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 등 ‘신사업’ 눈에 띄는 성과 없어…악재 뚫고 경영능력 입증해 승계 발판 다져야
GS그룹 4세로 취임 2년차인 허세홍 GS칼텍스 대표이사 사장이 업황 악화와 ‘탈탄소’ 흐름 앞에서 궁지에 몰렸다. 허세홍 사장이 지난 4월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산업부-정유업계 CEO 간담회에 참석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허세홍 사장은 2019년 1월 취임한 이후부터 GS칼텍스 실적이 매년 줄어들면서 오점을 남겼다. 2020년 9월 기준(1~9월 누적) 영업손실은 8680억 원을 기록하면서 적자 전환했다. 2019년 동기 영업이익(7852억 원)과 비교하면 2배 줄었는데, 2019년 실적 역시 2018년 동기 영업이익에서 2배가량 감소한 수치다. 매출도 동일 기준 2018년 26조 6572억 원, 2019년 24조 5664억 원, 2020년 17조 1667억 원으로 줄곧 내리막길이다.
실적 하향세는 전체 매출(77.2%)과 영업이익(125.3%)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큰 정유업 부진 탓이다. 정유업 9월 기준 영업손실은 1조 877억 원이다. 윤활유와 석유화학사업이 각각 1864억 원, 333억 원 이익을 냈지만 정유업의 적자를 감당하기는 역부족이다. 윤활유와 석유화학사업 매출 비중은 전체에서 5.1%, 17.6%에 그친다.
탄소 규제 움직임은 또 하나의 부담 요인이다. 정부가 오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탄소중립 비전을 최근 발표했고, 국회에서도 정유사를 겨냥한 개정안들이 상임위원회 차원에서 논의 중이다. 석유류 정제 저장시설과 천연가스 제조시설에 제품 생산 ℓ(리터)당 지방세 1원을 부과하는 지방세법 개정안, 국가산단 내 정유사에 유해화학물질 취급량 kg당 1원을 내도록 하는 지방세법과 지방재정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해외 유럽연합(EU)과 미국은 ‘탄소국경세’ 도입 논의를 본격화했다. 글로벌 투자시장도 이미 ‘ESG’를 기업평가와 투자 대상 선정에서 중요 척도로 사용하며, 글로벌 정유사를 상대로 탄소 감축을 요구하고 탄소 배출이 많은 기업은 투자를 철회하고 있다. ESG는 환경·사회적 책임·지배구조를 일컫는 단어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강조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증권가에서는 정유사 전망을 회의적으로 보기도 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그간 유가 약세로 정유업이 부진했고, 최근 유가가 올랐으나 실물경기 침체로 석유제품 수요가 회복되지 않아 정제마진은 여전히 낮다”며 “코로나 진정 속도에 따라 2021년 실적 반등은 하겠지만 이전으로 돌아가긴 어렵다. 각국의 친환경 정책 강화로 석유 수요가 이전처럼 높아지긴 힘들다”고 했다.
악재를 극복하고자 GS칼텍스는 본업 강화와 친환경, 신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우선 석유화학사업에서는 경쟁력을 높이고자 2조 7000억 원을 투자해 2021년 가동을 목표로 올레핀 생산공장을 건설 중이다. 글로벌 ESG에 대응해 생산시설에 쓰이는 연료를 액화천연가스(LNG)로 전환하고 토양과 산림에 존재하는 미생물을 활용해 부탄다이올을 생산 판매하는 등 친환경에 힘쓰고 있다. 부탄다이올은 화장품 원료나 농업에 쓰인다.
신사업으로는 주유소를 복합 모빌리티 거점으로 전환하는 데 한창이다. 주유 세차 외 수소차·전기차 충전과 카셰어링 전동킥보드 등 모빌리티, 택배와 드론 배송 등 물류, 편의점 같은 생활편의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미래형 주유소를 구축한다는 것. GS칼텍스는 전국 49개 주유소에 전기차 충전기를 운영 중이며, 2022년까지 160개로 늘릴 계획을 갖고 있다. 2020년 5월 현대차와 손잡고 서울 강동구 주유소에 수소충전소를 준공, 휘발유·경유·LPG(액화석유가스)·전기·수소를 공급했다. 아울러 카카오모빌리티, 그린카 등 여러 업체와 제휴해 전기자전거와 공유차량 충전 주차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다만 모빌리티 사업은 미래 투자 차원은 맞지만 수치상 실적이 없고, 정유업 매출 비중이 워낙 커 사업구조 변화나 이익기여 차원에서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SK이노베이션이 중점 사업을 배터리에 두고 매출과 마켓셰어(시장점유율)에서 성과를 내는 모습과 비교된다.
