에서야 그 유명한 ‘스페셜 원’으로 거듭났다. 수많은 트로피 수집을 시작한 시기다.
포르투 부임 첫 시즌(2001-2002시즌)을 지낸 이후 무리뉴는 2002-2003시즌 포르투갈리그, 포르투갈컵, 유에파컵(현 유로파리그) 등 3개 대회 우승을 차지한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무리뉴 2년차의 서막이었다. 이듬해 챔피언스리그 우승마저 거머쥐며 ‘트레블’을 달성한 무리뉴는 러시아 석유재벌(로만 아브라모비치)의 공격적 투자가 이어지던 잉글랜드의 첼시로 향한다.
이후 첫 첼시에서 리그 2연패, 인터밀란의 트레블, 레알 마드리드에서 리그 우승, 복귀한 첼시에서 또 한 번 우승 등 세계적 명장으로 불렸다. 이들 대부분 경력이 공교롭게도 각 팀의 2년차 시즌에 쌓아 올렸다. 단순히 우승 트로피만 들어 올린 것이 아니다. 인터밀란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 과정에서는 숱한 명승부를 연출했고 레알에서의 리그 우승은 당시 유럽 최고로 불리던 바르셀로나를 꺾은 우승이기에 의미가 깊었다. 당시 승점 100점, 121골이라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무리뉴는 선수단과 ‘갈등설’이 불거지며 저조한 성적을 내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흔들리기 시작한 커리어
부임 2년차에 리그 우승에 성공하던 공식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지휘봉을 잡고 끝났다. 2016년 부임 이후 첫 시즌 리그컵과 유로파리그에서 우승하며 기대감을 키운 그는 2년차인 2017-2018시즌을 단 하나의 트로피 없이 마무리했다. 리그에서 2위에 올랐지만 우승팀이자 라이벌인 맨시티와 승점차는 19점이었다. 박수를 받기 힘든 준우승이었다.
맨유에서 맞은 세 번째 시즌에는 팀에서 경질당하는 불명예를 겪었다. 리그 17라운드를 치른 시점, 리그 6위에 머무는 저조한 성적이었다. 순위 싸움을 해야 할 토트넘, 맨시티, 리버풀 등에 모두 패배했다. 결국 첼시에 이어 다시 한 번 시즌을 마치지 못하고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자연스레 무리뉴를 향해 ‘여전히 그가 세계 최고의 감독인가’라는 의문이 뒤따랐다. 무리뉴의 하락세는 2013년 여름 시작된 ‘첼시 2기’ 시절부터 감지됐다. 2년차에 ‘더블’을 달성했지만 3년차에 하락세가 드라마틱했다. 시즌 초반부터 저조한 경기력으로 패배를 거듭했고 강등권에 가까운 순위로 떨어졌다. 결국 리그 16라운드 일정을 마치고 무리뉴는 첼시에서 쫓겨났다.
첼시와 맨유에서 연달아 초라한 모습으로 팀을 떠나자 무리뉴의 능력에 대해 물음표가 붙었다. 실제 기록이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 포르투 부임 이후부터 꾸준히 2점 이상을 기록하던 경기당 평균 획득 승점이 첼시 2기 시절부터 1점대로 떨어졌다. ‘우승 청부사’라는 명성에도 흠집이 가기 시작했다.
#‘무리뉴 3년차’라는 불명예
언제나 우승에 성공한다는 2년차에 이어 실망스러운 모습이 반복되는 ‘무리뉴 3년차’라는 수식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리그 38경기에서 121골을 넣으며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자랑하던 레알은 무리뉴와 함께 한 세 번째 시즌에 우승에 실패했다. 2위였지만 우승팀 바르셀로나와 승점 15점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이케르 카시야스, 세르히오 라모스 등 팀 내 주축 선수들과 불화를 일으켰다는 루머는 명성에 흠집을 더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생활을 마치고 영국 첼시로 돌아온 그는 3년차에 또 다시 팀 장악에 실패하는 모습을 보였다. 선수단뿐 아니라 팀내 의료진(팀닥터 에바 카네이로)과도 불화를 일으켰다. 뒤숭숭한 분위기, 직전 시즌 우승을 차지했던 것과 정반대의 경기력에 ‘선수들이 태업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올 정도였다.
맨유에서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수들을 강하게 다루는 2000년대의 그의 성공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모양새였다. 개성이 강한 신세대 선수들과 끊임없이 마찰을 빚었다. 무리뉴가 맨유 최고 스타인 폴 포그바에게 ‘바이러스’라며 비난한 사실이 전해지기도 했다. 결국 맨유에서도 3년을 채우지 못하고 팀을 떠나야 했다.
우승이 절실한 무리뉴와 토트넘에 이번 시즌은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사진=토트넘 페이스북
맨유를 떠난 무리뉴는 2019년 11월,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과 결별하고 흔들리던 토트넘에 입성했다. 리그 우승에 근접한 명문 구단의 선택만 받았던 그의 이전 행보와 사뭇 달랐다. 토트넘은 우승이 절실하지만 이에 근접한 전력은 아니었다. ‘도전자’의 입장이었다. ‘무리뉴의 커리어도 내리막을 걷게 됐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하지만 최근 무리뉴와 토트넘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 21일 맨시티와 경기에서 2-0 완승을 거두며 리그 1위로 올라섰다.
단순히 1승 의미를 넘어서는 경기였다. 주로 왼쪽에 배치되던 손흥민은 이날 오른쪽 측면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손흥민이 1골을 넣으며 결과적으로 공수에서 모두 효과를 본 선택이 됐다. 후반에는 지오바니 로셀소가 교체투입 직후 골을 넣으며 무리뉴가 용병술을 발휘하기도 했다.
리그 1위에 오른 토트넘은 득점(손흥민 9골 2위)과 도움(해리 케인 9도움 1위) 순위 상단에도 모두 소속 선수를 올려놓았다. 이들의 잠재력 폭발에 무리뉴의 지도력이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해리 케인의 경우 자신의 골만 생각하던 ‘독단적인 공격수’에서 경기장을 넓게 아우르는 ‘완성형 공격수’가 됐다.
무리뉴는 공격수들의 본능을 깨웠을 뿐 아니라 수비적으로도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 무리뉴는 ‘짠물 수비’로 명성을 떨친 감독이다. 이번 시즌 토트넘은 리그 9경기 9골만 내주며 리그 내 유일한 한 자릿수 실점 팀이다. 맨시티전에서는 무리뉴의 전성기를 연상케 하는 수비력을 선보이며 무실점 승리를 거뒀다. 무리뉴를 상대로 우세한 전적을 기록 중인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었기에 의미를 더했다.
‘스페셜 원’ 무리뉴 감독은 첼시, 맨유에서 연이은 실패로 ‘끝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반등이 필요한, 비슷한 처지의 토트넘과 손을 잡았다. 하지만 2년차에 접어들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강팀들이 흔들리는 리그 상황 또한 이들에게 호재다. 유럽 무대를 주름잡던 무리뉴가 토트넘에서 2년차 공식을 되살릴 수 있을지 축구팬들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