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문서 만들어 출국 저지’ 이규원 검사 비롯 이용구·이성윤도 수사 대상 거론
2019년 3월 23일 토요일 0시 10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해외로 나가려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이 긴급 출국금지 조치했다는 내용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사진=MBC 뉴스 방송 화면 캡처
이를 주도한 것은 진상조사단 소속이었던 이규원 검사다. 이 검사는 피의자가 아니면 조치를 할 수 없는 긴급 출국금지 조치를 강행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던 사건번호를 먼저 적은 뒤 이를 추후에 승인받으려고 시도했다. 동부지검 직무대리로 이를 강행해 긴급출금 조치를 한 뒤 “대검찰청과 법무부에서 다 승인했다”고 보고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 검사 등을 수사하기 위한 이 사건이 안양지청에 배당됐지만, 속도가 더디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대검찰청은 수원지방검찰청 형사3부에 사건을 재배당했다.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 당시 법무실장이었던 이용구 차관, 법무부 과거사위원회 위원이었던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검 반부패·형사부장이었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등에 대한 수사 필요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문제될 게 없다’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논란이 커지자 뒤늦게 ‘당시 대검찰청 탓’이라고 했지만, 진상조사단 소속이었던 박준영 변호사마저 추미애 장관을 저격하고 나서며 논란은 커지고 있다. 검찰 내에서 ‘추미애 라인’으로 분류됐던 검사들이 위기에 빠졌다는 평이 나온다.
#명백한 불법, 무리한 시도?
검사들은 법적으로 명시된 수사 절차를 절대적으로 지켜야 한다. 법에 명시된 기준을 지키지 않으면 사건 자체가 ‘무죄’를 받을 수 있고, 검사도 처벌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전국민적인 지탄을 받았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에서, 이규원 검사는 무리하게 ‘위법’한 선택을 했다는 게 당시 정황을 잘 아는 검사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당시 사건에 관여된 검사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진상조사단 소속이었던 이규원 검사는 피의자 신분이 아니었던 김학의 전 차관이 해외로 출국할 것인가에 대해 600회 넘게 조회했다.
그 전에 명시된 법을 봐야 한다. 출입국관리법령 상 긴급출금은 사형·무기 및 징역 3년 이상형을 받을 수 있는 중대 범죄 피의자로서 도주 우려가 있다고 수사기관의 장이 요청했을 때 할 수 있는 조치다. 하지만 김학의 전 차관은 정식으로 형사 입건돼 수사를 받는 상황이 아니었다. 피의자 신분이 아니었기에, 출국 조회 시도조차도 불법 여지가 있다.
이규원 검사는 2019년 3월 22일 밤, 심지어 김학의 전 차관이 출국을 위해 공항에 나타나자 ‘서울동부지검 2019년 내사1호’라는 가짜 사건번호도 만들어낸다. 김 전 차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만들기 위해 출입국관리소에 사건번호가 담긴 가짜 문서를 보내 김 전 차관의 출국을 저지한 것이다.
당연히 대검에서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 3월 23일 이른 아침, 이 검사가 요청한 출금 조치 협조 보고에 당시 문찬석 대검 기조부장은 “무슨 근거로 출국금지를 하느냐? 근거가 있어도 출금 요청은 대검 기조부 업무와 무관하다. 안 된다고 해라”라고 조치한 뒤 “문제 소지가 있을 수 있으니 이를 기록하라”고 당부했다.