앞의 애널리스트는 “모빌리티 거점은 전기차가 늘고 주유소는 쇠락할 것이기에 정유사마다 하는 사업 정도”라며 “정유업 1조 원 적자를 메우기엔 턱도 없다”고 했다. 다른 애널리스트도 “올레핀 사업은 과거 결정한 사안으로 공장 가동 시기가 다가왔을 뿐이고 본업 확장이지 신사업은 아니다. 시황에 종속되는 상황에서 케파만 늘리는 건 근본적 변화라 볼 수 없다”며 “모빌리티 사업도 가시적 성과가 없어 돈이 된다고 보진 않는다. 더 적극적인 중장기 계획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했다.
허세홍 GS칼텍스 대표이사 사장이 기존 주유소를 모빌리티 거점으로 만들겠다며 신사업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GS칼텍스 여수공장 전경. 사진=연합뉴스
허세홍 사장 입장에선 어깨가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허 사장은 부친 허동수 GS칼텍스 명예회장을 이어 GS칼텍스를 맡았다. 그러나 GS칼텍스는 GS에너지와 미국 쉐브론이 지분을 절반씩 나눠 가진 합작사로 GS그룹 차원에서 컨트롤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승계와 무관하다. 일각에선 허 사장과 허 명예회장이 그룹 계열사 중 하나를 맡거나 다른 사업을 찾아 독립할 것이란 시나리오가 꾸준히 거론돼 왔다.
허 사장이 2029년 10월부터 1년간 지주사 지분을 꾸준히 매입해 기존 1.54%에서 2.37%로 늘린 이유도 추후 독립 과정에서 입지를 높이고 가져갈 계열사 지분과 교환하기 위해서란 해석이 있다. 허윤홍 GS건설 사장, 허준홍 삼양통상 사장, 허서홍 GS 전무는 각각 부친의 뒤를 이어 GS건설, 삼양통상, 삼양인터내셔날을 맡을 전망인데, 허세홍 사장은 아직 가져갈 몫이 정해지지 않았다. 허세홍 사장 입장에선 GS칼텍스에서 신사업을 키워 능력을 입증하는 동시에 가져갈 계열사를 마련해야 하는데, 현재 여건상 쉽지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허세홍 사장을 비롯한 GS그룹 4세들의 지분 매입은 승계 발판으로 삼기 위한 것”이라며 “허세홍 사장은 직급이 다 올라갔고 등기임원도 맡았기에 실적을 보여줘야 할 때가 됐다”고 했다. 이어 “주유소를 모빌리티와 물류 거점으로 만드는 신사업을 타사에 비해 얼마나 잘 해내는지가 핵심이고, 장기적으로는 다른 에너지기업들처럼 친환경에너지를 구상해야 한다”며 “GS나 GS에너지가 여러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에 합작회사를 세우는 등 연계해 사업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향후 그 사업을 떼어가 독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GS칼텍스는 3분기 개별 실적이나 재무안정성에선 경쟁사들보다 좋다는 입장을 보인다. GS칼텍스 측은 “3분기만 보면 정유사들 중 우리만 영업이익 2000억 원 흑자를 냈고, 신용평가사들이 연말 타사들의 등급은 내렸으나 우리는 유지했다”며 “모빌리티 역량을 강화해 코로나발 불황을 극복 중이고, 올레핀 공장 가동 시 이익도 늘 것”이라고 했다. 또 “SK이노베이션은 중간지주사로 여러 사업에 투자하는 역할이기에 결이 다르다. GS칼텍스는 정유업만 하는 SK에너지와 비교해야 하고, 우리도 GS에너지 차원에서는 화학 등에 투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