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표는 한국 최고 선수…가슴 한편엔 여전히 미국 진출 꿈도”
롯데의 성적 향상을 희망하는 손아섭은 “결혼반지보다 우승반지를 먼저 끼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이영미 기자
지난 1월 6일, 서울에서 손아섭과 인터뷰를 가졌다. 오랫동안 ‘오빠 므찌나’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그는 재치 있는 입담으로 자신에게 쏟아진 궁금증을 솔직하게 풀어냈다.
#‘토아섭’으로 예능 인기몰이
손아섭은 지난 12월 18일 자신의 SNS에 이런 게시물을 남겼다. ‘아침부터 걱정들 많이 해주시는데 토아섭 건강합니데이~’. 해시태그로 ‘#낚시무료레슨해드립니다 #부산사나이아입니까 #낚시꿈나무 #(심)수창이형보다는한수위 #야구나하자아스바’를 남긴 손아섭은 전날 ‘도시어부’에서 뱃멀미로 무너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지인들이 대부분 “몸은 괜찮냐”고 연락을 해오자 아예 SNS에 생존 신고를 한 것이다.
‘연봉 20억’ 선수로 소개되면서 ‘도시어부’ 출연진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낚싯대를 잡았지만 손아섭은 계속되는 뱃멀미로 누워 있는 바람에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방송을 마쳤다.
“촬영할 때는 무척 괴로웠는데 지나고 나니까 그 시간들이 그립더라. 여러 형님들과 제작진들의 배려 덕분에 재미있게 촬영했다. 야구선수 손아섭은 매우 철두철미하지만 야구장 밖에서는 약간 ‘어리버리한’ 편이다. 그런 모습이 방송을 통해 팬들에게 재미있게 전달된 것 같다.”
손아섭은 다음에 또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멀미약을 제대로 복용한 다음 또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타격왕, 언젠가는 꼭!
2007년 프로에 데뷔한 손아섭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타격왕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2013년 데뷔 후 최고인 0.345의 타율을 기록했음에도 그 해 타격왕은 0.348의 타율을 기록한 LG 트윈스 이병규(코치) 차지였다. 2012, 2013, 2017년 최다 안타왕에 3차례 올랐음에도 타격왕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20시즌에는 시즌 막판까지 최형우와 경쟁을 펼치다 타격왕 자리를 내줬다.
“선수생활하면서 한 부문 이상은 내 이름이 가장 높은 위치에 있기를 바란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시간들을 통해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도 됐다. 타격왕 자리는 꼭 올라가고 싶은 목표 중 하나다. 올 시즌에는 꿈이 아닌 현실로 이뤄졌으면 좋겠다.”
손아섭은 어느새 팀의 고참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마냥 어리고 선배들 밑에서만 야구할 줄 알았던 그로선 변화된 상황들을 통해 세월의 빠름을 절감하게 된다.
“시간이 정말 빨리 가는 것 같다. 내가 고참이 된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그냥 다시 어린 시절의 손아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다(웃음). 가장 행복하고 재미있게 야구했을 때가 스물여섯, 스물일곱 살이었다. 야구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플레이해나갔다. 지금은 야구가 두려울 때도 있고, 성공보다 실패할 걸 미리 걱정한다. 그러다보니 플레이도 소극적으로 변했다. 야구를, 세상을 알아 갈수록 생각이 많아져 더 복잡해지는 것 같다.”
포스팅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에 도전했다 고배를 마신 손아섭은 “현재는 한국 최고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사진=박정훈 기자
#김하성의 MLB 진출과 무응찰
2015시즌 마치고 손아섭은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하며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미국 진출을 꾀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30개팀 중 단 한 군데서도 손아섭을 원한 구단이 없었고 포스팅은 무응찰로 유찰되고 말았다. 이 결과는 선수한테는 물론 롯데 팬들한테도 충격적이었다. 손아섭은 당시 집안 사정으로 급하게 미국 진출을 추진했던 게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그때 아버지 몸이 많이 안 좋은 상태였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큰 무대에서 뛰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생각에 급하게 포스팅을 진행시켰다. 그래도 무응찰이 나오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솔직히 충격받았다. 2015시즌이 좋지는 않았지만(116경기 타율 0.317 141안타 13홈런 54타점 11도루) 2013, 2014년 나름 타석에서 경쟁력을 보여줬다고 판단했는데 예상치 못한 결과를 받아들게 된 것이다.”
