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결수’ 요건 충족 언제든 가능 4월 재보선 후 본격 논의될 듯…“뇌물죄 MB는 다르다” 목소리도
최근 정치권에서 거론되기 시작한 특별사면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통합’을 위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거론한 바 있다. 물론 거센 비판 여론에 이를 거둬들였지만 법조계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모두 얘기가 이뤄진 사안인 것 같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사면을 제외했지만 이르면 올 상반기 중에, 늦어도 내년 초에는 사면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상고심 선고 공판이 열린 1월 14일 오전 서울 서초역 인근에서 우리공화당 조원진 대표와 지지자들이 손 팻말을 들고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대법원, 예상대로 형 확정
1월 14일 오전,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의 재상고심에서 징역 20년·벌금 180억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35억 원의 추징금도 확정했다. 당초 항소심에서는 징역 30년·벌금 200억 원을 선고 받았으나, 대법원에서 강요죄와 일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 무죄라고 판단했고 2020년 7월 파기환송심에서 뇌물 혐의에 대해 징역 15년과 벌금 180억 원, 국고 손실 등 나머지 혐의에는 징역 5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이제 미결수에서 기결수가 된 박 전 대통령은 이미 새누리당 공천 개입 혐의로 확정된 징역 2년과 14일 선고된 징역 20년형을 더해, 모두 22년을 복역하게 됐다. 2017년 3월부터 구속됐기 때문에 가석방이나 특별사면 없이 형을 모두 채운다고 하면 박 전 대통령은 87세가 되는 2039년에나 출소하게 된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복역했던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 그리고 지난해 중형이 확정된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어 전직 대통령 중에서는 4번째에 해당하는 불명예이기도 하다.
#사면론 다시 등장할까
보통 형이 확정된 뒤 적게는 수개월에서 많게는 수년 있다가 등장하기 시작하는 사면론이 이번에는 형도 확정되기 전에, 그것도 여당에서 먼저 등장했다. 1월 1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적절한 시기에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는 국회 당 대표실에서 진행한 언론 인터뷰에서 “국민 통합을 위한 큰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두 전직 대통령의 법률적 상태가 다르다”고 답했다. 14일 박근혜 전 대통령 선고가 있다는 점을 감안, 미리 사전에 사면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청와대 역시 인터뷰 직후 “건의가 있으면 검토하겠다”며 화답했다.
하지만 발언 직후 친문 계열에서는 “당사자 잘못 인정도 없는 사면은 말도 안 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4곳의 여론조사전문기관이 새해 1월 1주차(4~6일)에 공동으로 실시한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에 대한 공감도 조사에서도 국민 10명 중 6명 가까이가 공감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4개 여론조사기관이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기한 전직 대통령 사면 건의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다’(전혀+공감하지 않음)는 응답은 58%로, ‘공감한다’(매우+공감)는 응답 38%보다 많았다(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여론조사업체 홈페이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청와대와의 사전 교감설에 대해 이낙연 대표는 “그런 일 없다”고 해명했고, 청와대 역시 “검토한 적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법조계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청와대에서 분위기를 알아보려 한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 발 후퇴한 이낙연 대표
실제 문재인 대통령이 1월 7일 밝힌 신년 인사회에서 “새해는 통합의 해”라고 언급한 대목 등을 고려할 때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시사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12일 발표한 2021년 신년사에서는 ‘포용’만 언급하고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의미하는 단어나 문장은 사용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사면론 언급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포함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원래 4년차, 5년차 중 사면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는데 올해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다음 유력 대선 후보인 이낙연 대표를 통해 ‘포용’과 ‘통합’이라는 메시지로 박근혜 전 대통령 형 확정 직후 사면을 추진했다가 여론이 좋지 않으니 잠시 넣어둔 것 아니겠냐”고 설명했다.
1월 1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 대표실에서 진행한 언론 인터뷰에서 “적절한 시기에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며 “국민 통합을 위한 큰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적지 않은 반대 여론에 이낙연 대표는 “전 대통령의 ‘진솔한 사과’가 먼저여야 한다”며 당사자 반성을 사면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박 전 대통령의 선고 직후에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의 깊은 상처를 헤아리며 국민께 진솔하게 사과해야 옳다”며 “적절한 시기에 사면을 건의드리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에 대해 당은 국민의 공감과 당사자 반성이 중요하다고 정리했고, 저는 그 정리를 존중한다”며 한 발 물러선 입장을 분명히 했다.
최재성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역시 13일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지만 이 권한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며, 국민이라는 두 글자를 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며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의 눈높이에서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1심 때부터 검찰 기소는 물론 법원의 판단에 대해서도 일절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재판에도 응하지 않았고,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정치적 기소’라며 반발했는데 두 전직 대통령이 이제 와서 ‘내가 잘못했다’며 혐의를 인정하겠느냐”며 “‘진솔한 사과가 먼저다’라는 얘기는 한동안 사면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분리사면 가능성도
사면론 본격 논의는 오는 4월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 이후에나 시작될 것이라는 게 법조계 관측이다. 앞선 변호사는 “형이 확정되는 시점의 사면론이 비판에 부딪혔다면 4월에 치러지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끝나고 대선을 앞둔 시점에 다시 거론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후보들이 지지층을 넓히거나 단단하게 붙들기 위해 두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론을 꺼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야당은 벌써부터 사면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월 5일 국회에서 열린 온택트 정책 워크숍에서 “통합을 위해 전직 대통령의 사면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촉구했다.
다만 법조계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분리사면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개인적 착복’이 없는 국정농단 사건으로 처벌받은 것이라면, 직접 뇌물을 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은 죄질이 더 나쁘다는 판단이다.
청와대 소식에 밝은 변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촛불의 힘으로 국민들이 끌어내린 케이스라 문재인 대통령이 여론이 수렴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들어 뇌물이라는 범죄 행위에 대해 검찰이 수사한 케이스로 주체가 다르다”라고 진단하면서도 “명분만 놓고 보면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문재인 정부가 사면을 하는 게 맞지만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고, 두 대통령이 각각 차지하고 있는 정치적인 지분까지 고려할 때 박 전 대통령만 먼저 사면을 해주는 게 더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