대검에서는 협조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긴급출금은 진상조사단이 건물을 빌려 쓰고 있던 동부지검의 승인 없이 이뤄졌다. 이규원 검사는 긴급출국금지 요청서를 서울동부지검장의 직인 없이, 직무 대리 자격으로 처리했다. 그런 뒤, 주말 당직 검사를 통해 “사건이 대검, 법무부와 협의됐다”며 동부지검 상부에 보고했다. 당시 동부지검 간부로 근무했던 검사는“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이규원 검사에게 연락해 사건 내용을 확인하고자 했고 여러 차례 ‘연락을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지만 아무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검찰 과거사위원회 위원이던 2019년 5월 29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김학의 전 차관의 별장 성범죄 의혹 사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당시 법무부도 수사 불가피
검찰 내부에서도 허위공문서 작성 등 혐의 적용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평이다. 당초 사건이 배당됐던 곳은 안양지청이었지만, 대검찰청은 적극적인 수사를 위해 사건을 수원지검 형사3부(이정섭 부장검사)에 배당했다. 지검 내 인력 충원을 통해 수사팀 검사도 5명으로 늘렸다. 사건을 맡게 된 이정섭 부장검사는 2019년 김학의 전 차관을 기소한 수사팀에서 근무한 바 있어 사건을 잘 알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원칙적으로 수사를 한다는 평을 받는 검사인데, 대검 관계자는 “김 전 차관 사건의 본류를 수사했던 검사니까 더 공정하게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불법적인 공권력 남용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는 이번 수사는 핵심 인물인 이규원 검사(현재 공정거래위원회 파견)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 법무부에서 이를 용인·허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간부들도 수사 대상 가능성이 거론된다. 본의 아니게, 추미애 라인으로 분류됐던 핵심들이 위기에 처했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이종근 대검 형사부장은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으로 재직하며 긴급출금 과정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용구 법무부 차관 역시 출금 조치 기획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 차관은 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 출국을 막을 필요성 및 재수사 필요성을 언급했을 뿐 출국금지의 구체적인 절차는 알지도 못하고 관여할 수도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구체적인 확인이 불가피하다.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었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당시 대검 정책기획과장으로 진상조사단 관련 주무과장이었던 김태훈 법무부 검찰과장 등도 수사 대상으로 거론된다.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이성윤 부장검사)가 대검 기조부로 하여금 출국금지를 요청하도록 부탁했다는 증언도 나왔기 때문이다. 수사 지원 부서인 반부패강력부가 출금이 부당하다는 것으로 인지하고 문제가 될 소지를 기조부로 떠넘기려 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사건 흐름에 정통한 검찰 관계자는 “대검찰청 기조부는 문제가 있다고 보고 관여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일부 대검 라인과 법무부 핵심 간부들이 위법적인 긴급출금을 주도한 것인데 그들 가운데 대다수가 그대로 요직에 남아 중용되다 보니 자연스레 ‘추미애 라인’이 된 것 아니냐”고 평가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논란이 커지자 자신의 SNS에 “관련된 법무부 간부들이 ‘추(미애) 라인’으로 짜깁기되고 있다, 누구를 표적으로 삼는 것인지 그 저의도 짐작된다”며 “정당한 재수사까지 폄훼·부정하는 것”이라고 대검찰청을 비판했다. 사진=박은숙 기자
#박준영 변호사도 비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논란이 커지자 1월 16일 ‘옹호’에 나섰다. 추 장관은 자신의 SNS에 “관련된 법무부 간부들이 ‘추(미애) 라인’으로 짜깁기되고 있다, 누구를 표적으로 삼는 것인지 그 저의도 짐작된다”며 “정당한 재수사까지 폄훼·부정하는 것”이라고 대검찰청을 비판했다.
하지만 이에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접대 의혹사건을 조사한 박준영 변호사마저 추미애 장관 비판에 합류했다. 그는 17일 자신의 SNS에 “추미애 장관님, ‘수사의뢰를 할 당시 상황, 수사의뢰 내용, 수사단의 수사과정’을 잘 모르시는 것 같다”며 “김 전 차관의 출국금지는 근거가 없었다. 그러나 수사 의뢰를 할 만한 혐의가 보이지 않았다. 준비 안 된 수사 의뢰는 대단히 부실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김 전 차관이 2심 판결에서 일부 유죄를 받았지만 유죄를 받은 범죄사실은 긴급 출국금지 당시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진상조사단의 부실하고 황당한 수사 의뢰를 보고 당황한 수사단이 이 잡듯이 뒤져 찾아낸 혐의였다”고 덧붙였다.
서환한 객원기자