손아섭은 이런 평가도 덧붙였다.
“무응찰이 나온 건 내 실력 부족이다. 내가 압도적으로 뛰어난 선수였다면 급하게 포스팅을 진행시켰다고 해도 선택받아서 미국에 진출했을 것이다. 미국에 진출한 선배들을 보면 대부분 한국에서 MVP를 수상했거나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다. 김현수, 류현진, 박병호, 강정호 선배, 김광현 등의 공통점이다. 그들에 비해 나는 MVP도 못 받았고, 꾸준한 성적을 올리긴 했지만 리그를 압도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강)정호 형은 유격수로 홈런 40개를 치며 리그를 평정하지 않았나. 아직까지 한국에서 내가 이뤄야 할 게 더 많이 남았고, 미국에 가려면 ‘한국 최고의 타자 손아섭’이 돼야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렸을 때부터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게 꿈이었지만 꿈은 꿈이고, 현실을 무시할 순 없더라. 지금은 한국에서 최고가 되는 게 내 목표다.”
손아섭은 여전히 가슴 한편에는 궁금증을 품고 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붙어 보고, 확인하고 싶은 것. 그는 “메이저리그가 안 된다면 트리플A에서라도 꼭 미국 야구를 경험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낸다. 코치 연수로도 가는 미국 야구를, 현역 선수로 접하고 싶다고 말한다.
#선행 릴레이, 어렵게 자란 성장 배경이 한몫
손아섭은 평소 티 내지 않는 선행을 많이 펼친다. 돈과 용품으로 기부할 때도 있지만 최근에는 한 방송에서 자신의 팬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조문을 간 내용이 알려져 훈훈한 미담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이런 행동에는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아온 배경 때문이라고 말한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컵라면 하나도 마음껏 먹을 수 없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을 원망해본 적인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그런 환경이 내 정신력을 강하게 만들어줬고, 빨리 철들 수 있게 해줬다. 그런 어린 시절의 경험이 없었다면 야구선수로 성공하고 싶다는 목표를 갖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렵게 생활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어렵게 지내는 사람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터라 지금은 내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게 됐다.”
손아섭은 2007년 2차 4라운드 전체 29순위로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그는 당시 어머니가 계약금을 받은 후 자신에게 용돈을 줬을 때 곧장 편의점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라볶이’라는 컵라면을 원 없이 먹는 게 소원이었다. 이전에는 돈이 없어서 그걸 한 개도 제대로 못 먹었던 터라 어머니한테 용돈을 받자마자 컵라면을 10개 사서 다 먹으려고 했던 것이다. 4개 먹으니까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지 못했지만 지금도 그때 컵라면 10개를 샀을 때의 행복한 기분은 잊을 수가 없다.”
손아섭은 지금도 어머니한테 용돈을 받아쓴다.
#결혼반지보다 우승반지가 더 급해
올 시즌이 끝나면 손아섭은 롯데와의 FA 계약이 종료된다. 아직은 자신의 FA가 크게 와 닿지 않는다고 말한다. FA보다는 다른 목표가 더 간절하기 때문이다.
“스프링캠프도 시작하지 않은 터라 개인 FA보다는 올 시즌 우리 팀이 어떻게 하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을지만 생각하고 있다. 시즌 들어가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지금은 개인보다 팀 성적의 중요성이 더 와 닿는다. 롯데에서 우승 반지 하나는 꼭 끼어보고 싶다. 롯데 우승할 때까지는 결혼반지를 안 낄 생각이다(웃음).”
손아섭은 이대호의 뒤를 이어 롯데의 차세대 리더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한다. 이대호가 걸어간 길을 잘 보고 배워서 훗날 이대호가 없는 롯데를 지킬 수 있도록 모든 면에서 성장해나가는 선수가 되기를 소망한다. 인터뷰를 통해 다시 느꼈다. 손아섭은 역시 ‘오빠 므찌나’가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였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